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판사판(理判事判)

by 고석근

이판사판(理判事判)


그날 밤 나는 생전 처음으로 영혼이 곧 육체이며 다소 변화무쌍하고 투명하고 더 자유롭긴 하지만 역시 육체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다소 과장되어 있고 긴 여행으로 지치고 물려받은 짐으로 구부러져 있기는 하나 육체 또한 영혼이라는 사실도 깨달았다.


-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우리는 궁지에 몰린 상황을 말할 때 이판사판이라는 말을 쓴다. 이 말은 이판(理判)과 사판(事判)의 합성어다.


불교에서 ‘이판(理判) + 승(僧)’은 ‘속세를 떠나 수행에만 전념하는 스님’을 일컫는 말이다.


‘사판(事判) + 승(僧)’은 ‘절의 사무나 경리 등을 맡아서 처리하는 스님’을 일컫는 말이다.


그런데 이 두 단어가 합쳐지게 되면, ‘막다른 데 이르러 어찌할 수 없게 된 지경’의 뜻이 된다.


왜 이렇게 씌어지게 되었을까? 오랜 집단지성의 산물이 아닐까? ‘이판과 사판은 합쳐지면 안 된다.’


‘그 둘은 각자 다른 길을 가야 한다.’ 도 닦는 사람은 절의 살림에 관심이 없어야 할 것이다.


기독교의 성경에 나온다. ‘재물과 하느님은 동시에 섬길 수 없다.’ 그렇다고 도 닦는 스님이 도만 닦을 수는 없다.


그분들도 먹고살아야 한다. 그 역할을 하는 스님이 사판이다. 물론 그분들도 절의 살림만 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서로의 선은 넘지 말아야 한다. 사람은 크게 보면, 이판과 사판으로 나눠지는 것 같다.


나는 초중고 시절에 반장 한번 해보지 못했다. 그들이 부러웠다. 언제라도 선생님 가까이 갈 수 있는 아이들.

그러다 대학에 들어가서 과대표를 맡게 되었다. ‘헉!’ 나는 기뻤다. ‘드디어 반장을 하는구나!’


물론 대학의 과대표는 초중고의 반장과는 다르다. 그야말로 학우들의 소소한 뒤치다꺼리만 한다.


그런데 그 과대표 역할이 내게는 녹록지 않았다. 한 학우가 도와줘서 무난히 역할을 다 할 수 있었다.


그 후 단체의 장을 몇 번 맡았다. 나는 알게 되었다. 나는 ‘장감’이 아니다! 나의 길은 이판이었다.


최근에 한 ‘장감’을 만나 술잔을 나누며, 삼국지에 나오는 ‘유비와 제갈공명’을 생각했다.


사판인 유비는 관우를 비명에 가게 한 오의 손권을 응징하기 위해 출정한다. 제갈공명은 극구 말린다.


이판인 제갈공명의 눈에 패전이 훤히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끝내 징벌에 나선 유비는 육손의 계락에 걸려 처참하게 패한다.


이후 유비의 촉은 쇠락을 길을 걷게 된다. 이판과 사판은 서로를 존중해야 한다. 그러면 상생(相生)이 된다.

그 둘이 서로를 무시하게 되면, 상극(相剋)이 된다. 나는 그 장감이 좋은 이판을 만나게 되면 멋진 장이 되리라는 생각을 했다.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독불장군이 되면 능력을 발휘할 수가 없다. 인간은 혼자서는 너무나 미약한 존재다.

우리는 카잔차키스처럼 깨달아야 한다.


‘나는 생전 처음으로 영혼이 곧 육체이며 다소 변화무쌍하고 투명하고 더 자유롭긴 하지만 역시 육체임을 깨달았다. (...) 육체 또한 영혼이라는 사실도 깨달았다.’


우리가 독불장군이 되는 이유는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었다는 착각 때문이다. 육체 없는 영혼은 너무나 자유로우니까.



내 몸에 달빛이 우리고 있다.

그러나 머언 내 눈이 그것을 보지 못한다.

달이, 해가

내 몸속에 있다.


- 까비르, <머언 내 눈이> 부분



내 속에 있는 해와 달이 창공에서 빛난다.


내 안에 없는 것은 밖에도 없다.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면, 나와 네가 나눠지고, 안과 밖이 나눠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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