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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준 Nov 17. 2021

말레이시아 TOA

11월 13일 (토)


강한 바람소리에 깼다. 윙윙 거리는 소리와, 깃발이 부대끼는 소리에 컸다. 내 방에서 멀지 않은 곳에 연병장이 있었고, 강당에는 UNIFIL 예하의 21개국의 국기가 걸려있었다. 깃발이 찢어져라 부대끼는 소리가 상당했다. 눈을 비비며 핸드폰을 켜자 시간은 일곱시였다.


 우리는 점호 30분전 기상나팔과 노래를 틀어서 사람들의 잠을 깨운다. 아직 7시인데도 노래소리가 들리지 않아서 7 30분에 노래를 틀고 8시에 점호를 하나보다 생각하며 다시 잠이 들었다. 얕은 잠에 빠질려   정보과장님께 보이스톡이 왔다.  아침 점호에 나오지 않냐고 하셨다. 내가 체온 측정 담당이었는데 처음으로 아침에 늦잠을 자서 사람들이 체온측정을 못했다. 정보과장님께 혼나고 체온계를 다시 지휘통제실에 비치하였다.


혼난 건 혼난거고 오늘은 토요일이지만, 일정이 있기에 일단 더 잤다. 눈 떠보니 핸드폰에 전달사항들이 와 있었다. 바람이 많이 불어서 말레이시아 대대 지역과 이탈리아 지역, 심지어 우리 구역인 압바시아에도 불이 붙었다. 그간 쓰레기 소각을 위해 지역주민들이 불을 피워서 연기를 식별하는 것은 하루에도 3,4차례씩 있어 왔지만, 오늘처럼 대형 산불은 처음이었다. 강한 바람으로 인하여 불이 커졌고, 가뜩이나 건조하여 불은 꺼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몇 키로나 떨어진 지역에서 발생한 화재이지만, 주둔지 내부도 매케하였다.


점심을 먹고 말레이시아 TOA  참석하기 위해 세시쯤 출발하였다. 인사장교 대위님도 우리 한국군이 유엔 메달 퍼레이드를 실시할  참고하기 위해  함께 출발하였다.


차에 몸을 실고 나왔다. 외부로 나올 일은 항상 서부여단이나 UNIFIL을 방문하기 위해서였고, 따라서 주둔지를 나가서 티르 방향 왼쪽으로만 갔었다. 항상 왼쪽으로만 가고 오른쪽에는 벌판만 삭막하게 있었다. 왼쪽길로 가면서 멀어져만 가는 오른쪽 길, the road untaken을 보면, 공사가 중단된, 언제 중단된지도 모르겠고, 전혀 재개의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건축물들만이 멀뚱히 서 있었다.


오늘 방문하는 말레이시아 대대를 방문하기 위해서는 오른쪽 길로 가야만 했다. 해당 사실을 모르고 있다가 운전자가 오른쪽 길로 가자 갑자기 신이 났다.  없이 무엇으로 이어질까 상상만 했지 가본적은 없었다. 역시나 그간 멀리서 지켜보기만 했던, 폐건축물이 나왔다. 허허벌판과 폐건축물을 한참 지나 달리자, 경사진 언덕이 하나 나왔다. 언덕을 올라가자 올라가자 전혀 다른 풍경이  앞에 펼쳐졌다. 훈히 드라마나 영화에 중동을 묘사할  보이는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디바 마을이었다.

우리 나라 산동네 같은 느낌이었다. 마찬가지로 완공되지 않은 건물들이 많았고 경사가 졌다. 구조와 곁부분에 벽돌이 그대로 보였지만, 크게 게의치 않고 사는 모습이었다. 마을은 황토색, 시멘트 색, 페인트 벗겨진 흰색 등 무채색이었다.


바버샵이 몇 군데 있었고, 대형마트는 아니고 동네 슈퍼 수준의 마트를 몇 군데 볼 수 있었다. 휴일이어서 그럴수도 있지만, 인적이 많지는 않았다. 차량 공업소와 인테리어 가게, 이미테이션 옷 가게 등은 문이 닫혀 있었다.


디바 시청도 가는 길에 보았다. 2층 건물로 우리의 동사무소 정도의 규모였다. 오르락 내리락 좁은 골목을 지나가며 풍경들을 재빨리 눈에 담았다. 어린 아이들이 시청 옆에 딸린 낡은 축구장에서 축구를 하고 있었다.


