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노랫말
고등학교 자습 시간에 친한 친구에게 MP3를 빌려준 적이 있다. 내 플레이리스트를 보더니 ‘너 취향이 왜 그래!’라고 묻던 친구의 표정이 기억난다. 그 시절을 기억하기엔 너무 어렸지만, 나는 90년대와 2000년대 발라드를 꽤 좋아한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차에서 조성모의 <To Heaven>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덕분인지, 그 시절의 멜로디 전개가 나에게는 EDM 비트보다 훨씬 익숙하다. 하지만 누가 나에게 왜 그때의 노래가 지금의 노래보다 좋냐고 묻는다면, 멜로디가 아닌 가사 때문이라 답할 것이다.
90년대 노래와 2000년대 노래의 가사는 매우 다르지만, 하나 비슷한 점이 있다. 바로 ‘사랑’이다. 사랑은 70년대부터 현재까지 시대를 관통하는 한국 음악의 아이덴티티다. 물론 사랑 노래는 다양한 장르와 언어로 전 세계에 존재하지만, 그 어떤 노래도 ‘한’이 담긴 우리나라의 사랑 노래와 견줄 수 없다. ‘보고 싶겠죠. 천일이 훨씬 지난 후에라도 역시 그럴 테죠.’, 헤어진 후, 천 일 동안 상대를 그리워하겠다는 이승환의 <천 일 동안>이 대표적인 그 예다. 하지만 요즘 노래에서는 이런 ‘한’의 정서를 쉽게 찾아볼 수 없다. 이는 대중들에게 사랑의 의미가 많이 변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터넷이 널리 보급되기 이전인 90년대의 사랑에는 사랑하는 사람이 나타날지 아닐지 막막한 기다림이 존재했다. 심지어 문자를 보내지 않고도 카카오톡이나 인스타그램을 통해 상대방의 상태를 알 수 있는 현재와 달리, 과거에는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집 앞에 찾아가거나, 편지를 쓰는 등의 현재보다 몇 배의 노력이 요구되었다. 이는 015B의 <텅 빈 거리에서>의 한 소절인 ‘그대의 목소리 나에게 다짐을 하며 떨리는 수화기를 들고 너를 사랑해 눈물을 흘리며 말해도 아무도 대답하지 않고 야윈 두 손에 외로운 동전 두 개뿐’이라는 가사에서도 볼 수 있다. 공중전화 부스에서 동전을 쥐고 신호음을 넘어 상대방의 목소리가 들려오기만을 기다리는 그 애틋함은 지금과는 다른 90년대만의 사랑 방식이다. 그렇기에 상대방의 마음을 확인하고 연인으로 거듭났을 때, 벅참이 더 컸을 것이고, 그것을 잃었을 때 상실감 또한 엄청났을 것이다. 상대에 대한 그리움 또한 90대 노래 가사에 섬세하게 쓰여 있다. 많은 그리움의 가사가 있지만, 나는 변진섭의 <그대 내게 다시>에 쓰인 ‘맨 처음 그때와 같을 순 없겠지만 겨울이 녹아 봄이 되듯이 내게 그냥 오면 돼요. 헤어졌던 순간을 긴 밤이라 생각해’라는 소절이야말로 상대방에 대한 간절함을 90년대의 서정적인 감성으로 가장 잘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반면 오늘날의 사랑 노래에는 맥락 없는 처절함 뿐이다. 물론 지금의 사랑이 그때의 사랑보다 더 가볍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인터넷과 SNS의 발달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이 더욱 짧아진 만큼, ‘한’과 ‘애틋함’을 섬세하게 표현한 노래를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마치 상대방을 잃은 상실감은 무조건 술과 함께 표현해야 한다는 법이 있는 것처럼, 대부분의 이별 노래 가사에는 술이 등장한다. 앞서 언급한 변진섭의 <그대 내게 다시>의 소절과 2019년에 꽤 히트를 한 이별 노래의 가사인 ‘지금, 이 순간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내가 가진 언어로 표현 못 해 알잖아. 내가 좀 서툴지. 술 한잔해서 너무 보고 싶어서 네가 싫어하는 담배도 피우고 술도 했어’를 비교해보자. 사람마다 느끼는 것이 다르기에, 두 가사의 우위를 따질 수는 없겠지만 후자의 가사는 ‘애틋함’보다는 ‘억울함’이 느껴진다. 이처럼 오늘날의 노래는 90년대와는 달리, 더욱 자극적인 소재와 일상적인 가사가 주가 된다.
인터넷의 발달로 사람들의 생활 방식이 달라졌기에, 사람들이 사랑하는 방식도, 이를 나타내는 노래 가사도 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따라서 이제는 ‘기다림’과 ‘한’을 섬세하게 표현한 노래가 잘 먹히지 않는다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나는 예전의 노래 가사들로 사랑의 아름다움을 온전히 느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