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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하육수 Dec 05. 2024

할머니의 첫사랑

몇 해 전 할아버지 제사가 다가올 때쯤이었다. 며느리에게 살림을 내준 지 수십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할머니는 이맘때만 되면 떡은 어느 집에서 맞출 건지, 자반조기는 얼마나 크고 실한 지, 밤은 내가 예쁘게 깎으니 놔두라느니, 이번 과일상에 할아버지가 생전 잘 드시던 딸기를 좀 많이 올리자느니 등 간섭이 많아졌고 엄마와 할머니 간의 투닥거리는 신경전이 벌어졌다.


“어머님은 방에 들어가 계세요. 이젠 제가 알아서 할터이니.”

세월이 흐르며 목소리가 점점 크고 드세진 엄마의 승리로 할머니는 구시렁거리며 부엌에서 물러나셨다. 방에 들어와서도 분이 풀리지 않으시는지

“에휴, 내가 너무 오래 살았지. 이제 죽어야 할 텐데.”

푸념을 늘어놓으시며 장롱 깊숙한 곳에 고운 보자기로 싸둔 할아버지의 영정사진을 꺼내 어루만지셨다. 마치 할아버지에게 며느리의 만행을 일러바치는 듯 할머니의 조곤 대는 혼잣말은 계속 이어졌다. 익숙한 풍경이라 그러려니 하던 나는 그날따라 사진 속 근엄한 할아버지를 애절하게 쳐다보는 할머니가 안쓰러웠다. 뭔가 화제전환이 필요했다.  


“할머니, 할아버지랑 어떻게 만나셨어요?”

“너희 할아버지? 옛날엔 다 중매로 결혼했지, 뭐.”

그리워하는 그 손길과는 달리 무심하게 내뱉는 말에 나는 그만 김이 새 버려 더 묻지 않으려다 예의상 질문을 덧붙였다.


“그럼 할아버지가 할머니의 첫사랑이었어요?”

“첫사랑? 아아니.”

“어머, 그럼 할아버지 말고 다른 분이랑 사귄 적이 있으세요?”

에그, 망측해라 할미한테 그런 게 어딨었겠니 못하는 말이 없구나 하며 질색팔색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할머니는 천장을 바라보며 골똘히 뭔가를 떠올리려 애쓰셨다.


“내가 야마구치깽 아츠라는 곳에 있을 때였지.”

할머니의 부모님은 일제 강점기 때 일본으로 건너가셨고 할머니는 처음에 시모노세키에서 살다가 ‘야마구치깽 아츠’라는 곳으로 거처를 옮기셨다. 야마구치현을 저렇게 표현하시는 것까지는 알겠는데 ‘아츠’라는 곳은 아무리 비슷한 단어를 검색해도 찾을 수 없었다. 할머니 말씀으로는 그곳이 어디를 둘러봐도 푸른 잎이 빽빽한 산과 논밭밖에 없는 깡촌이었다는 것뿐이었다.


“그 시절엔 다 그랬지만 거기 일본년놈(할머니 표현을 그대로 옮겼다)들은 나를 ‘조센징’이라고 손가락질했고 옆에 지나갈 때 마늘 냄새, 기무치 냄새난다고 코를 잡고 피해 다녔지. 난 그게 너무 부끄러워 냇가에 몸을 빡빡 씻으면서 냄새를 없애려고 했었어.”

교과서에서만 보던 일제강점기 때의 일을 그 시대를 직접 살았던 할머니의 입에서 들으니 새삼 신기하면서 그 시절의 애환이 좀 더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때 우리 집 골목에서 좀 지나다 보면 그 동네의 유지라고 해야 하나, 여튼 돈 좀 있는 사람의 2층 집이 있었거든? 그 2층방에 남자애가 살고 있었지.”

그 남자의 이름이 야마모토 군인지, 미나모토 군인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모토’라는 단어는 확실히 들어갔다고 한다. 기억을 더듬는 할머니의 눈빛은 마치 그 나이대로 되돌아간 것처럼 초롱초롱 빛이 났고 목소리는 아이마냥 들떠있었다.


“나랑 비슷한 또래였는데 내가 그 골목을 지나갈 때마다 걔는 2층 창문에서 날 내려다봤고 나도 그 창문을 쳐다봤지. 어떨 땐 집 앞에서 마주치기도 하고 그랬어. 그 남자는 다른 일본 놈들처럼 나를 놀리지도 않고 피하지도 않았지.”

