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도하는 전업주부(맞벌이) #11
-아빠,,, 위암이래..
무표정하고, 놀란 기색이 없어 보이는
얼굴을 한 민진의 입에서 어마어마한
이야기가 나왔다.
-암?
민진이 식탁의자를 넓게 빼서 앉는다..
꽉둥이가 꽉 붙들고 있는 아랫배가
방해되지 않도록..
조용한 집에 차갑고 무거운 공기가
느껴진다.
진수는 분리수거를 하다가
우두커니 서서 민진을 본다.
식탁등이 민진을 향한
핀조명처럼 보이는 것은
기분 탓일까?
-6개월 정도입니다.
민진은 가슴이 내려앉았지만
아픔을 삼킨다.
민진의 엄마, 동생들이 있어서이다.
의사 선생님의 이야기가 잘 들어오지 않는다.
차가웠다. 냉정했다.
그럴 수밖에 없나?
그래도 지금 상황에서는 믿을 곳은
이 병원 밖에 없다.
그래서
그래서,
민진은 엄마를 꼭 안는다.
눈물인지 콧물인지 엄마의 얼굴은
차가운 병원 조명에 비쳐 반짝거린다.
-흐흐흑흑흑~
진수가 짐을 거실에 내려놓다가
현관을 보니,
민진이 엎드려 있다.
머리카락이 얼굴을 가려서
얼굴이 보이지 않지만,
마룻바닥으로 떨어지는
물방울..
신발도 채 벗지 못하고,
전실과 중문 사이에 민진은
엎드렸다.
-흐흐흑.. 흐흐흑... 간에 전이만 안 됐어도,,,
가족들 앞에서 보이지 않았던
물방울들이 신발을 벗는 그 짧은 시간을
참지 못하고 터져 나왔다.
진수는 아무 말이 없다.
민진은 아빠의 모습이,,
암을 몰랐을 때와
암을 알았을 때..
똑같은 모습의 아빠를
떠올린다.
-왜!! 왜!! 왜!!
민진이 병원에서 잡았던 아빠의 큰 손.
그 촉감은 여전한데..
아빠의 몸에서...
위에서부터 간까지 아빠의 생명을
죄어오고 있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어떡해? 아빠~~ 어떡해~ 아빠..
진수는 우두커니...
그래도 혹시나,,,
작은 꽉둥이가 있는 배에 손을 대고 있는
작은 민진의 모습을 쳐다만 보고 있다.
- 지이이잉~ 지이이잉~
민진은 느낌이 안 좋았다.
웬만하면 막냇동생인 현수가 자기한테 전화하지 않는데..
- 어,, 현수야... 응.. 알았어...
- 지이이잉~ 지이이잉~
- 어 민진아~
- 아빠가 안 좋으시대... 지금 가봐야겠어.
- 어,, 알았어.. 나도 이야기하고 같이 나가자.
오후 3시.
뱃속에서 꽤 자란 꽉둥이와 함께,
민진이 회사 로비에 서 있다.
-가자.
주차장으로 가면서,
진수도 민진도 아무 말하지 않는다.
15년 1월,,,
3시가 넘는 시간이지만,,,
겨울의 해는 벌써 비스듬히 햇살을 비춘다.
- 아빠!! 아빠!! 흐흐흑..
민진은 아빠 손을 잡는다.
아빠는 아무 말이 없다.
'뚜~ 뚜~ 뚜~'
심장모니터가 대신 대답한다.
아빠 아직 살아있다고.
- 아빠!! 나 왔어...
'뚜~ 뚜~ 뚜~'
많이 야위어진 장인어른의 손은
민진이의 눈물로 촉촉해진다.
진수는 보았다.
움직이지 않으셨던 아버지의 고개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살짝 돌려졌다.
민진은 보지 못했다.
장인어른의 말 없는
최선의 반응이었으리라.
진수는 그렇게 생각했다.
진수가 뒤돌아 선다.
환한 중환자실의 풍경이
흐물거리면서 흐릿해진다.
- 지금 들어오셔야 할 것 같아요.
- 네에.....
중환자실 휴게실에서 문을 여니,
환한 복도등에 눈을 찌푸린다.
'새벽 3시'
민진과 장모님, 그리고 동생들은
슬리퍼를 신는지 마는지 간호사를 따라간다.
진수도 그 뒤를 따라간다.
유난히 밝았고, 길었던 그 복도를
아무 말 없이 따라간다.
'뚜....... 뚜......'
심장모니터의 소리도 지쳐 보인다.
민진은 작은 의자에 앉아 아빠의 손을 잡고
흐린 초점으로 얼굴을 보고 있다.
아무 말하지 않는다.
여기저기에서 심장모니터에서 나는 소리들만
이 공간을 메운다.
조용해졌다.
그 소리라도 듣고 싶은데 조용해졌다.
-아빠!! 아빠!!! 아빠아!!!!!
민진은 아빠의 손을 놓지 못한다.
'이렇게 따뜻한데..... 아빠..'
6시였지만,
1월의 아침은 어둡고 매서웠다.
텅 빈 이곳,,
곧 사람들로 북적이겠지..
민진은 의자에 앉아
흘러나오는 눈물을 부여잡고 있다.
진수는 장례식장 사무실에서
계약을 하고 서명을 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