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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마도 아티스트 Dec 21. 2021

조성진에게 동질감을 느끼다  

내 인생곡은 쇼팽 스케르초 2번 

 2021년 여름,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오랜만에 쇼팽으로 돌아왔다. 2015년 쇼팽 콩쿠르 우승자였던 조성진은 2016년 쇼팽으로 도이치그라모폰 데뷔 음반을 냈다. 이후 슈베르트, 모차르트, 리스트, 드뷔시 등 다른 작곡가들을 탐구하던 그가 5년만에 다시 쇼팽 음반을 녹음한 것이다. 스케르초 네 곡 전곡, 그리고 쇼팽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연주했다. 도이치그라모폰은 음반이 발매되기 전 뮤직비디오로 스케르초 2번을 내놨다. 아마도 스케르초 네 곡 중에 가장 잘 알려진 곡일 것이다. 

 조성진은 음반 발매 기념 기자회견에서 스케르초 2번이 특히 각별한 의미가 있는 곡이라고 했다. 

"스케르초 2번은 저와 추억이 많은 곡이예요. 음악도 추억이 중요한 것 같아요.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 연주했던 곡인데, 그 곡을 중학교 3학년 올라가기 직전인 2009년 1월쯤에 정명훈 선생님 앞에서 연주했어요. 이 곡으로 정명훈 선생님과 인연이 생겼죠. 또 2007년에 제 연주를 들으러 오셨던 신수정 선생님과도 이 곡 덕분에 인연을 맺게 됐어요. 스케르초 네 곡 중에 어떤 곡이 더 훌륭하다 말할 수는 없지만, 스케르초 2번은 저한테 더 특별해요" 

 조성진의 스케르초 2번 이야기를 듣다 보니, 갑자기 친밀감이랄까 동질감 같은 게 느껴졌다. 조성진 같은 대 피아니스트와 내가 공유하는 점이 있었다! 나에게도 스케르초 2번은 특별한 의미를 가진 곡이었던 것이다. 물론 나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이 곡을 연주할 실력은 전혀 아니었지만.  

 나는 스케르초 2번을 수경이 언니 연주로 처음 만났다. 수경이 언니는 이모에게 피아노 레슨을 받는 학생 중 한 명이었다. 내가 초등학생일 때 중학교에 다니던 언니는 1주일에 두 번씩 우리 집에 레슨을 받으러 왔다. 피아노를 잘 쳤던 언니는 나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수경 언니 레슨이 끝나고 나면 나도 이모한테 레슨을 받았다. 이모는 내가 수경 언니 어렸을 때와 비슷하다며, 열심히 하면 언니처럼 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수경 언니가 스케르초 2번을 쳤던 게 정확히 언제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다른 곡에 비해서는 꽤 오랜 기간 쳤던 것은 분명하다. 수경 언니 레슨하는 걸 계속 들었으니까, 처음에는 느린 템포로 악보를 익히고, 점점 속도를 빨리 하며 음악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나도 따라갔던 셈이다. 그 잘 치는 수경 언니도 이 곡은 자꾸 틀리고 다시 치는 걸 보니 정말 어려운 곡임에 분명했다.

이 곡은 따라라라, 따라라라, 하고 셋잇단음표가 이어지는 그 유명한 도입부부터 강력한 흡인력으로 나를 끌어당겼다. 묘하게 불길한 느낌으로 시작한 이 곡은 격정적이었다가, 서정적이었다가, 화려했다가, 내가 이전에 치던 곡과는 차원이 달랐다. 도입부만 들으면 그 다음부터는 내 머릿속에선 자동으로 이 곡이 쫘라라락~ 펼쳐지곤 했다. 아 나도 쳐보고 싶다. 너무 멋진데 너무 어렵다! 언젠가는 나도 이 곡을 칠 수 있게 될까. 

그런데 나는 이 곡을 상당 기간 베토벤 곡으로 잘못 알고 있었다. 왜 그랬는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수경 언니가 당시 베토벤 소나타들을 치고 있었기 때문에, 아마 이 곡도 베토벤 곡이라고 지레짐작했던 것 같다. 이 곡이 쇼팽의 스케르초 2번이라는 걸 알게 된 건 어른이 된 후였다. 1985년 쇼팽 콩쿠르 우승자였던 피아니스트 스타니슬라브 부닌의 음반에서 이 곡을 들은 것이다. 이 곡의 족보를 바로잡기는 했지만, 언젠가 이 곡을 나도 쳐보고 싶다는 소망은 접어버린 지 오래였다. 

