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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소피 Oct 30. 2022

프롤로그

 나는 '프로 역마러'다. 


사주에서 '역마살'은 "한 곳에 가만히 있지 못하고 이동수가 많은 팔자"를 뜻한다. 단순히 물리적인 이동뿐만 아니라 여기저기 호기심이 많고, 새로운 걸 시도하고 탐구하는 성격도 역마살이 많은 사주라고 한다. 


 나는 사람 많은 곳을 싫어하고, 친구와 수다 떨며 스트레스를 해소하기보다 집에서 조용히 쉬는 걸 선호하는 전형적인 집순이다. 심지어 그 흔한 해외여행도 한번 못 가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역마살이 제대로 낀, '프로 역마러'다. 


 나의 역마 기질은 새로운 맛집이나 전시회 등 볼거리를 찾아다니거나 짧게는 며칠, 길게는 몇 달씩 다른 나라에서 살며 외국인도 사귀며 해외까지 활동 무대를 넓히는 그런 진취적이고 낭만적인 행동이 아니다. 


 오히려 겁이 많아 안전지대 밖으로 선뜻 나가지는 못하면서 욕심쟁이라 현실에 안주하며 살고 싶지 않아서 아등바등 발버둥 치는 생존형 역마살에 가깝다. 




 직장부터 인간관계, 공부, 심지어 집까지 삶에서 중요한 거의 모든 것들을 꾸준히 하거나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평생 방황했다. 


 직장을 바꾼 건 수십 번, 아예 직종을 바꾼 것도 여러 번이다. 학원 강사부터 광고회사 AE, 잡지 기자, 공인중개사, HR, 마케팅 에디터 등 연관성이 있는 듯 없는 듯 비슷한 직종의 영세 기업을 전전했다. 이직을 위해 면접을 본 횟수가 2020년도 들어 100번이 넘어가자 더 이상 세는 걸 관뒀다. 


  "넌 왜 그렇게 끈기가 없냐?"

 "그래 봤자 또 얼마나 가겠어?"

 "남들도 다 그렇게 살아."

 "도대체 네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가까운 사람한테조차 가장 많이 들은 말이다. 

 왜 내가 그들에게 해명에 가까운 설명을 해야 하는지, 이해시키는 게 힘들었다. 

 나도 나를 잘 몰랐기 때문이다. 엄청난 열등감과 자기 비하에 빠져 그들의 말에 반박할 수가 없었다. 


  내가 뭘 좋아하고, 뭘 하고 싶은지 몰라서 돈을 좇아 보기도 하고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 해 보기도 했다. 

영어 공부, 미라클 모닝, 블로그 활동, 운동, 명상, 글쓰기, 심지어 식물 기르기까지 뭐 하나 끈기 있게 하지 못했다.


 때론 지치기도 하고, 너무 현실 감각이 없는 것 같아 자책하기도 했다. 뭘 해도 작심삼일로 끝나던 내가 단 하나,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게 있다. 


 대학교에 입학한 후로 지금까지 '나'를 알기 위한 노력은 포기하지 않았다. 힘들어서 쉬어가기도 하고, 좌절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끝까지 나를 믿으려고 했다. 


 여전히 '프로 역마러'의 삶을 살지만 예전 같은 생존형보다는 좀 더 '성장형'에 가깝다. 


 이 글은 지방대 문과 출신의 보잘것없는 스펙으로 무엇하나 끈기 있기 하지 못한 '프로 역마러'가 롱런하기 위한 분투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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