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회피형 남자와의 연애 2
연락을 한 달째 이어가던 날,
우리를 소개해 주셨던 분들의 주도하에 다시 한번 만나게 되었다.
나를 소개해 주신 분, 그 사람을 소개해 주신 분, 그리고 우리 둘.
나는 여러 명이 모이는 만남을 좋아해서 굉장히 기대에 찬 상태로 약속 장소로 갔다.
심지어 그분들은 나의 회사 상사분들도 아니었기 때문에 나에게는 그냥 친하고 성격 좋으신 동네 어른들과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그 사람은 전날 통화할 때, “으악, 나 너무 가기 싫어... 어떡하지... 너무 불편할 것 같아!”라고 말했고,
아무래도 본인 직속 상사분들과의 자리니까 불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럼 우리, 그 자리 빨리 끝내고 둘이서 놀자!”라고 말하며 그를 안심시켰다.
*
“둘 다 참 밝아서 좋아. 세상 어두운 면 없이 사랑받고 자란 티가 나. 그래서 그런지 둘이 너무 잘 어울리지 않아? 같이 있으니까 그림이 너무 예뻐~. “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상사분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온통 우리 칭찬으로 가득했다.
너무 잘 어울리는 한 쌍이니 얼른 사귀고 결혼하는 것까지 꼭 보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지금의 나는 힘든 상황들을 극복하고 아주 많이 밝아졌지만, 어린 시절이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았기 때문에 그저 하하 웃고 있었는데, 그 사람은 “맞아요. 그래서 저희가 더 잘 맞는 것 같아요.”라고 말하며 세상 시원하게 웃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와 이 사람은 정말 어릴 때부터 힘든 일 없이 곱게 자란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밝게 자란 사람이라니. 너무 좋은데?
물론 그게 큰 착각이었다는 것은 사귄 후 생각보다 빠르게 알게 되었지만.
그 자리 내내 상사분들은 계속 우리에게 언제 사귀냐, 이제 벌써 연락한 지 한 달이나 되지 않았냐, 너희 진도가 너무 느린 것 같아서 오늘 사귀라고 자리 마련했다.라고 하시며 우리보다 더 우리의 관계를 얼른 정의내리고 싶어하셨다.
두 분은 벌써 우리의 미래를 한참 뒤까지 다 그려놓으셨는지 너희 결혼하면 양복 한 벌씩 받는 거냐며 양복 골라 놓으시겠다고 한참을 더 신나게 이야기하셨다.
그렇게 열심히 우리를 밀어주시던 두 분은 2차로 자리를 옮긴 후, 오늘 꼭 사귀면 좋겠다는 말을 남기신 채 각자의 가정으로 돌아가셨다.
*
드디어 우리는 단둘이 조용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역시나 단둘이 대화를 나누면 나눌수록 우리는 서로가 너무 잘 맞음을 느끼게 되었고, 둘 다 한창 일이 바쁘던 시기여서 몇 번 만나지는 못했지만 이미 거의 한 달 가까이 연락을 이어오고 있었기 때문에 서로에 대해 알아가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상사분들의 소원(?)대로 그날이 우리의 1일이 되었다.
연애 초반, 그 사람은 약속날이 되면 항상 나의 직장까지 데리러 와줬고, 만나자마자 안아주며 끊임없이 예쁘다, 사랑한다, 좋아한다 등의 표현들을 아끼지 않고 퍼부어줬다.
“사랑해.”
“나 네가 정말 좋아. 네가 계속 내 옆에 있어줬으면 좋겠어. “
“못 보는 시간 동안 너무 보고 싶어서 참기 힘들었어! 근무 중에 자기 보러 뛰쳐나갈 뻔했다니까!”
“우리가 왜 이제야 만났을까. 조금 더 빨리 만났으면 내 인생이 더 빨리 행복해졌을 텐데...!”
“어디에 있다가 이제야 나타났어? 너를 이제야 알게 된 게 너무 아쉬워.”
“어떻게 이렇게 예쁘지? 봐도 봐도 너무 예뻐서 하루종일 보고 싶어.”
“너를 학창 시절에 만났으면 정말 좋았을 텐데...! 같이 학교생활했으면 너무 재밌었을 것 같지 않아?”
“와... 진짜 너무 예뻐. 자랑하고 다니고 싶어.”
“우리 절대 헤어지지 말자. 평생 내 옆에 있어 줘 꼭.”
“우린 정말 잘 맞는 것 같아. 너랑 있으면 행복해서 시간이 너무 빨리 가.”
“넌 정말 좋은 사람인 것 같아. 나랑 만나줘서 고마워.”
“어떻게 이렇게 좋은 사람이 있을까. 나는 정말 너를 절대 놓치면 안 되겠다.”
“너 같은 사람을 내 인생에서 만나게 되다니, 난 정말 행운인 것 같아!”
전부 하나도 과장 없이 그 사람과 만나면서 몇 번씩이나 들었던 주접 멘트들이다.
실제로는 주접이라고 표현하기도 미안할 정도로 한마디한마디에 모두 진심이 꾹꾹 담겨있는 게 그의 눈빛과 말투에서 한가득 느껴졌기 때문에, 나는 매일매일 무한한 사랑을 받는 기분이었다.
나는 이 연애가 너무 행복했다.
그 사람은 나를 만나는 날이면 뜬금없이 장미꽃 한 송이를 건네며 수줍어했고, 내가 바라지 않아도 예뻐, 좋아해, 사랑해라는 말을 전 남자친구에게 3년 동안 들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이 말해주었으며, 매번 내가 불편한 점이 없는지, 먹고 싶은 건 없는지, 필요한 건 뭔지 하나하나 세심하게 살피고 챙겨줬다.
심지어 우리는 음식이나 영화 취향, 취미, 긴 휴가가 생기면 하고 싶었던 일들까지 너무 신기할 정도로 비슷해서 무슨 대화를 나누든 항상 재밌고 즐거웠다.
‘아 역시... 사귀길 잘했어. 연하라고 다 어리진 않구나. 세심하고 배려심 많고 말 한마디를 해도 생각 먼저 하고 말하는 사람을 만나니까 싸울 일도 없고 너무 행복하다.’
라고 생각하며 행복한 연애를 이어갔다.
한 달까지는... 분명히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