내가 이 소망을 다시 떠올린 것은 나이 마흔이 다 되어서였다. 2007년, 회사에서 연수 기회를 얻어 영국에서 '유럽 문화정책과 경영' 석사 과정을 공부하게 되었다. 내가 다니던 워릭대학교는 음악대학은 없었지만 대신학생들의 취미 음악 활동을 지원하는 '뮤직센터'라는 기관이 있었다. 이 뮤직센터에는 피아노가 갖춰진 연습실이 여럿 있었는데, 원하는 학생들은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고 했다. 학기가 시작되기 전에 뮤직센터에 구경 갔다가 피아노 레슨 안내문을 발견했다. 소정의 비용을 내면 레슨 선생님을 소개받아, 뮤직센터에서 레슨을 받을 수 있다는 거였다.

콩당콩당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전혀 계획에 없던 일이었지만 나는 당장 뮤직센터 사무실에 들어가서 레슨을 신청했다. 뮤직센터에는 레슨비 지원 프로그램도 있다고 했다. 오디션에서 두 명을 뽑아 1년치 레슨비를 지급해준다는 것이었다. 레슨비가 꽤 비쌌다. 밑져야 본전이지 싶어, 덜컥 오디션 지원서까지 쓰고 돌아왔다. 그리고 오디션 준비한다고 며칠간 뮤직센터 연습실을 드나들며 쇼팽의 녹턴 작품번호 9의 2번을 연습했다. 피아노를 그만두고 난 후에도, 가끔 생각나면 뚱땅거리던 곡이었다.

 

 오디션은 오디션이었다. 막상 가니까 어쩔 수 없이 긴장이 되었다. 정말 오랜만에 다른 사람들 앞에서 치는 것이었는데, 실수 연발하면서 연주를 마쳤다. 연주만 하는 줄 알았는데, 인터뷰도 있었다. 심사위원이 질문을 던졌다. 왜 피아노를 배우려 하느냐고. 
 
 "어릴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고, 중학교 때 그만뒀어요. 당시 저는 전공할 것이 아니라면 피아노를 배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피아노는 나중에 어른이 되어 여유가 생기면 다시 칠 수 있다고 생각했고요. 하지만 실제로는 그러지 못했어요. 오랫동안 저는 집에 피아노도 없이 살았습니다. 


 저는 바쁜 회사 생활을 잠시 접고, 이 곳 영국에 와서 오랜만에 다시 학생이 되었습니다. 공부를 새로 시작하는 거죠. 피아노도 그렇게 새로 시작할 수 있는 좋은 때라고 생각해요. 어린 시절에는 그저 선생님이 시키니까, 해야 하는 숙제니까, 잘 모르고 그냥 쳤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전보다 음악을 더 잘 이해하고 좋아하게 되었어요. 콘서트홀에서 수많은 피아니스트들의 연주를 들으면서, 나도 다시 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어요. 다시 시작하면 어릴 때보다 훨씬 즐겁게 피아노를 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연주는 만족스럽지 않았지만, 내 대답에는 스스로 만족했다. 내가 왜 다시 피아노를 치려 하는지, 대답하면서 나 스스로를 납득시킨 셈이다. 하지만 오디션에 합격하지는 못했다. 나보다 잘 치는 학생들이 많았던 것이다. 결국 적지 않은 내 돈을 피아노 레슨비로 내야 했지만,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 오디션에 심사위원으로 왔던 멜빈 선생님은 첫 만남에서 나에게 물었다. 예전에 어떤 곡들을 쳤고, 앞으로 무슨 곡을 치고 싶냐고. 그 순간 떠오른 게 쇼팽 스케르초 2번이었다. 

스케르초 2번을 치고 싶은데요...
쇼팽 스케르초 2번 말이죠? 
네, 안될까요? 너무 어려울까요? 

