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답만 하던 그 친구 이야기
대답만 하던 그 친구 이야기
지금으로부터 7~8년 전, 작은 공부방을 운영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제게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한 학생을 만났습니다. 그 아이는 또래보다 체구가 작고, 표정도 늘 굳어 있었습니다. 말을 걸면 언제나 같은 음성, 같은 표정으로 짧게 “네.” “아니요.” 하고 대답하곤 했습니다.
그 모습이 낯설다기보다 마음이 아팠습니다. 마치 세상과 단단한 벽을 사이에 둔 듯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아이에게 억지로 다가가지 않았습니다. 억지로 말을 시키거나, 관심을 드러내는 일이 오히려 부담이 될까 봐서요. 누군가 보기엔 무심해 보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건 무관심이 아니라 기다림이었습니다.
그 아이가 먼저 다가와 주기를, 내 마음을 믿고 한마디라도 건네주기를, 저는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공부방에 다닌 지 거의 1년이 되어가던 어느 오후였습니다. 그날도 평소처럼 수업을 마치고 아이들이 하나둘 돌아가던 시간, 그 친구가 문을 나서며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순간, 시간이 멈춘 것 같았습니다. 처음으로 제게 먼저 건넨 인사였습니다. 너무 놀라고 기뻐서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엘리베이터 앞까지 따라갔습니다.
“그래, 안녕히 가! 내일 보자!” 몇 번이고 웃으며 인사를 되받아 주었습니다.
그날, 그 짧은 한마디가 제 마음속엔 오랫동안 잊히지 않는 따뜻한 울림으로 남았습니다. 그 이후로 그 친구에게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공부방에 들어올 때마다 인사를 하고, 수업 중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조심스레 손을 들고 “선생님, 여기 좀 알려주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예전에는 그저 옆에 조용히 서 있기만 하던 아이가, 이제는 자신의 필요를 말할 줄 알고, 도움을 청할 줄 알게 된 것입니다.
시간이 흐르며 그 아이는 더욱 다정하고 배려 깊은 아이로 자라 갔습니다. 제가 좋아한다고 이야기했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책을 기억해 두었다가 어느 날 조심스레 선물해주기도 했습니다.
“선생님이 좋아하신다고 해서요.” 그 짧은 말 한마디가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습니다. 학원을 옮긴 후에도 가끔 달달한 커피를 사 들고 찾아왔습니다.
“선생님, 요즘도 글 쓰세요?” 그 물음에 저는 웃으며, “응, 여전히 매일 쓰고 있지.”라고 답했습니다.
우리는 나이 차이도 잊은 채 친구처럼 대화했고, 함께 운동도 하며 삶의 작은 기쁨을 나누었습니다. 이제 그 친구는 중학교 3학년이 되었습니다. 사춘기의 문턱에 서 있는 아이지만, 여전히 따뜻한 마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공부도, 친구 관계도, 세상과의 관계도 앞으로 더 복잡해지겠지만, 저는 여전히 믿습니다. 그 아이가 세상을 향해 내딛는 걸음마다, 그 안에 ‘따뜻한 관심을 준 누군가의 마음’이 깃들어 있을 것이라고요. 시간이 흘러 연락이 뜸해지더라도, 그 아이는 제 마음속에서 여전히 소중한 존재로 남을 것입니다.
저 역시 누군가의 선생님이자, 누군가의 기억으로 남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말보다 시선과 태도를 더 정확히 기억합니다. 가르침보다 먼저 전해지는 것은, ‘당신은 소중하다’는 마음입니다. 그 한마디의 따뜻한 말, 그 짧은 눈 맞춤이 어린 마음에는 평생의 신뢰로 자리 잡습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
_아프리카 속담
이 말처럼, 아이의 공부는 혼자의 몫이 아닙니다. 부모, 선생님, 이웃의 따뜻한 말 한마디, 그 모든 관심이 모여 아이의 세상을 단단하게 세웁니다. 공부는 결국 사랑과 관심의 다른 이름입니다.
OO야, 지금 시험 준비하느라 많이 힘들지? 그래도 잘 이겨내리라 믿는다. 네가 얼마나 성실한지, 선생님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
앞으로도 우리 오래오래 좋은 인연으로 지내자. 힘든 일이 생기거나 외로울 때는 언제든 연락해도 괜찮다. 특히 여자친구 생기면 꼭 1번으로 알려줘야 해, 알았지? 하하
항상 응원하고, 늘 사랑한다.
아이들의 공부는 어른들의 훈계로 시작되지 않습니다. 그 시작은 언제나 작은 관심과 진심 어린 믿음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조용히 들어주는 한마디, 함께 웃어주는 한순간이 아이의 마음에 ‘할 수 있다’는 희망의 불씨를 지펴줍니다.
“교육은 마음을 여는 일이다.
열린 마음 위에야 비로소 지식이 쌓인다.”
_ 요한 볼프강 폰 괴테
그래서 저는 아이들의 공부는, 어른들의 작은 관심 한 조각에서 시작된다고 믿습니다. 그 관심이 모여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고, 그 인생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따뜻한 빛이 되어 돌아옵니다.
오늘도 저는 아이들에게 말합니다.
“괜찮아, 천천히 해도 돼. 선생님은 네 편이야.”
그 한마디가, 또 하나의 기적을 만들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