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은 내 안에 있는 진리를 깨닫는 것이다 (소크라테스)
오나가나 너는 항상 나를 따라오는데
서로가 비슷해도 네가 나는 아니로다
- 김삿갓, <그림자> 부분
어릴 적 ‘아버지와 고모’가 어둑한 안방에서 말도 없이 한참 동안 앉아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어떻게 저렇게 말도 없이…?’
어른이 되어 인문학 공부를 하며 알게 되었다. 사람은 말로 대화하기 이전에 온몸으로 이미 대화하고 있다는 것을.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피타고라스의 교단에서는 제자를 두 부류로 나눴다고 한다. 강의를 듣기만 하는 제자와 스승과 대화를 할 수 있는 제자.
왜 이렇게 나눴을까? 초보자들이 스승의 강의를 듣고 대화하게 되면, 온몸의 느낌보다 ‘언어의 대화’에 매몰되기 쉬울 것이다.
초보자들이 몇 년 정도 듣기만 하면, 그들은 강의를 들으며 속으로 수없이 자신과 대화를 나눌 것이다.
그들은 서서히 온몸으로 느끼는 언어에 익숙해질 것이다. 그때쯤 스승과 언어로 대화하면, 그 언어는 마중물처럼 서로의 내면에서 진리를 밖으로 솟아 나오게 할 것이다.
모든 것을 언어로 명쾌하게 설명하는 이 시대, 우리는 ‘온몸으로 하는 대화’를 잃어버렸다.
그리하여 우리는 아무리 대화를 해도 허전하다. 서로 독백만 할 뿐이다. 내면의 진리가 밖으로 솟아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삼라만상은 에너지장이다. 하나의 파동으로 연결되어 있다. 언어는 파동의 소리이다.
우리는 평소에 자신의 내면의 그림자와 자주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 ‘오나가나 너는 항상 나를 따라오는데/ 서로가 비슷해도 네가 나는 아니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