쇼팽 스케르초 2번을 치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나는 이 곡을 칠 주제는 아니라는 생각이 잠깐 사이에 엇갈렸다. 녹턴과 연습곡 몇 곡 치다가 그만둔 게 중학교 때였고, 그 때도 스케르초 2번은 감히 넘볼 수 있는 곡이 아니었다. 그런데 20년 넘게 피아노 뚜껑 닫아두고 지내다가, 나이 마흔이 다 되어 굳어버린 손가락으로 이 곡을 치겠다고? 하지만 선생님의 반응은 너무나 흔쾌했다. 

안될 거 뭐 있어요! 치고 싶은 곡을 치는 게 가장 좋아요! 


다만 스케르초 2번 악보가 없어서 사야 한다고 했더니, 선생님은 국제 악보도서관 프로젝트, IMSLP (International Music Score Library Project)'라는 사이트를 알려줬다. 저작권이 만료된 퍼블릭 도메인 악보들을 다운로드 받아 사용할 수 있는 사이트다. 요즘은 한국에서도 '임슬프'로 불리며 많이 이용되고 있지만, 당시 이런 사이트의 존재를 처음 알았던 나에게는 '신세계'로 다가왔다. 악보집 대신 파란색 커버의 서류철을 샀다. 치고 싶은 곡의 악보를 IMSLP에서 몽땅 내려받고 인쇄해 서류철에 차곡차곡 끼워넣으니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 


한 학기 동안 쇼팽 스케르초 2번과 녹턴 작품번호 9의 1을 연습했다. 쇼팽 스케르초 2번은 진짜 내 수준에 많이 버거운 곡이었다. 악보를 보는 건 크게 어렵지 않았다. 하도 오랫동안 내 머릿속에 각인됐던 멜로디라서 금세 익힐 수 있었다. 문제는 피아노를 오랫동안 치지 않았던 내 열 손가락이었다. 힘도 없었고 민첩하지도 않았다. 조금만 치면 손목이 아파왔다. 손 크기가 기껏 한 옥타브 짚을 정도로 작은 것도 문제였다. 손을 한껏 크게 벌려야 겨우 칠 수 있는 대목이 많았다. 그래도 꾸역꾸역 쳐나갔다. 힘들고 어려웠지만 내 손으로 이 곡을 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뿌듯했다. 


집에는 피아노가 없어서 연습하려면 학교 뮤직센터에 가야 했다. 수업이 비는 낮 시간에 가서 연습했다. 연습실이 붐벼 자리가 나기를 기다려야 하는 날도 종종 있었다. 연습실에서 흘러나오는 다른 학생들의 피아노 소리를 들으며 자극을 받기도 하고, 함께 기다리는 학생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수업이 끝나면 학교 끝나는 아이들 픽업해서 기숙사에 돌아와서 저녁 먹고, 밤에 다시 학교로 돌아가 피아노를 연습했다. 

연습실이 너무 복잡할 때는 옛날 사범대학이었다는 낡은 건물 강의실에 방치된 피아노를 치러 가기도 했다. 관리를 안 해서 컨디션이 좋지는 않았지만, 사람이 없어서 가면 언제든 피아노를 칠 수 있었다. 예전엔 집에 피아노가 있어도 몇 달간 건반 한 번 안 쳐보고 지내기 일쑤였는데, 영국에서는 집에 피아노가 없다는 결핍의 상태가 피아노를 치고 싶다는 욕망을 더 간절하게 했다.  

피아노 레슨은 뮤직 센터의 작은 홀에서 진행되었다. 멜빈은 칭찬을 많이 하는 선생님이었다. 어린 시절 나는 연습을 많이 하지 않은 날은 레슨에서 혼날까 봐 걱정했고 도망가고 싶을 때가 많았다. 하지만 이젠 혼날까 봐 걱정하는 게 아니라, 미리 연습을 안해서 내가 레슨에서 얻는 게 적을까 봐 걱정했다. 어릴 때는 어른이 시켜서 하는 '의무' 같은 것이었다면, 지금은 내가 하고 싶어서 자발적으로 '선택'한 것이니 차이가 확연했다.  