조선인이란 이유로, 그들의 지배를 받는다는 이유로 갖은 핍박과 괴롭힘을 당하던 어린 소녀가 일본인 남자아이에게 위로받으며 설레하는 모습이 파스텔톤의 아늑한 풍경으로 그려졌다.


“참 의젓하게 생겼었지. 키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두상이 예뻤고 눈도 동그마니 선했어. 나한테 가끔 먹을 것도 주고 그랬단다.”

할아버지 영정사진을 닦으면서 딴 사람을 떠올리는 할머니의 모습은 참 묘했다. 할아버지 이야기 할 때는 메말라있던 할머니가 어릴 때 좋아하던 남자를 떠올리며 홍조를 띤 광경은 손녀인 내가 할아버지 보기 민망할 정도였다. 지금처럼 사귀자고 고백하는 것도 없고 그 흔한 스킨십도 나눌 수 없었던 그 시절, 할머니와 그 남자는 눈빛만 주고받고도 볼이 발그레지고 심장이 쿵쾅거리는 그 순수하고 설레는 감정을 나눌 수 있었다.


“그래서요? 그다음엔 어떻게 됐어요?”

나는 얼른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 할머니를 재촉했다. 국적과 신분을 초월한 뜨거운 만남을 이어갔을지, 부모에게 들켜 사랑의 도피라도 했을지 그들의 이야기를 내 맘대로 상상하며 물었다.


“어쩌긴 뭐 어째. 해방되면서 난 한국으로 들어오고 그렇게 헤어졌지 뭐.”

사랑으로 수줍어하던 소녀의 얼굴은 어느새 다시 시큰둥한 낯빛의 할머니가 되어 있었다.

“에이, 뭐예요. 시시하게.”

할머니의 첫사랑 이야기는 그렇게 싱겁게 끝이 났고 맥 빠진 나는 마침 엄마의 부름에 옳다구나 하고 쪼르르 방을 빠져나왔다.


“내가 좀만 젊었어도, 무릎만 괜찮았어도 죽기 전에 그 동네에 가보는 건데. 거기도 많이 변했겠지만.”

할머니는 내 뒤통수인지, 할아버지 영정사진인지 모를 어딘가에 읊조리며 한숨을 쉬셨다. 할머니의 첫사랑 이야기는 대단한 러브 스토리가 있지 않았지만 어쩐지 풋풋한 느낌만은 내 마음속에 잔잔한 여운을 남겼다.




며칠 전 친정에 김장을 도우러 갔을 때였다. 늙었던 할머니는 그동안 더 늙었고 더 왜소해지셨다. 귀가 많이 어두워지고 치매 초기증상도 있는 터라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눈 지가 오래됐다. 할머니는 가끔 제정신이 됐을 때 당신 스스로도 이상하다는 걸 알고 있다는 듯이 방에 틀어박혀 계실 때가 많았고 점점 고립되어 가고 있었다.


그런 할머니가 딱해 보여 과일을 들고 방에 들어갔지만 할머니의 대답은 동문서답하기 일쑤였고 우리의 대화는 국수 면처럼 툭툭 끊겼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고민하던 차 갑자기 할머니의 첫사랑이 떠올랐다.

“할머니, 옛날에 할머니 첫사랑 있다 하셨죠? 기억나세요?”

“내가 너한테 첫사랑 이야기를 했다고?”

나한테 얘기해 주신 게 기억이 안 나시는지 언제 그런 소리를 했냐면서 쑥스럽게 웃으셨다.


“내가 야마구치깽 아츠라는 곳에 있을 때였지.”

할머니는 마치 처음 들려주는 것처럼 그때의 그 대화와 똑같이 시작했다.

“아이고, 또 야마구치깽 타령이신가?”

방에 잠깐 들어왔던 엄마가 또 똑같은 말 시작한다면서 핀잔을 줬지만 나는 할머니가 말씀하시는 걸 가만히 듣고 있었다.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할머니는 어느 때보다 정신이 또렷했고 그 남자아이를 떠올리는 얼굴은 소녀처럼 천진난만하고 예뻐 보였다. '저번에 얘기하셨잖아요, 기억 안 나세요?'라고 감히 방해할 수 없을 만큼 할머니는 행복해하셨다.


방금 당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밥을 먹었는지, 손녀가 뭐해먹고 사는지 등은 기억에서 빨리 날려 버리지만 수십 년 전의 애틋한 첫사랑만은 할머니 머릿속에 고이 간직하고 계셔서 다행이었다. 그 추억을 꺼내보며 행복해하실 수 있으니까.


다음에도 친정에 가면 할머니한테 첫사랑 이야기 들려달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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