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밀밭의 파수꾼
나는 늘 넓은 호밀밭에서 꼬마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어. 어린애들만 수천 명이 있을 뿐 주위에 어른이라고는 나밖에 없는 거야. 그리고 난 아득한 절벽 옆에 서 있어.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주는 거야. 애들이란 앞뒤 생각 없이 마구 달리는 법이니까 말이야. 그럴 때 어딘가에서 내가 나타나서는 꼬마가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거지. 온종일 그 일만 하는 거야.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
-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호밀밭의 파수꾼』에서
아침에 인터넷 뉴스를 훑어보다가 ‘헉!’ 숨이 막혀왔다.
‘현직 교사 24명이 대학수학능력시험과 수능 모의평가 출제위원으로 참여하면서 대형입시학원에 문제를 팔고 거액을 챙겨온 것으로 드러났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고는 있었지만, 막상 현실로 드러나니까 아득해진다.
이 뉴스를 접하는 학부모, 학생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혹 ‘뭐 다 그런 거지.’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분노를 하지 못하는 마비된 영혼은 얼마나 슬픈가! 아주 오래 전의 나의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
초등학교 6학년, 읍내 중학교를 진학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했다. 학교에서는 보충수업까지 했다.
시험 보는 어느 날,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야, 어제 밤에 배운 게 나왔어.”
그 아이들은 담임선생님에게 과외를 하고 있었다. ‘어제 밤에 배운 것이 시험에 나오다니!’
하지만 나는 무덤덤했다. ‘다 그런 거지 뭐.’ 초등학교 6학년 아이가 있을 수 없는 부조리 앞에서 그냥 무덤덤해 하다니!
우리 집은 오랫동안 셋방살이를 했다. 나는 주인집 사람들의 눈치를 보는 게 몸에 배었다.
마음껏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아이! 그 아이의 얼굴은 점점 표정을 잃어갔다.
그 뒤 나는 글을 쓰고 인문학을 공부하며 나의 감정을 세심하게 살피고 소중하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아이들은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다. 그러다 어른이 되어가면서 자신의 감정에 무뎌지게 된다.
자신을 세상에 맞춰 살아가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삶이 공허해진다. 세상은 활력을 잃게 된다.
이런 굳어버린 세상에 다시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어야 한다. 우리 안의 아이를 깨워야 한다.
중국 명대의 유학자 이탁오는 동심(童心), 아이의 마음을 깨우면 누구나 성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길을 잃게 되면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가라고 한다. 길을 잃어버린 현대인, 최초의 인간의 마음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미국의 작가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의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의 주인공 16살 홀든 콜필드는 말한다.
‘나는 늘 넓은 호밀밭에서 꼬마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어...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주는 거야...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
나는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으며 가슴이 아려왔다. 나의 고교 시절도 홀든과 같았다.
하지만 나는 애써 무덤덤하게 지내며 무사히 졸업을 했다. 굳어버린 가슴으로 보낸 나의 소년시절, 그 뒤 나의 삶은 어떻게 되었을까?
우리는 자신의 내면에 있는 아이를 항상 돌보아야 한다. 위험하게 되지 않도록 ‘내면 아이’의 파수꾼이 되어야 한다.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는 말한다. “미성숙한 인간의 특징이 어떤 이유를 위해 고귀하게 죽기를 바라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반면 성숙한 인간의 특징은 동일한 상황에서 묵묵히 살아가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감정을 소중히 지켜야 성숙한 인간이 된다. 항상 묵묵히 살아갈 수 있다. ‘살아 있음’을 만끽하면서.
그렇지 않으면, 헛헛한 삶을 견딜 수 없어 ‘고귀하게’ 죽기를 바라게 된다. 온갖 망상에 시달리게 된다.
여기 산. 산은 높고, 산은 위험해.
그리고 여기는 사막이군요.
아마 좀 더 오래 울어야 할까 봐요
강물이 만져지질 않는군요.
- 노혜경, <점자지도> 부분
오랫동안 감정을 억누르고 살아가면, 눈물이 말라 버린다. 세상은 다 정지해 있는 죽은 사물이 된다.
오래 오래 울어야 한다. 그러면 다시 해가 돌고 강물이 흐르고 나무와 풀이 자라고 동물들이 뛰어 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