이렇게 몇 달을 지내자 나는 스케르초 2번을 그럭저럭 칠 수는 있게 되었다. 하지만 난이도가 상당히 높은 곡이라 별로 매끄럽게 쳐냈다고 할 수는 없다. 곳곳에서 멜로디가 뭉개지고 잡소리가 터져나오는데, 특히 빠르고 격렬하게 몰아치는 코다 부분은 미스터치의 '대향연'이었다. 아, 정말 섣불리 덤벼들 곡이 아니었다. 그래도 이 곡을 처음으로 비교적 빠른 속도로 '완주'했던 날의 뿌듯함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방학을 앞두고 뮤직센터에서 피아노를 배우는 학생들의 런치타임 콘서트가 열렸다. 멜빈 선생님의 권유에 따라 나도 이 무대에 출연하게 되었다. 공연의 테마는 '파리'였다. 학생들이 배운 곡들이 마침 프랑스 작곡가 드뷔시, 라벨, 그리고 파리와 인연 깊은 쇼팽의 곡이었기 때문이다. 실수 연발에 약간 엉성한 아마추어 음악회였지만, 아니, 아마추어 음악회였기에, 관객들의 반응은 따뜻하고 호의적이었다. 이런 공연을 누가 보러 올까 했는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왔다. 학생들보다는 학교 주변 주민들이 많았다. 둘째가 다니는 어린이집 친구의 아빠도 관객으로 와서 깜짝 놀랐다. 

나는 스케르초 2번 대신 즉흥환상곡과 녹턴을 쳤다. 스케르초 2번은 아직 연습 중이었고, 공연에선 좀 더 익숙한 곡을 치는 게 좋겠다고 멜빈이 조언했기 때문이다. 내 차례의 연주가 끝나고, 이 공연의 피날레를 장식한 곡이 바로 스케르초 2번이었다. 역시 멜빈에게 레슨을 받고 있는 중국인 남학생이 이 곡으로 무대에 올랐다. 귀를 쫑긋하고 들었다. 힘차고 자신있는 연주였다. 중간에 악보를 잊어버리고 몇 마디를 통째로 건너뛰는 실수도 있었지만, 무사히 연주를 마치고 열광적인 박수를 받았다. 나도 저렇게 칠 수 있다면 좋겠다! 많이 부러웠다.  

쇼팽 스케르초 2번 이후에도 몇몇 새 곡들을 배웠다. 1년은 너무 짧았다. 멜빈은 마지막 레슨 시간에 '한국에 돌아가서도 계속 피아노 칠 거죠? 계속 한다고 약속해요'하고 다짐을 받았다. 나는 '물론이죠!'하고 자신있게 대답했다.

한국의 집에는 디지털 피아노만 있었다. 이 피아노로 쇼팽 스케르초 2번을 쳐봤다. 내가 오랜만에 피아노 치는 걸 본 아버지는 '수현이가 어릴 때보다 잘 치는 것 같다'고 칭찬하셨다. 하지만 그 때뿐이었다. 한국의 바쁜 일상이 다시 시작되자, 피아노 앞에 앉는 일이 점점 드물어졌다. 피아노 레슨을 받으려고 학원에 등록까지 했지만, 계속 빠지다가 흐지부지가 됐다. 그렇게 한동안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러다가 다시 스케르초 2번을 쳐봤더니, 마치 처음 치는 곡처럼 느껴졌다. 초반부터 엉망진창, 악보도 생소하고, 손가락도 돌아가지 않았다. 내가 치는 걸 내가 너무 듣기 싫었다. '피아노는 너무 정직한 악기다'라고 푸념했고 뭔가 억울한 기분마저 들었다. 나름 고생해서 익혔던 곡인데, 연습 좀 안 했다고 이 지경이라니. 그 이후엔 가끔 다른 곡은 연습해도, 스케르초 2번을 다시 쳐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렇게 10여 년이 흘러갔다. 

그런데 조성진이 '스케르초 2번'이 특별한 곡이라고 얘기하고, 공연에서 바로 이 곡을 연주하는 걸 보고 나니, 나에게도 이 곡이 얼마나 특별했었는지 다시 생각났다. 실력이 되든 안 되든 이 곡을 치고 싶다는 열망에 가득차 있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이 멋진 곡을 다시 쳐보고 싶다!

10년 넘게 한 번도 펼쳐보지 않았던 스케르초 2번 악보를 다시 꺼내들었다. 악보가 생소하면 다시 읽으면 되고, 손가락이 안 돌아가면 다시 연습하면 된다. 조성진은 초등학교 6학년 때 연주했다는 이 곡, 나는 인생 5학년(요즘 51세는 5학년 1반, 52세는 5학년 2반, 이렇게 부르니까)에 두번째로 도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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