언덕 세네 개를 건너고 내려오고 올라가고 다시 내려오자 멀리 높은 구릉지에 철조망과 모래 및 자갈들을 자루에 넣어 높게 쌓은 담들이 보였다. 말레이시아 대대였다.


위병소로 가자 말레이시아 국기가 크게 펄럭거렸다.

위병소를 통과하자  좌측에는 현지인들이 운영하는 가게들이 있었다. 컨테이너 한 개짜리로 만들어진 작은 상점들 네 개와 컨테이너 여러 동을 붙혀서 만든 식당과 슈퍼마켓 하나가 있었다.


가게들을 뒤로 하고 천천히 직진하다 보니 행사장이 보였다. 연병장과 행사용 강단이 있었고, 그 뒤에는 제법 큰 규모의 본청이 있었다.


우선 행사장을 지나 주차장에 차량을 주차했다. 차량에 내려서는 중앙 단상으로 500m쯤 걸었다.

 행사장에 도착하자 아일랜드의 베이츠 중령, 새로 온 듯한 가나 대대장이 보였다. 단장님께서 인사를 나누시는 동안 행사장에 비치 되어있는 좌석표를 확인하여 단장님이 앉으실 자리를 먼저 찾았다. 말레이시아 군은 850여명으로 규모가 컸다. 지난 1년간의 파병 생활을 마치고 복귀하는 850여명이 떠드는 소리에 시끌벅적 했다. 시끄럽고 정신 없지만 누구도 조용히 하라하지 않았고 분위기를 즐기는 듯 했다.


"안녕, 주."

누가 내 어깨를 쳤다. 마스크를 끼고 있었고, 미안하지만 말레이시아 군만 800여명 있어서 누군지 알아보지 힘들었다. 손목을 보니 액정이 깨진 애플워치가 있었다. 서부여단에서 연락장교로 임무수행했던 샤디 대위였다.


"샤디! 너도 여단에서 대대로 복귀했구나."

내가 샤디의 얼굴을 기억해내고 또 샤디가 먼저 나를 알아봐주었다는 점이 감사했다, 남의 행사장에서 누군가 먼저 인사를 건네준다는 것은 실로 반가운 일이다.


"우리 행사인데 당연히 내가 자리를 빛내주어야지."

항상 장난기 넘치는 샤디 대위의 성격이 보였다.


"그럼, 너도 가는거야? 서부여단에서 더 이상 임무수행 안하고?"


"내 후임자는 벌써 여단에 갔어. 나는 이제 대대에서 좀 쉬다가 말레이시아로 복귀해야지."


친구가 떠난다는 생각에 아쉬웠다.

"아쉽게 1년 더 할 생각은 없고?"

둘다 크게 웃었다. 샤디 대위는 웃음으로만 대답을 대신했다.


옆에서 사회자가 자리에 앉아달라는 안내 방송을 했다. 키가 나와 비슷한 170 후반대의 이목구비가 뚜렷한 말레이시아 여군이 사회를 보았다. 흰색 바탕에 반달월 무늬가 그려진 패치를 어깨에 단것으로 볼 때 의무대 인원 같았다. 말레이시아 대대도 히잡을 쓴 여군들이 대다수였다. 헌병으로 교통통제 임무를 수행했던 여군 중사도 히잡을 썼고, 군의관으로 있었던 여군 대위도 히잡을 썼다. 종교에 따라서 본인이 희망하는 인원들만 히잡을 착용했다. 사회자는 히잡을 착용하지 않았다.


시작했다. 300여 정도 되어 보이는 인원이 발을 마춰 행사장에 입장하였다 인도와 비슷하게 발을 크게 구르는 모습을 보며 무릎이 아프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절도 있는 모습으로 행사장에 들어오자 강단 옆 서 있는 다른 말레이시아 군들도 손님들은 핸드폰으로 사진과 동영상을 촬영하기에 바빴다.


나도 좀 더 좋은 사진구도를 위해 중앙으로 넘어갔다.


"와 줘서 고맙습니다. 주 중위."

누구에게나 친절하신 아주딘 핫산 대령이 먼저 인삿말과 악수를 건네왔다.


