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워리치 May 16. 2023

생명과 죽음의 경계

면도하는 전업주부(맞벌이) #11

-아빠,,, 위암이래..


무표정하고, 놀란 기색이 없어 보이는

얼굴을 한 민진의 입에서 어마어마한

이야기가 나왔다.


-암?


민진이 식탁의자를 넓게 빼서 앉는다..

꽉둥이가 꽉 붙들고 있는 아랫배가

방해되지 않도록..

조용한 집에 차갑고 무거운 공기가

느껴진다.

진수는 분리수거를 하다가

우두커니 서서 민진을 본다.

식탁등이 민진을 향한

핀조명처럼 보이는 것은

기분 탓일까?




-6개월 정도입니다.


민진은 가슴이 내려앉았지만

아픔을 삼킨다.

민진의 엄마, 동생들이 있어서이다.

의사 선생님의 이야기가 잘 들어오지 않는다.

차가웠다. 냉정했다.

그럴 수밖에 없나?

그래도 지금 상황에서는 믿을 곳은

이 병원 밖에 없다.

그래서

그래서,


민진은 엄마를 꼭 안는다.

눈물인지 콧물인지 엄마의 얼굴은

차가운 병원 조명에 비쳐 반짝거린다.




-흐흐흑흑흑~


진수가 짐을 거실에 내려놓다가

현관을 보니,

민진이 엎드려 있다.


머리카락이 얼굴을 가려서

얼굴이 보이지 않지만,

마룻바닥으로 떨어지는

물방울..


신발도 채 벗지 못하고,

전실과 중문 사이에 민진은

엎드렸다.


-흐흐흑.. 흐흐흑... 간에 전이만 안 됐어도,,,


가족들 앞에서 보이지 않았던

물방울들이 신발을 벗는 그 짧은 시간을

참지 못하고 터져 나왔다.


진수는 아무 말이 없다.

민진은 아빠의 모습이,,

암을 몰랐을 때와

암을 알았을 때..

똑같은 모습의 아빠를

떠올린다.


-왜!! 왜!! 왜!!


민진이 병원에서 잡았던 아빠의 큰 손.

그 촉감은 여전한데..

아빠의 몸에서...

위에서부터 간까지 아빠의 생명을

죄어오고 있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어떡해? 아빠~~ 어떡해~ 아빠..


진수는 우두커니...

그래도 혹시나,,,

작은 꽉둥이가 있는 배에 손을 대고 있는

작은 민진의 모습을 쳐다만 보고 있다.




- 지이이잉~ 지이이잉~


민진은 느낌이 안 좋았다.

웬만하면 막냇동생인 현수가 자기한테 전화하지 않는데..


- 어,, 현수야... 응.. 알았어...


- 지이이잉~ 지이이잉~

- 어 민진아~

- 아빠가 안 좋으시대... 지금 가봐야겠어.

- 어,, 알았어.. 나도 이야기하고 같이 나가자.


오후 3시.

뱃속에서 꽤 자란 꽉둥이와 함께,

민진이 회사 로비에 서 있다.


-가자.


주차장으로 가면서,

진수도 민진도 아무 말하지 않는다.

15년 1월,,,

3시가 넘는 시간이지만,,,

겨울의 해는 벌써 비스듬히 햇살을 비춘다.


- 아빠!! 아빠!! 흐흐흑..


민진은 아빠 손을 잡는다.

아빠는 아무 말이 없다.


'뚜~ 뚜~ 뚜~'


심장모니터가 대신 대답한다.

아빠 아직 살아있다고.


- 아빠!! 나 왔어...


'뚜~ 뚜~ 뚜~'


많이 야위어진 장인어른의 손은

민진이의 눈물로 촉촉해진다.

진수는 보았다.

움직이지 않으셨던 아버지의 고개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살짝 돌려졌다.


민진은 보지 못했다.

장인어른의 말 없는

최선의 반응이었으리라.

진수는 그렇게 생각했다.


진수가 뒤돌아 선다.

환한 중환자실의 풍경이

흐물거리면서 흐릿해진다.

 



- 지금 들어오셔야 할 것 같아요.

- 네에.....


중환자실 휴게실에서 문을 여니,

환한 복도등에 눈을 찌푸린다.


'새벽 3시'


민진과 장모님, 그리고 동생들은

슬리퍼를 신는지 마는지 간호사를 따라간다.

진수도 그 뒤를 따라간다.

유난히 밝았고, 길었던 그 복도를

아무 말 없이 따라간다.


'뚜....... 뚜......'


심장모니터의 소리도 지쳐 보인다.

민진은 작은 의자에 앉아 아빠의 손을 잡고

흐린 초점으로 얼굴을 보고 있다.

아무 말하지 않는다.


여기저기에서 심장모니터에서 나는 소리들만

이 공간을 메운다.


조용해졌다.

그 소리라도 듣고 싶은데 조용해졌다.


-아빠!! 아빠!!! 아빠아!!!!!


민진은 아빠의 손을 놓지 못한다.

'이렇게 따뜻한데..... 아빠..'




6시였지만,

1월의 아침은 어둡고 매서웠다.


텅 빈 이곳,,

곧 사람들로 북적이겠지..


민진은 의자에 앉아

흘러나오는 눈물을 부여잡고 있다.


진수는 장례식장 사무실에서

계약을 하고 서명을 한다.


계속...








매거진의 이전글 너를 위한 일? 아니 나를 위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