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다운 삶
“왜 그러니, 존? 왜 그래? 여느 새들처럼 사는 게 왜 그리 어려운 게냐, 존? 저공비행은 펠리컨이나 알바트로스에게 맡기면 안 되겠니? 왜 먹지 않는 게냐? 얘야, 비쩍 마른 것 좀 봐라!”
“비쩍 말라도 상관없어요, 엄마. 저는 공중에서 무얼 할 수 있고, 무얼 할 수 없는지 알고 싶을 뿐이에요, 그게 다예요. 그냥 알고 싶어요.”
- 리처드 바크, <갈매기의 꿈>에서
갈매기는 언제 가장 아름다울까? 먹고 사는 데만 신경을 쓰며 하루하루 안락하게 살아가려는 갈매기에서 우리는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가장 높이 나는 새가 가장 멀리 본다.’ 갈매기 조나단은 여느 갈매기와 다르다. 그는 ‘자신이 공중에서 무얼 할 수 있고, 무얼 할 수 없는지’ 알고 싶어 한다.
이것을 그리스 아테네에서는 아레테(탁월함)라고 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갖고 있는 잠재력을 한껏 꽃 피우는 것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겼다.
이것은 모든 생명체들의 본능이다. 산에 가 보면, 모든 생명체들이 눈부시게 아름답다.
풀은 나무 그늘 아래에서도 온 힘을 다해 햇살을 향해 뻗어간다. 아마 땅 속에서도 온 힘을 다해 물을 찾아갈 것이다.
그렇게 자신을 활짝 꽃 피우며 살아가다 스러져가는 풀 한 포기, 얼마나 장렬한가! 나무, 개미, 다람쥐, 새... 다들 멋지게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자연은 언제 봐도 아름답다. 우리도 그들의 기운으로 아름다워진다. 마침내 그들의 일원이 된다.
하지만 산을 내려오며 점점 작아진다. 큰 건물들의 그림자에 묻혀 버린다. 모래알처럼 작아진 인간은 먹고 사는 데만 온 신경을 쓰게 된다.
갈매기 조나단은 높이높이 날게 되면서 삶의 비의를 깨닫게 된다. 어느 날 그는 중얼거린다.
‘어떤 새에게 그가 자유롭다고, 잠시 수련에 힘쓰면 그것을 스스로 증명할 수 있다고 설득하는 일이 왜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일까? 왜... .’
우리는 누구나 자유를 꿈꾼다. 생명체의 근원적인 본능이다. 그 자유는 ‘자신이 무얼 할 수 있고, 무얼 할 수 없는지‘를 알 때 온다.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아레테를 한껏 꽃 피운 최초의 철학자다.
그는 인간의 탁월함에 대해 고민했다. 그러다 그는 깨달았다. 생각하는 존재인 인간이 가장 멋지게 살아가는 법을.
그는 인간 내면의 ‘로고스(logos)’를 발견했다. 로고스는 친자자연의 이치다. 소크라테스는 이 이치가 인간의 내면에도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 내면의 로고스를 활짝 꽃 피우는 것, 그래서 친자자연의 로고스와 하나가 되는 삶, 이것이 가장 멋진 인생이 아니겠는가?
그의 내면에서는 항상 로고스의 소리가 천둥소리처럼 들렸다고 한다. 그는 한평생을 그 소리에 따라 살고 그 소리에 따라 죽었다.
그는 억울하게 독배를 마시고 죽을 때도 여한이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지금까지 인류의 스승으로 추앙을 받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소크라테스가 발견한 로고스(이성)을 잃어버렸다. 우리가 쓰고 있는 이성이라는 말은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수단이 되어버렸다.
도구화된 이성으로 살아가는 현대인은 이제 더 이상 자신들의 아레테를 꽃 피우려하지 않는다.
도구화된 이성이 낳은 현대물질문명은 겉보기에는 눈부시다. 지상낙원을 구가하는 듯이 보인다.
하지만 하루하루 잘 먹고 잘 사는 데만 온 신경을 쓰는 현대인이 아름다운가! 인간에게는 타고난 미적 감수성이 있어 자신을 속일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