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해 공부하라 (공자)
그때 나는
키르케고르 전집을 읽기 시작했기 때문에
이미 시험공부 할 사이가 없었다.
- 야마오 산세이, <왜ㅡ아버지께> 부분
오랜만에 80을 바라보는 고종사촌 형님을 만났다. 술잔을 나누며 옛날얘기를 했다. 형님이 느닷없이 말했다. “자네를 자주 만나고 싶네.”
나는 “그럼요, 형님. 자주 만나야죠.”하고 헤헤거렸지만, 정말 형님이 자주 만나자고 할까 봐 두려웠다.
형님은 내 글을 읽으면 도무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를 못 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무언가 있는 것 같아 나를 자주 만나고 싶다고 했다.
내가 29년 동안 인문학 강의를 하며 깨달은 공부의 요체는 ‘자기 그림자 보기’다. 자신의 어두운 내면을 들여다보지 않으면 아무리 공부해도 진전이 없다.
나는 노년의 남성들을 만날 때마다 절망한다. 대다수 ‘꼰대’다. 그들이 학창 시절에 배운 공부의 목표는 ‘여봐란듯이 사는 것’이었다.
다들 어느 정도 여봐란듯이 살았다. 그러니 자신의 어두운 내면을 들여다본다는 것은 상상할 수가 없을 것이다.
공자는 말했다. “분발하지 않으면 가르쳐 주지 않고, 답답해하지 않으면 일깨워 주지 않는다.”
우리는 한때 ‘키르케고르 전집을 읽기 시작했기 때문에/ 이미 시험공부 할 사이가 없었다.’ 너무나 답답했다. 그래서 분발한 것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여봐란듯이 살기 위한 공부만 하며, 내면에 어둠이 켜켜이 쌓여갔다.
이 어둠을 가슴에 켜켜이 쌓아놓고,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있을까? 마음이 편안할까? 나는 형님의 앙상한 손을 잡으며 가슴이 턱턱 막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