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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하육수 Dec 12. 2024

절도의 추억

준후와 편의점에 갔다가 카운터 앞 낯익은 걸 발견했다 

"어머, 새콤달콤이네!"

내가 어릴 때 자주 즐겨 먹던 군것질인데 30년도 넘게 아직도 나오는 걸 보니 오랜만에 만난 친구처럼 반가웠다. 

"이거 얼마예요?"

나는 준후 간식과 함께 무심코 새콤달콤을 집어 계산했다. 어릴 땐 100원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지금은 500원이었다. 그때보다 5배나 오른 가격이지만 요즘 500원 가지고 사 먹을 수 있는 게 많지 않아서 거저먹는 기분이었다. 


겉 포장지는 예전보다 더 알록달록하고 화려하게 바뀌었지만 안에는 내가 먹던 새콤달콤 포장지 그대로였다. 소중한 물건이라도 들어있는 것처럼 얇은 종이에 곱게 싸여 있어 그걸 조심스레 열어보면 네모 반듯하게 잘린 캔디가 얼른 날 씹어먹으라며 분홍빛 살을 드러냈다. 한입에 쏙 넣자 인공적인 딸기향과 함께 쌔그러운 맛이 확 느껴졌다.  어릴 때는 연약한 유치로 열심히 잘 씹어먹었는데 나이 들어 씹어보니 나의 튼튼한 영구치도 이제 한물갔는지 여간 딱딱한 게 아니었다. 준후는 초코우유를 빨고 나는 새콤달콤을 하나씩 까먹으며 서로의 달달함에 기분이 좋아져 베실베실 웃어댔다. 




새콤달콤은 당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가성비 간식 중 하나였다. 

친척이나 집에 오는 손님들이 용돈을 두둑이 주면 큰맘 먹고 월드콘이나 오예스를 사 먹었지만 평소 엄마가 심부름하고 남은 돈이나 주머니의 동전을 탈탈 털어 겨우 사 먹을 수 있었던 만만한 간식은 새콤달콤이었다. 그걸 하나씩 까먹는 즐거움은 어린 나에게 몇 안 되는 소중한 일상 중 하나였다. 

몇 개 안 남았는데 동생이 달라고 조르거나 빈 껍데기가 쌓여가는 걸 보면 초조하고 불안했다. 마지막 하나는 주머니에 넣어 두고두고 먹어야지 하던가 아님 그걸 앞니로 쪼개고 쪼개며 그 새콤한 단맛이 내 입에 오래 머물 수 있도록 아껴 먹었다. 


날이 갈수록 집안 사정은 안 좋아지고 당연히 내 주머니 사정도 나아질 리 없었다. 엄마의 인심은 점점 팍팍해져 심부름하고 남은 돈은 눈에 불을 켜고 악착같이 받아 챙겨갔다. 같이 시장이나 슈퍼마켓이라도 갈라치면 내가 애처롭게 과자코너를 쳐다봐도 엄마나 할머니는 이 악물고 못본채하기 일쑤였다. 


그날도 혹시나 얻어먹을 수 있을까 실낱같은 희망을 안고 콩나물 사러 가는 엄마 따라 슈퍼마켓에 쫄래쫄래 따라갔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과자 앞에서 몸을 베베 꼬고 있어도 엄마는 과자 못 사준다며 처음부터 못을 박았다. 내가 실망과 슬픔에 잠겨 있는 사이 엄마와 슈퍼 주인아줌마는 이야기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그들이 서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보라며 침 튀기며 수다를 떠는 게 나는 안중에도 없는 것 같았다. 나는 그 상황이 어쩐지 잘됐다고 생각했다. 슈퍼에는 우리 셋밖에 없었다. 순간 내 마음속 저 깊은 곳에서 누군가 소곤댔다. 


'지금이야. 아무도 안 볼 때 빨리 훔치자.'


훔치면 안 된다는 걸, 훔치면 경찰아저씨가 잡아가고, 훔치면 나쁜 사람이란 걸 엄마의 말을 통해서, 동화책을 통해서, 그리고 내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지만 나는 나도 모르게 눈으로 과자들을 쓱 훑어보기 시작했다. 

봉지과자는 너무 커서 안되고, 아이스크림은 차가워서 손에서 떨어뜨릴 수 있고, 껌은 그닥 구미가 당기지 않고. 뭘 고르지? 

그때 카메라 줌을 확 당긴 것처럼 새콤달콤이 눈에 들어왔다. 새콤달콤은 부피도 작고 집어도 소리가 나지 않는다. 길쭉한 모양이어서 손에서 삐죽 나오지만 소매 안에 넣으면 감쪽같이 숨길 수 있다. 나는 이런 치밀한 계산(?)을 한 후 새콤달콤으로 서서히 손을 뻗었다. 눈은 엄마와 아줌마에게 고정하고 땅에 뭐 떨어진 걸 줍는 척하며 얼른 새콤달콤을 낚아챘다. 