이런, 사진을 찍겠다는 생각에 그냥 걸어간 것인데, 아직 도착하지 않은 사령관을 기다리며 중앙에서 서 있는 말레이시아 단장과 후임 단장이 서 있었던 것이다. 각국의 지휘관들과 주변 말레이시아 참모들의 시선이 나에게 쏟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중위 주영준, 한국군 통역장교입니다. 이곳에 오게 되어 영광입니다."

일단 깜짝 놀라 한국군에서 관등성명을 대는 것과 같이 악수를 하며 이야기했다. 특히나 파병부대의 부대장은 그 위상이 높다. 단순히 각 부대의 대표로서의 임무만을 띄는 것이 아니고  각 국을 대표하는, 외교적인 측면에서도 고려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타국의 일반 실무자와는 교류가 거의 없고, 또 하는 것이 흔치 않은데, 미리 악수까지하고 후임 지휘관까지 소개해주는 경우는 정말 흔치 않다. 당황스러웠지만 한편으로는 감사했다.


간단히 인사를 건넨 뒤 옆으로 빠르게 비켰다. 말레이시아 통역장교와 눈이 마주쳤다. 내가 놀랐다는 표정을 보이자 말레이시아 통역장교는 웃으며 어깨를 으쓱해주었다.


중앙에 행사 강단과 연병장을 두고 차량이 한대씩 도착했다. 먼저 황토색에 연비는 4키로로 보이는 이베코 지프 차량 3대가 도착했다. 서부여단장과 경호 병력들이었다.


그 뒤로는 새차가 잘된 벤츠 리무진이 들어왔다. 말레이시아 대사와 말레이시아 본국에서 3성 장군과 2성 장군이 왔다. 유엔으로 임무수행하는 모든 병력들은 하늘색 베레모를 착용하는데 반해 말레이시아 본국에서 참석한 말레이시아 군들은 보라색 베레모를 착용하였다.


주요 직위자들이 모두 도착하자 말레이시아 지휘권 이양 행사가 시작되었다.

모든 임무에 진심으로 최선을 다하는 말레이시아답게 마지막까지 절도 있는 모습이었다.


모든 식순이 끝나자 지휘관들은 지휘관 실로 모였고 나머지 인원들은 야외에 마련된 뷔페장으로 이동하였다.


말레이시아의 전통 음식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달콤한 견과류 소스를 곁들인 사태, 볶은 면 같은 미고랭, 샐러드, 젤리와 떡 같은 것들이 나왔다.


"우리 행사는 어떻게 준비해야할까?"

인사장교가 음식들의 사진을 찍으며 말했다.


"일단 잡채랑 김치 부침개 부치고, 노래는 BTS 틀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외국의 높으신 분들은 BTS 노래 알까?"


"아니면 트로트 한번 틉니까?"

둘 다 웃으며 행사가 끝난 말레이시아 대대를 둘러보았다. 영화 분노의 질주의 OST로 유명한 노래 When I See you again이 흘러나왔다. 모두가 성공적인 임무수행을 축하하는 자리지만, 그 누구보다도 살갑게 다가와주었던 말레이시아 대대가 떠난다고 하자 허전했다. 아직 여운이 가시지 않은 듯 행사에 참여했던 말레이시아 행사병력들이 단체로 구호를 소리소리 지르며 사진을 찍고 웃고 떠들어댔다.


한 시간 가량 둘러보며 말레이시아 군들과 인사를 나누자 지휘관 실에서 차례대로 사람들이 나왔다. UNIFIL 사령관 델 콜 소장, 말레이시아 대사가 먼저 나오고 뒤이어 보라색 베레모의 말레이시아 장군들이 나왔다.

 

의전에 따라 상급자부터 떠났고, 배웅만 30분 정도 더 있다가 우리는 출발했다.


행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은 5시쯤 되었다. 겨울철이라 해가 빨리 졌다. 복귀하는 길에 다시 디바 마을을 거쳤다. 간혹 할로겐 등이 희미하게 켜져서 노란색 불빛을 비추는 것 말고는 빛이 없었다. 집 안에서 인기척이 보였으나 빛이 새어 나오는 집은 얼마 없었다.

 

돌아오는 길 내내 무엇인가 허전했다. 가장 친했던 말레이시아가 먼저 간다니.


지난 1년간 고생했습니다. 말레이시아.  나중에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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