츠지이 노부유키는 '장애를 극복'한 게 아니다
츠지이 노부유키.
지난 주말 한국을 다녀간 일본인 피아니스트의 이름입니다. 노부유키는 그 유명한 반 클라이번 콩쿠르의 우승자입니다. 이 콩쿠르는 가장 최근의 우승자 임윤찬, 그리고 그 이전 대회 우승자 선우예권으로 한국인들에게도 많이 친숙하죠. 2009년 스무 살이 된 노부유키는 이 대회에 참가해 중국인 피아니스트 장 하오천과 공동으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습니다. 당시 준우승은 피아니스트 손열음이 차지했습니다.
츠지이 노부유키는 이보다 앞서 고교 재학 중이었던 2005년 쇼팽 콩쿠르에도 참가했습니다. 2005년 쇼팽 콩쿠르에선 임동혁 임동민 형제 피아니스트가 공동 3위를 차지하며 한국인 첫 수상 기록을 세웠는데, 노부유키도 비록 최종 결선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최연소로 비평가상을 받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노부유키의 이런 화려한 ‘수상 경력’은 그가 소안구증으로 선천적 시각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더욱 특별하게 느껴집니다.
그의 음악 자체에 빠져들었다
지난 3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노부유키의 솔로 리사이틀. 매니저가 그를 인도해 함께 무대로 나왔습니다. 그는 피아노 의자에 앉아 건반의 위치를 잠시 가늠하고 곡을 연주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노부유키가 앞을 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자꾸 의식했지만, 점점 음악 그 자체에 빠져들게 되었어요.
그는 유학 경험 없이 일본 내에서만 공부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음감이 뛰어났던 그는 오른손 왼손 따로 녹음된 테이프를 듣고 악보를 통째로 외워 새 곡을 연습했다고 합니다. 그를 가르친 일본인 피아니스트 가와가미 마사히로는 ‘내가 그에게 알려준 것은 악보에 적힌 음이 전부’라고 했죠. ‘악보에 적힌 것들만 알려주면 노부유키가 그걸 마음속에서 진정한 음악으로 빚어낸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빚어낸 노부유키의 음악은 굉장히 개성적이었습니다. 연주자마다 해석이 다른 건 당연한데, 노부유키의 연주는 특히 다르게 들리더라고요. 대범하다고 해야 할까요, 빠른 곡들에서는 힘차고 자신감 넘치는 타건과 속도감이 인상적이었고, 종종 감상적인 느낌으로 연주되는 곡들도 루바토 별로 없이 담백하게 연주했는데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노부유키는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합창석까지 꽉 채운 관객들의 열화와 같은 함성과 박수에 굉장히 즐거워하는 모습이었는데요, 커튼콜 때도 매니저의 인도로 무대 등퇴장을 반복하면서, 앙코르 세 곡을 들려줬습니다. 앙코르 첫 곡으로는 라흐마니노프의 보칼리제를 들려줬고, 이어 카푸스틴의 에튀드 11번, 그리고 리스트의 ‘라 캄파넬라’까지였습니다.
그는 그의 방식으로 본다
마지막 앙코르 곡이었던 ‘라 캄파넬라’는 첫 부분을 시작하자마자 객석에서 ‘아~’ 하는 탄성이 흘러나왔습니다. 놀라움과 기대감이 서린 탄성이었겠지요. 템포가 빠를 뿐 아니라 수많은 도약과 트릴이 나오는 이 난곡을, 그는 전혀 힘겨워하지 않는 기색으로, 깔끔하고 멋지게 연주했습니다. 마치 “아직도 내가 건반을 못 본다고 생각해?” 하고 묻는 듯한 연주였어요.
미국과 일본에서 방영된, 노부유키의 이야기를 다룬 ‘Touching the Sound’라는 다큐멘터리가 있습니다. 이 다큐멘터리에는 노부유키가 종종 ‘본다’ ‘봤다’라고 말한다는 대목이 나옵니다. 주변 사람들은 처음에는 시각 장애가 있는 노부유키가 이렇게 말하는 걸 어색하게 여기지만, 점차 그는 설명할 수 없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물을 보고 감각한다는 사실을 믿게 됩니다. ‘소리를 만진다’는 이 다큐멘터리 제목처럼, 그는 온몸의 감각으로 사물을 느끼고 받아들입니다.
