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회피형 남자와의 연애 1
성격이 너무 달라 3년 내내 지치지도 않고 매일같이 싸우던 남자친구와 헤어진 후, 하루도 빠짐없이 좋은 사람 소개해 주겠다며 지겹도록 제안하시던 직장 상사분의 성화에 새로운 사람을 소개받았다.
내 상사분과는 직접적으로 아는 사이는 아니었고, 나랑도 꽤나 친분이 있는 어느 회사의 부장님을 통한 소개였다.
소개팅 상대는 이제 막 합격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신입이었는데, 부장님도 같은 팀은 아니셨지만, 후배에게 들어보니 동료들과 선배들 사이에서 평이 너무 좋다며 “애가 너무 착하고 바르다. 심지어 뭐든 열심히 해서 회사 내에서 필요한 자격증이나 진급 시험은 전부 얘가 1등이더라.”하시며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너무 좋은 사람 같아서 누가 채가기 전에 얼른 나에게 소개해 주고 싶었다고 말씀하셨다.
나를 이렇게나 좋게 봐주시다니.
너무 감사하기도 했고, 덕분에 나도 그 만남이 꽤나 기대되었다.
*
우리의 첫 만남은 연어회에 소주였다.
만나기 전 카톡을 이어갈 때, 무슨 음식을 좋아하냐는 질문에 나는 냉큼 연어를 좋아한다고 대답했고, 놀랍게도 그 사람도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연어라며 신기해했다.
뭐지 운명인가.
그날 우리는 내내 말이 너무나도 잘 통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끊임없이 대화를 이어갔다.
그 사람도 누구와 이렇게 쉴 새 없이 대화해 보는 건 진짜 오랜만이라며 대화를 계속 이어가고 싶어 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때는 코로나로 인해 영업시간이 제한되어 있었던 시기.
그날의 대화는 직원분의 마감 시간 안내로 끝이 났다.
대화가 잘 통했음에도 결정적인 문제가 하나 있었는데, 전달이 잘못되었던 건지 나에게 동갑이라고 알려주셨던 부장님의 말씀과 달리 그 사람은 나보다 한 살이 어렸다.
고작 한 살 차이로 뭐 그러냐고 할 수도 있지만, 그때의 나는 나보다 연상인 사람을 3년 동안 만나며 ‘연상도 이렇게 아기 같은데 연하는 얼마나 더 아기 같을까... 거의 연애가 아니라 육아를 해야겠는데...’라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괜히 상대에게 여지를 줄 수는 없으니 이 만남은 이걸로 끝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상대는 나와의 만남이 꽤나 만족스러웠는지 다음번에 한번 더 만나자고 말했고, 나는 조금 고민하다가 우리를 소개해 주신 직장 상사분들도 계시니 결국 한 번 더 만나보기로 했다.
*
그렇게 두 번째 만남
그 남자분은 휴무였고 나는 출근이었던 날이었기에 그 사람이 우리 회사 근처로 오게 되었다.
이날도 너무나도 잘 맞는 대화 코드에, 끝없이 대화를 이어가다 보니 집으로 가야 하는 시간이 다가왔다. 굉장히 아쉬워하던 그는 나에게 집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술도 조금 마셨던 우리는 차를 타려면 대리를 불러야 했기 때문에 나는, “그냥 오늘은 각자 가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저는 술도 깰 겸 산책로 따라서 천천히 걸어갈 생각이에요.“라고 말했다.
그 사람은 마침 잘 됐다며 자기도 걷고 싶었으니 같이 걸어가자며 나를 이끌었다.
“우리 집까지 갔다가 다시 차가 있는 곳으로 돌아오려면 1시간은 걸릴 텐데요? 그럼 너무 늦어요. 내일 출근도 하시잖아요.”
“괜찮아요. 술도 깨고 너무 좋죠.”
그렇게 우리는 같이 그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또다시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었고, 집이 가까워지는 것이 아쉬워서 근처 강가에 잠시 멈춰 떠들다가 다시 걷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30분 거리를 2시간이 넘게 걸으며 겨우 내가 사는 아파트 근처에 도착할 때쯤, 그 사람은 나에게 집이 어디쯤이냐고 물었다.
“바로 저기 보이는 아파트예요!”
“아, 저 아파트예요? 그럼 여기부터는 안전하겠네요~ 저는 이만 돌아가볼게요. 조심히 들어가시고 무슨 일 생기면 꼭 전화해요.”
이때 나는 이 사람에게 처음으로 호감이 생겼다.
왜냐고?
세상이 하도 위험하다 보니 남자친구라도 아직 완전히 신뢰하지 않는 사이라면 집을 알려주기는 솔직히 좀 꺼려지는데, 지금까지 만나왔던 사람들은 대부분 첫 만남부터 집 ‘바로 앞’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 입장에서는 그게 내 안전을 위한 호의이자 호감의 표현이라는 것을 나 또한 알고 있고,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지만, 살아오며 수많은 이상한 사람들을 많이 마주친 나로서는 그 사람들을 초면에 덜컥 신뢰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오늘은 여기까지만 데려다주셔도 괜찮아요! 정말 감사합니다.”라고 하면 본인을 이상한 사람 취급하는 거냐며 기분 나빠하시거나, 선을 긋는 것 같다고 서운해하시는 분들이 종종 있었기 때문에 어느 순간부터는 데려다준다고 하는 호의를 애초에 거절했었다.
하지만 3년간 한 사람과 연애하느라 다른 사람을 만날 일이 없었던 나는, 너무 오랜만에 생긴 상황에 어떻게 말을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딱 먼저 배려심 있게 집 근처 안전한 곳까지만 데려다주는 센스라니.
호감도가 안 오르려야 안 오를 수가 없는 섬세함이었다.
그날 집에 들어가면서 나는
‘이렇게 섬세하고 배려심 있는 연하라면, 연상보다 나을지도...’라는 생각을 생전 처음으로 하게 되었다.
심지어 대화도 잘 통하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