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해안가를 옆에 두고 뛰는 마라톤에 참가하고 싶었다. 강원도를 알아보던 우리는 제주도 마라톤 소식을 듣고 참가 대회를 바꿨다. 그리고는 연차를 신청했다.
출발 전날까지 일을 잔뜩 한 상태였다. 둘 다 새벽까지 눈을 뜨고 있다가 새벽비행기 시간에 맞춰 출발했다. 마음은 제주 곳곳을 누리고 싶었지만 몸이 따르지 않았다. 결국 쓰러졌다. 내일이 걱정된단 말을 남긴 채. 그리고 그 '내일'은 오늘이 되었다.
비행기 출발시간과 같은 7시 30분, 집에서 출발했다. 햇빛이 가득한 아침 제주를 발견했다. 운전을 하고 내려가는 길목마다 감탄을 자아내는 색깔들로 가득했다. 돌담색, 햇빛이 드리운 하늘색, 풀과 나무에 드리운 햇빛색까지 다양했다. 어젯밤 운전을 하기에 충분치 않은 가로등에 투덜거렸던 내가 부끄러울 정도였다. 이런 아름다움을 품고 있는 이곳이라면, 살고 싶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게 당연했다. 마라톤 코스를 구경하기도 전에 제주 곳곳에 매료되었다.
마라톤 시작점에 도착했다. 제주뿐 아니라 육지에서 온 사람들로 대회장은 와글거렸다. 광교 러닝클럽, 수원 러닝클럽, 뛰고 하와이안 피자를 먹자는 모임까지... 나와 친구는 약간 수세에 밀려 조용히 출발 신호를 기다리며 사람들을 구경했다. 그러고 나서 출발했다.
5km, 10km 반환점까지 뛰는 데엔 문제가 없었다. 같이 뛰는 사람들 속도에 맞춰 페이스를 유지했다. 몸은 그들을 따라 움직였다. 눈은 저 멀리 바닷가에 닿아있었다. 앞에 가는 외국인을 페이스 메이커 삼아 뛰었다. 내가 뒤쳐지면 그를 보고 달려가고, 내가 그를 앞지를 것 같으면 속도를 줄였다. 그렇게 한 시간 뛰자 반환점이 나타났다. 반환점 부근은 로즈메리 향으로 가득한 곳이었다. 주변에 조성된 풀떼기들이 허브였던 것이다. 그 냄새에 취해 잠깐 신난 채로 조금 더 달렸다. 그리고 점점, 내 다리와 허벅지에서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