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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렉시테리언 Sep 30. 2021

워터 파티(Water Party)

결혼과 동시에 버스를 캠핑카로 개조해 전국을 여행 다니는 부부의 이야기가 TV에 소개된 적이 있다. 캠핑카 생활에서 가장 불편한 부분을 묻자, 부인은 아무리 버스 생활에 적응을 해도 “물” 사용은 불편하다고 했다.


한국은 잘 갖춰진 상하수도 덕분에 우리 생활 속에 물의 중요성을 쉽게 잊곤 한다. 어느 지역에 마른 가뭄으로 인해 물 공급이 끊겼다는 뉴스를 봐도 대부분 ‘내 이야기와는 상관없는, 남의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사막에서 생활하다 보면 물의 중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 서부 사하라 임무단에 도착해, 머물게 된 임시 숙소 화장실에는 인상적인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물은 생명의 근원입니다. 낭비하지 마세요.”


분명 한국에서도 “절수, 절약”과 같은 안내문을 많이 보았을 텐데, 저 문구가 이토록 피부에 와닿은 적은 없었다. 50℃에 육박하는 물이 귀한 사막이니까.


서부 사하라 임무단에서는 시디 알리(Sidi Ali)라는 2L들이 수입산 생수를 식수로 사용했다. 어디를 가든 항상 이 2L들이 생수병을 가지고 다녀야 했는데, 곳곳에 설치된 정수기에서 손쉽게 물을 받아먹는 것에 익숙한 한국 사람들에게 꽤나 어색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설거지, 샤워, 하수처리와 같은 생활용수는 팀 사이트(Teamsite) 인근 우물에서 물을 끌어올려 물차로 실어와 팀 사이트 물탱크에 저장했다가 사용했다. 재미있는 것은 이 우물물이 얼핏 사막과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짠 물”이라는 것이었다. 사하라 사막에는 오래전 퇴적암이 만들어질 때 바닷물이 그대로 갇힌 화석수가 널리 분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우물물이 화석수인지는 몰라도 오래전에 갇힌 바닷물의 영향으로 짠 게 아닐까 싶었다. 아무튼 그 덕에 매일 따뜻한 바닷물로 샤워를 해야 했다. (따로 데우지 않아도, 하루 종일 햇빛을 받은 물탱크는 늘 따뜻한 바닷물을 제공했다.)


이 짠 우물물마저도, 부족하거나 물을 끌어올리는 펌프가 고장 나면 사용하지 못할 때가 종종 있었다. 그럴 때면 팀 사이트 곳곳에 저장해 놓은 물을 최대한 아껴 써야 한다. 이와 상관없이 규모가 크고 사람이 많은 팀 사이트에서는 전날 받아 놓은 우물물이 금세 바닥 나, 아침마다 물 부족 현상이 발생했는데, 이럴 때면 간단한 세면을 하거나 화장실에 갈 때에도 생수병을 가지고 가야 했다.


한 번은 물 펌프가 고장 나 팀 사이트 모든 시설에 물 공급이 끊긴 적이 있었는데, 팀 사이트 주간 회의 때 급수와 생수를 담당하는 군수 참모가 공세적으로 말했다.


“생수를 아껴 쓰세요. 낭비하지 말고, 필요한 곳에만 사용해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 화장실 갈 때도 생수병을 꼭 가지고 가세요.

특히! 대변을 본 뒤에는 다음 사람을 위해 반드시 생수 2L 전부를 사용하세요!”


다 큰 성인, 아니 그보다 각자의 나라에서 나름 최소 수백 명의 부대원을 지휘했을 장교들에게 “화장실 예절이 잘 지켜지지 않는다.”며 화를 내고, 화장실 예절을 가르치고 있는 상황이 재밌기만 하다.


덕분에 나는 물이 나오지 않는 화장실에서 당황하지 않고 대처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한 번은 외교부 과 직원들과 티타임(Tea Time)을 갖고 있었는데, 남미에서 참사관으로 근무했던 과장님이 도시 전체에 물 공급이 끊기는 바람에 한동안 고생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이야기를 듣던 나는 씩 웃으면서 자신 있게 말했다.


“제가 그 분야 전문가죠. ㅎㅎ”


이렇게 사하라 사막 현장에서 2L들이 생수는 단순한 식수의 의미를 넘어, 일상생활 그리고 생존과 직결되는 존재였다. 당연히 팀 사이트 생수 현황도 매일 임무단 본부에 보고되었고, 위급 상황에 팀 사이트를 철수(Evacuation) 해야 할 때도, 생수는 별도의 트레일러 한 대에 챙겨야 하는 필수품이었다.




하루 일과가 마무리되어 가는 17시경, 누군가 신난 목소리로 팀 사이트 스피커를 통해 외쳤다.


“워터 파티! 워터 파티! 모두들 나오세요! 워터 파티 시간입니다!”


‘워터파티? 그게 뭐지?

아, 더운 사막이라 시원한 물을 마시면서 함께 파티를 즐기는 모양이구나.’


순수했던 나의 예상은 보기 좋게 어긋났다.

보통 생수는 대형 트럭에 실려 각 팀 사이트로 전달되고, 그렇게 도착한 생수는 대부분 창고나 컨테이너에 보관되는데, 생수를 창고나 컨테이너 또는 당직실이나 식당 같은 중간 지점으로 옮기는 작업을 “워터 파티(Water Party)”라고 하는 것이었다.


내심 신촌 대학가에서 열리는 물총 축제 같은 것도 기대했는데, 실상은 작열하는 태양 아래 땀 뻘뻘 흘리며 한 시간 동안 12L짜리(2L들이 생수 6개 묶음) 생수를 나르는 작업이었다. 당연히 그렇게 귀한 물을 물총 축제에 낭비할 리가 없지.


이렇게 소중하고 고생 고생해서 옮긴 생수인데, 인근 팀 사이트에서 생수 수백 묶음이 통째로 사라지는 일이 발생했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팀 사이트 작전뿐 아니라 안전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심각한 상황이었다.


다른 팀 사이트에서 일어난 일이라 전말을 듣지는 못했지만, 끝내 범인과 생수의 행방은 찾지 못했다고 했다. 혹자는 ‘누군가 현지인들이나 밀수꾼들에게 돈을 받고 팔았을 것’이라고 추측했지만,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았다. 그 많은 물을 옮기려면 분명 차량도 많이 필요했을 텐데, 언제 어떻게 범행이 이루어졌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한 가지 사실은 분명했다. 그 팀 사이트는 “워터 파티”를 한 번 더 해야 했다는 것 (어쩌면 여러 번 더).


“Water Party! Water Party! Everyone, Water Party Time!"


정찰(Patrol) 중 우물을 살펴보는 동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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