이 다큐멘터리에서 노부유키의 어머니가 한 이야기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정상적(Normal)’이라는 게 뭘 의미하는지 종종 생각해 보곤 합니다. 저는 4월이면 꽃구경을 가곤 했는데, 처음에는 꽃을 볼 수 없는 아이를 그런 곳에 데려가다니, 마음이 편치 않았어요. 하지만 그건 잘못된 생각이었습니다. 제 잣대로 아이가 꽃을 볼 수 없다고 단정했지만, 아이는 나름의 방식으로 꽃을 볼 수 있었던 거예요. 아이가 최대한 이 세상을 경험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만 하면 그 경험을 함께 공유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이런 어머니가 있어서 노부유키가 피아니스트로 대성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노부유키는 다큐멘터리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부모님은 한 번도 피아노를 억지로 시킨 적이 없어요. 늘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게 해 주셨죠. 항상 감사하게 생각해요. 어머니는 단 한 번도 제가 눈이 안 보인다는 이유로 뭔가를 할 수 없을 거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제가 다른 아이들과 함께 여러 활동을 할 수 있도록 격려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수영, 스키, 등산 같은 활동을 경험할 수 있었죠.”
“이겨냈다고 생각해 본 적 없다”
노부유키는 ‘넌 눈이 안 보이니까 이건 할 수 없어’ 같은 말을 듣지 않고 자랐다는 겁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신체적 장애 아니라도 여러 가지 다른 조건 때문에 이것도 안돼, 저것도 안돼, 이런 얘기를 듣거나, 스스로에게 하면서 살고 있지 않은가요. 어쩌면 그러면서 가능성을 부정하고 삶 속에 장애물을 스스로 만들고 있는 건 아닌지요. 노부유키는 내한공연을 앞두고 한국 기자들과 진행한 인터뷰에서도 줄곧 밝고 긍정적인 답변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이 인터뷰에서 나왔던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볼까요.
Q. 작곡도 하고 있는데, 어떤 방식으로 작곡하는지요?
A. 제 안에서 떠오르는 이미지를 토대로, 혹은 자연 속을 걷고 바람을 맞으면서 얻는 영감을 제 안에서 이미지화해서 작곡을 하고 있습니다.
Q. 눈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 당신의 음악, 연주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A. 음악은 장애와 관련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렸을 적엔 눈이 안 보이는 것에 대해 왜 이럴까 생각했던 적도 있지만, 지금은 표현하고자 하는 것 모두 음악으로 표현할 수 있기 때문에 장애가 있다는 것이 저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지 못하는 것 같아요.
Q. 레퍼토리를 익히는 데 더 많은 노력을 쏟아부어야 하는 등 아무래도 많은 다른 연주자들과 동일한 조건에서 활동하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였고 어떻게 이겨냈는지요?
A. 힘든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겨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노부유키의 명쾌한 답변에 큰 깨달음을 얻은 것 같습니다. 그의 답변이 편하게 노력 없이 여기까지 왔다는 뜻은 아닐 겁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세계 무대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꿈을 이루기 위해, 오랜 시간을 피아노 앞에서 보냈으니까요. 다만 이게 뭘 이겨내고 말고의 문제는 아니라는 겁니다.
한 피아니스트 츠지이 노부유키
츠지이 노부유키는 종종 ‘시각장애를 극복한’ 불굴의 피아니스트로 묘사됩니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앞을 못 보는 고통 속에서’ ‘피나는 노력으로 극복’ 이런 표현들이 종종 등장하죠. 그런데, 이 모두가 어쩌면 지극히 ‘비장애인’ 입장에 치우친 시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장애를 극복한다’는 표현은 국가인권위에서도 사용을 자제해 달라고 권고한 바 있습니다. 이 말 자체가, 장애를 질병이나 일시적 시련처럼 이겨내거나 헤쳐나갈 수 있는 대상으로 오인하게 하고, 장애인에 대한 선입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겁니다. 또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수용해 살아가는 장애인들의 자기 정체성을 부정하는 표현이 될 여지도 있습니다.
노부유키는 자신의 방식으로 피아노를 느끼고 음악을 합니다. 독주가 아니라 협연을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장에서 숨소리에 최대한 집중하고, 리허설을 여러 번 반복하며 다른 사람들과 호흡을 맞춰갑니다. 이렇게 할 수 있게 되기까지 엄청난 노력을 기울인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는 ‘장애를 극복'한 음악을 한다기보다는, 자신의 방식으로 치열하게 음악을 하고 있는 겁니다.
연주하는 내내 노부유키는 굉장히 행복해 보였습니다. 그는 '라 캄파넬라' 연주를 마치고 객석의 환호 속에 다시 무대 인사를 하고, 웃으며 피아노 뚜껑을 닫고 매니저와 함께 퇴장했습니다. 그의 연주를 보고 저도 행복해졌습니다. 그는 ‘기적의 피아니스트’로 종종 불리지만, 저는 그를 ‘행복한 피아니스트’로 부르고 싶어졌습니다. 행복한 피아니스트, 츠지이 노부유키를 다시 한국 무대에서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SBS의 뉴스구독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 '커튼콜 +' 코너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