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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담화

by 고석근

뒷담화


뒷담화는 악의적인 능력이지만 많은 숫자가 모여 협동을 하려면 사실상 반드시 필요하다. 현대 사피엔스가 약 7만년 전 획득한 능력은 이들로 하여금 몇 시간이고 계속해서 수다를 떨 수 있게 해주었다. 누가 신뢰할 만한 사람인지에 대한 믿을 만한 정보가 있으면 작은 무리는 더 큰 무리로 확대될 수 있다. 이는 사피엔스가 더욱 긴밀하고 복잡한 협력 관계를 발달시킬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 유발 하라리,『사피엔스』에서



오래 전 학창 시절에 우리는 선생님들에 대한 뒷담화를 많이 했다. 그러다 어떤 아이들은 선생님에게 걸려 혼이 나기도 했다.


선생님은 아이에게 매질을 하며 소리쳤다. “왜 당당하게 앞에서 말하지 못하고 뒤에서 얘기해?”


우리는 묵묵히 앉아 듣고 있었다. 속으로 중얼거렸을 것이다. ‘앞에서 얘기하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뒷담화의 능력’으로 인류는 찬란한 문명사회를 이룩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뒷담화는 악의적인 능력이지만 많은 숫자가 모여 협동을 하려면 사실상 반드시 필요하다... 누가 신뢰할 만한 사람인지에 대한 믿을 만한 정보가 있으면 작은 무리는 더 큰 무리로 확대될 수 있다.’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라 온갖 상상을 다 할 수 있다. ‘천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알 수 없다.’


인간은 겪어봐야 아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뒷담화를 할 수 밖에 없다. 자신들이 겪은 이야기를 나눔으로써 한 인간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억울하게 죽은 사람도 많았을 것이다. 사람의 말은 에너지 그 자체라 사람을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는 것이다.


지금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악설 루머에 시달리고 있을까? 그렇다고 인간에게 뒷담화를 금지할 수 있을까?

‘언론’에 재갈을 물려 성공한 사례는 별로 없다. 우리는 끊임없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아름다운 뒷담화 문화’를 위하여.


건전한 의사소통이 부재하는 사회에서는 가짜 뉴스들이 판치게 된다. 생각하는 동물로 진화한 인간은 지금도 진화중인 것 같다.


‘어떻게 하면 더 나은 문화를 꾸릴 수 있을까?’ 항상 노력해야 하는 게 인간의 숙명일 것이다.


오늘 아침 인터넷 뉴스를 보니, ‘신상 공개 어떻게 봐야 할까?’라는 글이 실려 있다.


‘숨진 교사 가해한 학부모는 이 여자입니다’ 사진 공개 파장. ‘직업은 ㅇㅇ 강사’ ‘직장은 ㅇㅇ’


이러한 신상 공개가 마녀 사냥으로 이어지지 말아야 할 것이다. 우리의 집단지성이 시험대에 올랐다.


지금은 인터넷의 발달로 지구가 하나의 마을이 되었다. 우리가 뒷담화를 잘 할 수 있다면, 인류의 온갖 위기들을 극복하고 아름다운 미래를 열어갈 수 있을 것이다.


인간에게는 ‘양심’이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들의 양심을 믿으며 아름다운 뒷담화 문화를 만들어가야 한다.


안으로 안으로 삭이고만 살던

여자의 분냄새

여자의 살냄새

대문 밖을 철철 흘러나가

삽시간 온 마을 소문의 홍수로

잠길지라도


진해버려

진해버려

쥐 잡아 먹은 듯

그 입술에 불을 놓아 버려


- 신달자, <화장> 부분



오랫동안 인간의 뒷담화는 왜곡되었다. ‘대문 밖을 철철 흘러나가/ 삽시간 온 마을 소문의 홍수로’ 바뀐 뒷담화에 갇혀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화장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을까?


‘쥐 잡아 먹은 듯/ 그 입술에 불을 놓아 버려’ 시인은 새로운 뒷담화의 선구자다. 그래서 지금은 누구나 자유롭게 화장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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