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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렉시테리언 Sep 30. 2021

“샤워를 왜 해?”

몇 년 전 유럽에 주황색 눈이 내렸다는 보도가 있었다. 사하라 사막에서 불어오는 모래 폭풍이 유럽까지 올라가 눈과 모래가 섞여 주황색 눈이 내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매년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고 몇 년에 한 번씩 반복되는데, 그 해 겨울은 다른 때보다 심해 러시아에서도 주황색 눈이 목격되었다고 한다.


사막에 모래만 가득한 것은 아니다. 인터넷 백과사전에 따르면 전 세계 사막의 20% 정도만 모래사막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서부 사하라도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대부분 건조한 기후에 바위와 돌이 많은 사막 유형이고, 모래언덕은 중간중간 또는 특정 지역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래도 서부 사하라 어디에서나 모래는 충분히 볼 수 있다. 실외뿐 아니라 컨테이너 숙소, 식당 식탁, 사무실 책상 그 어디에도 모래는 늘 존재했다. 팀 사이트(Teamsite)에 처음 도착한 날, 배정받은 컨테이너 숙소를 말끔하게 청소했다. 바닥을 쓸고 닦고, 선배들의 조언에 따라 작은 틈새로 모래 먼지가 들어오지 못하게 컨테이너 벽 이음새마다 박스 포장용 테이프를 덕지덕지 붙였다.


분명 완벽한 청소였는데, 밖에 나갔다 들어와 보니 책상에 고운 모래가 엷게 쌓여 있었다. 아무리 청소를 해도 방문을 열 때마다 그리고 막지 못한 이음새 사이로 모래와 먼지가 꾸준히 들어오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서부 사하라에서의 청소를 포기했다. 숙소나 사무실에 모래가 너무 많아 거칠게 밟히는 느낌이 들면 그제서야 한 번씩 청소를 했지만, 첫날처럼 열정적인 청소는 하지 않았다.


모래는 어디든 침투한다. 서부 사하라에 근무하는 내내 눈에 무언가 들어간 것 같은 이물감과 입안이 텁텁한 느낌을 안고 살아야 했다. 모래 때문에 전자기기들도 고장이 잘 나는 편이었는데, 서부 사하라 임무단 근무를 마치고 귀국한 선배가 컴퓨터 AS를 맡겼더니, AS 기사가 “컴퓨터 안에 모래가 한가득”이라며 놀랐다고 한다. 내 컴퓨터는 여행 중에 도둑을 맞아 확인하지 못했지만, 아마 훔쳐 간 그 컴퓨터도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을 것이다.


모래가 컨테이너에 부딪히면 빗소리를 낸다. 강한 바람에 소나기가 흩날리면 유리창을 빗자루로 쓰는 것 같은 소리를 내듯이, 고운 모래가 바람에 날려 컨테이너에 부딪히면 비슷한 소리가 난다. 워낙 비가 흔치 않은 지역이다 보니, 비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때론 빗소리를 내는 모래바람이 반갑기까지 했다.


낭만적인 소리와 달리 모래바람을 직접 맞으면 꽤 아프다. 설령 온 몸을 꽁꽁 싸매 직접 맞지 않더라도 휘몰아치는 모래바람은 몸과 옷 사이 이곳저곳에 파고든다. 옷을 벗어보면 마치 고운 모래밭에 맨몸으로 뒹군 것처럼 몸이 먼지로 뒤덮여 있다.


남에게 말하기 힘든 고통을 주기도 한다. 정찰(Patrol) 대부분의 시간을 차량에 앉아 이동하다 보니, 아무리 에어컨을 틀어도 등과 엉덩이에 땀이 차는 경우가 많다. 차에서 내려 정찰을 할 때면 모래바람은 영락없이 옷 사이를 파고드는데, 겉옷에 붙은 모래 먼지야 어느 정도 털어낼 수 있지만, 속옷 안으로 들어온 녀석들은 방법이 없다. 그 상태로 몇 시간씩 정찰을 가야 하는데, 등과 엉덩이에 까끌까끌한 그 불편한 느낌은 누구에게 말하기도 뭐하고 여간 곤욕스러운 게 아니다.


심각한 모래 폭풍(Sand Storm)은 다가오는 게 눈에 보이기도 한다. 이런 모래 폭풍이 올 때면, 다른 방법은 없다. 무조건 실내로 피해야 된다.


“모래 폭풍, 모래 폭풍. 모두 실내로!”


당직 장교가 재난 방송하듯이 팀 사이트 스피커로 알리면, 모두들 신속히 실내로 들어간다. 모래 폭풍이 지나간 자리는 엉망이 된다. 유엔(UN) 건물과 차량은 대부분 하얀색인데, 모래 폭풍이 할퀴고 간 자리는 누렇게 변해있다.




서부 사하라 임무단에 도착한지 얼마 안 됐을 때의 일이다. 약한 모래바람이 꾸준하게 부는 어느 날 목욕용 수건만 걸친 채 샤워장을 향하고 있는데, 야외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던 팀 사이트 동료가 나에게 물었다.


“진, 지금 어디 가는 거야?”

“샤워하러 가려는데?”

“샤워를 왜 해? 나오자마자 지저분해질 텐데.”

“좋은 지적이야!”


나는 발걸음을 돌려 숙소로 돌아왔다. 어차피 젖은 상태로 모래바람을 뚫고 숙소에 돌아와 봤자 머리와 온몸이 먼지로 엉망이 되었을 테니. 그런 날이면 한국에서 가져온 물티슈가 유용하게 쓰였다. (물티슈 3~4장이면 머리도 감고 샤워를 대신할 수 있다). 그리고 머지않아 나도 저 동료처럼 모래바람 속에서 유유히 맥주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사실 무모한 행동이긴 했다. 외교부에 마른 기침을 자주 하는 과장님이 있었다. 처음에는 ‘감기에 걸렸나?’ 싶었는데, 대기오염이 심한 중국과 몽고에서 근무한 덕에 기관지가 안 좋아져 생긴 증상이라고 했다. 그렇게 침투력 강한 모래바람인데, 유유히 맥주를 마시는 동안 얼마나 몸속으로 들어갔을까.


지역이나 문화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슬람권에서 여자들에게 히잡(Hijab)이나 부르카(Burka)로 얼굴과 머리를 가리게 한다는 건 이미 잘 알려진 내용이다. 예전에는 이것이 단순하게 종교적 관습이나 문화에서 기인했다고 생각했는데, 서부 사하라에서 근무한 뒤로 생각이 조금은 바뀌었다.


‘저건 어쩌면 생존을 위한 방법일 수 있겠다.’


열사병을 피하고 예고 없이 불어오는 모래바람과 폭풍으로부터 신체를 보호하기 위해 온몸을 감싸는 것. 그것은 생존을 위한 필수템일 수도 있다.

(서부 사하라에서는 남자들도 낮에 머리를 감싸고 모래바람이 심할 때면 얼굴도 감쌌다. 나도 그랬다.)




최대한 감싸야 산다! "Cover for Your own Saf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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