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회피형 남자와의 연애 7
그는 항상 고민과 생각이 많은 사람이었다. 평소 자기 의견을 잘 말하진 않았으나, 부정적인 말은 생각보다 자주 하는 사람이었다.
한 번은 이런 대화를 한 적이 있었다.
“난 최선은 없다고 생각해. 최악과 차악 중 차악을 고르는 게 인생이지...”
내 선택은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하며 딱히 후회 없이 살아가는 나에게 그의 저런 부정적인 말은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다.
“최선과 차선 중 최선을 선택하는 게 인생 아니야?”
“최선은 없어. 뭘 해도 후회는 남으니까.”
그는 나와는 아예 생각회로가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
그날 이 대화를 한 후, 그는 또다시 나를 밀어냈다.
우리의 의견이 다를 때마다 그는 혼자 있고 싶다며 나를 멀리했고, 그 사실을 눈치챈 후부터 나는 점점 말을 꺼내기 전, 아무리 사소한 말이라도 그의 기분이 상하지 않을지, 그가 또 나에게 우린 다르다며 이별을 생각하진 않을지 걱정하며 그의 눈치를 보게 되었다.
누군가 그랬다.
문제가 생긴 것을 해결하지 않은 채 계속 그냥 넘어가버리는 것은, 방에다 똥을 싸놓고도 치우지 않고 그대로 이불만 덮어둔 채 방치해 두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그러면 당연히 치우지 않고 덮어두기만 한 똥에서는 냄새가 심하게 날 것이고, 해결되지 않은 채 찝찝하게 한구석에서 계속 덮여있을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문제가 생기면 다시 똑같이 치우지 않은 채 이불을 덮어두고 방치하기를 반복한다.
그렇게 치우지 않고 방치해 둔 똥들은 쌓여만가고 뒤늦게 들춰보기엔 너무 심한 악취가 나서 처리하기는 더더욱 힘들어진다.
그러니까 그와 만나는 동안 내 마음속에는 이불만 덮어둔 똥들이 계속계속 쌓이고만 있었던 것이다.
악취가 나도, 이미 썩어버려 더 심하게 벌레가 꼬여버려도, 그와의 관계가 엉망이 되는 것이 더 무서워서 나도 그와 같이 모른 척한 채로.
*
“우린 너무 다른 것 같아... 우린 언젠가 끝날 텐데 계속 만나는 게 맞는 걸까? “
그는 부쩍 이런 말을 하는 날이 많아졌다.
그런 말을 들을수록 나는 점점 더 ‘내 잘못이 뭘까’라는 생각만 더 많이 하게 됐고, 자존감은 낮아지다 못해 지하를 뚫고 들어갈 정도였다.
우리의 데이트는 오래전부터 이미 정상적이지 않게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그도 분명 알고 있었을 것이다.
당당하게 내 의견을 말하던 나는 더 이상 없고, 말을 하기 전에는 항상 그의 눈치를 먼저 살피는 사람으로 변했으니까.
*
같이 밥을 먹고 산책로를 걸었다.
그는 산책로 옆에 펼쳐진 강을 보며, 내가 무슨 말을 걸어도 건조한 대답으로 일관하며 끝없이 혼자 고민이 많은 얼굴이었다.
“무슨 고민을 그렇게 해?”
“그냥 이것저것. 고민되는 게 많네...”
사람에게는 촉이라는 것이 있다.
아, 이 고민에는 분명 우리 관계에 대한 것도 포함되어 있겠구나.
“무슨 고민인데~ 나한테도 말해줘 봐! 같이 고민하면 해결 방법이 두 배일지도~!”
“...”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말을 꺼내는 내가 안쓰러워질 정도로 그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의 대답을 더 기다리다간 내 숨이 막혀버릴 것 같아서 나는 정말 묻고 싶지 않지만 이미 마음속으로는 수십 번 꺼냈던 질문을 결국 뱉었다.
“네가 하는 고민에 혹시 나도 포함돼 있어? “
“...... 응.”
그는 한참 뜸 들이다가 대답했다.
“그렇구나. 나에 대해서는 뭐가 고민이야?”
예상하고 있었지만, 상처받을 거 알지만 굳이 확인사살을 하는 이유는, 그와 만나면서 이유를 알고 상처받는 것보다, 정확한 이유를 모른 채 혼자 자책과 희망고문을 오가는 것이 훨씬 더 아프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너무 달라서 헤어지는 게 맞는 거 아는데, 네가 좋아서 헤어지기 힘들어서 고민이었어. “
나에게 긍정요정이 살아있었다면 그의 이 말은 충분히 희망회로를 돌릴 수 있는 말로 들릴 수 있었겠으나, 이미 자존감이 바닥나버린 나에게 그 말은 결국 헤어지는 게 맞다고 결론을 내려놓은 그의 모습을 실시간으로 직관하는 것과 다름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