시뮬레이션대로라면 새콤달콤을 집으면서 손목의 유연한 스냅을 이용해 소매에 쏙 넣어야 되는데 생각보다 그게 쉽지 않았다. 손바닥은 땀으로 미끄덩거리고 손과 몸은 감전된 것처럼 덜덜 떨렸다. 시보리 소매에 마지막 끄트머리를 막 집어넣었을 때 엄마는 고개를 돌려 이제 집에 가자고 말했다. 집에 들어가는 길에 내가 아무 말이 없자 엄마는 과자 안 사줘서 삐졌냐고 핀잔을 줬지만 대꾸하지 않았다. 내 귀에 들려오는 건 심하게 방망이질 치는 심장소리뿐이었다. 


콩나물 좀 같이 고르자는 엄마의 말을 무시하고 나는 방에 들어가 문을 잠갔다. 몸에서 튀어나올 듯이 흥분한 심장을 부여잡고 나는 조심스레 소매 안쪽에서 훔쳐온 그걸 꺼냈다. 들키지 않고 해냈다는 안도감과 성취감이 들었고 이런 성취감을 느끼는 나 자신이 죄스럽고 혐오스러웠다. 하지만 나의 복잡한 감정 따위에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엄마가 들어오기 전에 빨리 증거를 없애야 했다. 


나는 허겁지겁 포장지를 뜯어 정신없이 그 츄잉캔디를 입안에 마구 쑤셔 넣었다. 달고 새콤한 맛에 침이 질질 흘렀다. 훔치기 전에는 그리 먹고 싶던 새콤달콤이 그렇게 욱여넣을 때는 맛이 있지 않았다. 그저 걸리면 안 된다는 긴장감에 사로잡혀 맛을 느낄 새도 없었다. 아직도 삐졌냐는 엄마의 고함소리에 얼른 증거품들을 주머니며 바지 안에 숨기고 일부러 실의에 빠진 얼굴을 하며 부엌으로 갔다. 쓰레기통에 버리면 엄마가 알게 될까 봐 길가에다 버리고 오는 치밀함도 잊지 않았다. 


그날 밤 나는 잠이 오지 않았다. 바늘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속담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나는 정말 바늘도둑인 걸까. 평소 어리숙하고 굼뜨다는 말을 듣던 내가 나 자신도 놀라울 정도로 오늘은 굉장히 치밀하고 계산적이고 재빠르게 행동한 걸 보면 나는 정말 도둑의 기질이 있는 걸까. 새콤달콤 개수가 안 맞아서 아줌마가 나를 추궁하기라도 한다면, 도둑질한 걸 엄마아빠한테 들킨다면 부모님은 경찰서를 들락거리고 동생들은 나를 부끄러워하고 우리 집은 결국 망신을 당하게 되겠지. 아, 난 어쩌자고 그런 짓을 벌인 걸까. 


나는 내가 나중에 정말 소도둑이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과 불안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한동안 슈퍼마켓 아줌마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그러면서도 문구점에 반짝이는 반지를 보거나 알록달록한 빛깔의 볼펜 자루들을 보면 무심코 손을 뻗는 내가, 내 손을 없애버리고 싶었다. 


최초의 절도사건을 끝으로 나는 더 이상 물건에 손대는 일은 없었다. 도둑질을 안 하면 손이 근질근질한 그런 유전자는 다행히 내 몸속에 흐르고 있지 않는 것 같았다. 좀 더 커서 슈퍼마켓에 다시 갔을 때 그 자리엔 슈퍼대신 다른 건물이 들어서 있었다. 좀 더 일찍 찾아와 솔직하게 말할 용기는 없지만 그래도 죄송스러운 마음을 담아 뭐라도 살걸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요즘 편의점이나 무인가게에서 절도사건이 벌어지는 걸 심심찮게 뉴스에서 봤다. 초등학생들도 CCTV에 찍히는 걸 알면서도 대담하게 물건을 훔치는 걸 보고 남편이 혀를 끌끌 찰 때 나도 같이 눈살을 찌푸렸지만 과거 행적이 있기 때문에 떳떳하게 맹비난할 순 없었다. 그래도 조심스레 바라는 게 있다면 아무 거리낌 없이 물건을 가져가는 아이들이 나중에는 꼭 스스로 죄책감을 가지고 자각심을 가졌으면 하는 마음이다. 


새콤달콤을 까먹으며 준후에게 가게나 다른 사람 물건 함부로 가져가면 안 된다고 괜히 도덕 어른인 척 말하니 초코우유 마신다고 정신없는 준후가 내 말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마지막 남은 새콤달콤을 입에 쏙 넣으니 달콤 쌉쌀한 맛이 추억과 함께 입안에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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