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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비 Mar 09. 2024

너는 무슨 헤어지자는 말을 족발 먹다 말고 하니

공포회피형 남자와의 연애 5


“우리 너무 오랜만에 본다, 그치.“


2주 만에 만난 그에게 내가 건넨 첫마디였다.

그는 또 나와의 만남을 가족이나 친구 핑계로 1주일이나 더 미뤘기 때문이다.

물론 이번에도 그는 진짜 가족을 만났고, 친구를 만났기에 나는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다.

왜 하필 나와의 약속이 있는 날에만 꼭 그 약속들이 생기는지에 대해서는 한참 뒤에야 생각하게 되었지만...




“응, 나 그동안 네가 너무 보고 싶었어 ㅇㅇ아.”


그는 아무렇지 않았다.

우리 사이에는 대화로 풀어야 할 문제가 있었지만 그는 그것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괜히 만나자마자 싸울까 봐 그런 건가? 조금 있다가 분위기 좀 풀어지면 내가 먼저 조심히 꺼내봐야겠다.’

내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동안 그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나를 대했다.


아니 오히려 그전보다 더 사랑스러운 연인처럼 나를 대했다.


“나 저번 주 회식 때 진우 선배랑~”

“근데 민호선배 내년에 결혼한대. 대박이지.”

“자기야 근데 오늘도 너무 예쁘다. 너무 예뻐서 얼굴 볼 때마다 웃음이 자동으로 나와.”

“ㅇㅇ아 사랑해.”

“아, 나 다음 주 주말에는 할아버지랑 같이 등산하러 갈 예정이야. 할아버지 뵈러 가는 거 오랜만이라 기대돼.”

“나 2주 동안 자기 정말 너무 보고 싶었어~ 오늘 봐서 너무 좋다!”


그는 2주 동안 못했던 말들을 쏟아내듯이 쉴 새 없이 자기 이야기를 쏟아냈다. ‘그 사건’에 대한 이야기만 쏙 빼놓고.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그의 모습과 여전히 변함없이 나를 사랑하는 그의 모습에 안심은 되었으나, 우리 사이의 문제는 전혀 없었다는 듯이 사랑을 아무렇지 않게 속삭이는 그의 행동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는 그와 만나지 못한 2주 내내 그 상황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만 생각하며 골머리를 앓았는데, 정작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던 그는 이 상황에 대해 생각을 하긴 했던 걸까.

만나면 어떻게 이야기를 꺼내야 싸우지 않고 좋게 풀어갈 수 있을지, 뭐라고 말해야 서로 기분 상하지 않을지 내 머릿속에는 온통 그 일을 해결할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는데, 이렇게나 아무렇지 않게 다른 이야기들만 꺼내다니.


“아, 우리 소개해 주신 부장님이 오늘 우리 팀에 오셔서 커피를 사주고 가셨는데~.”

그의 이런 일상적인 말들이 내 귀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아니 문제를 먼저 해결하고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든 말든 해야 할 거 아냐.



“근데 있잖아, 너 그날 왜 그렇게 집에 간 거야? “

결국 한참 고민하던 내가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

“그렇게 대화를 마무리 짓지도 않고 무작정 집에 가버리고, 2주 만에 만난 오늘도 그 상황에 대해서는 전혀 말을 안 하니까 나는 지금 너무 답답해. “

“우리 오늘 오랜만에 만나서 분위기도 좋았는데 왜 또 그런 이야기를 꺼내? “



...?

그의 대답은 너무나도 황당했다.

그는 애초에 나와 그 상황에 대한 이야기는 할 생각도 없었던 것이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문제가 생겼으면 해결을 먼저 해야 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혼자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해서 나는 네가 싸울 때 시간을 가진 후에 생각이 정리되면 대화하는 타입이구나.라고 생각하면서 2주나 참고 기다렸어. 근데 너는 2주 만에 만나서 마치 그 일이 없었던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나를 대하고 있어서 난 지금 너무 당황스러워. 너는 우리 사이에 생긴 문제들이 전혀 해결되지 않았는데 아무렇지 않아?”

“...”

“심지어 우리가 그날 싸운 것도 아니고, 그냥 내가 한 말 한마디에 너는 그렇게 냅다 집으로 가버렸잖아. 그래서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내가 뭐 말실수를 했는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계속 혼자 생각하고 그거에 대해 어떻게 대화해야 좋을지만 내내 고민하면서 2주를 기다렸어.”

“...”

“일단 상황을 해결해야 마음 편하게 데이트를 할 거 아냐.”


한참 아무 대답 없이 가만히 듣고 있던 그는,


“우린 안 맞는 것 같아. 그냥 그만하는 게 맞는 것 같아.”

라며 자리를 떴다.



...???

너무 황당해서 헛웃음이 나왔다.


아니... 갑자기 뭐가 안 맞아? 갑자기 뭘 그만해...?

(그리고 족발 이제 나왔는데...!)



*

그는 그날 정말 그렇게 집으로 가버렸고, 다음날까지 그 어떤 연락도 하지 않았다.


뭐야 이거...? 진짜 헤어진 건가...?라는 생각에 황당함과 어이없는 마음밖에 들지 않았다.

이틀 동안 기다리다 결국 답답하고 애매한 상황을 제일 싫어하는 나는 그에게 먼저 연락했다.


“네가 안 맞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뭔지 모르겠지만, 그런 것들은 같이 잘 맞춰가보자. 20년이 훨씬 넘는 세월을 다르게 살아왔는데 서로 다른 부분이 있는 게 당연하잖아. 그런 부분들을 하나씩 서로 조율하고 맞춰가는 게 연애 아니겠어? 우린 아직 같이 해 보고 싶었던 것도 많고 하기로 한 것도 많은데 겨우 이런 걸로 허무하게 끝내긴 너무 아쉽지 않아? 그런 사소한 부분들은 잘 맞춰가면 된다고 생각해. 같이 노력해 보자. “


그날 내가 너무 날카롭게 얘기했나, 그래서 상처받았나 싶어서 어이없고 황당한 마음을 누르고 최대한 예쁘게 다듬어서 보낸 카톡이었다.

그리고 몇 시간 뒤, 그의 답장이 왔다.


“ㅇㅇ아, 미안해... 나도 이틀 동안 내내 생각해 봤는데 나 너랑 못 헤어지겠어. 우린 많이 다르니까 헤어지는 게 맞다고 생각했는데, 네가 없는 날들을 보내보니 너무 힘들어서 일이 하나도 손에 잡히지 않더라... 먼저 연락해 줘서 고마워. 나도 꼭 노력해 볼게...”



속이 후련한 결말이었다. 그 당시에는 그랬다.


이때 끝냈어야 했는데.

이게 뭐지? 싶을 때 끝냈어야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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