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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비 Mar 02. 2024

사랑에 왜 점수를 매기는 거야?

공포회피형 남자와의 연애 3

우리의 만남은 주 2회 정도씩 이어졌다.

각자의 근무 시간이 다르기도 했고, 야간 근무와 주간 근무, 당직이 번갈아가며 있는 상대의 스케줄상 그 이상 만나기는 힘들기도 했다.


보통 주중에 한 번, 주말에 한 번 만나게 되었는데 그의 단점은 연락이 굉장히 느리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연락은 나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편이기 때문에 다른 연인들에 비해 큰 걱정거리는 아니었다.

그는 내가 이전 연인들과 다르게 연락으로 재촉하지 않아 너무 좋다고 했다.

이 말에 나는 살짝 음? 싶은 생각이 들긴 했지만 별생각 없이 넘겼다.


나는 내가 연락이 늦는다고 해서, 상대가 연락을 재촉하는 게 싫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못하는 만큼 상대가 채워주는 게 좋았으면 좋았지, 연락을 재촉한다고 싫었던 적은 없었다.

이때 살짝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야 했는데, 나는 뭐 그럴 수 있지~ 하고 넘겼다.


그게 문제였다. 아무리 이해 안 되는 행동을 해도 타인에게 큰 피해를 주지 않으면 그냥 ‘그렇구나.’ 또는 ‘그런가 보다.’ 하고 별생각 없이 넘겨버리는 내 성격.

그랬기 때문에 나는 이 연애를 꽤나 오래 이어갈 수 있었지만, 헤어진 후에는 그만큼 사귀는 동안 생각 없이 넘겼던 부분들까지 하나하나 다 파고들어 보느라 더 오래 힘들고 아파야했다.



*

두 번째 단점, 그 사람은 놀랍게도 자기의 감정을 먼저 표현한 적이 없었다.

사랑한다, 좋아한다, 예쁘다 등의 애정표현은 생각보다 잘해줬지만 어떤 특정한 모든 것들에 대해서 좋다, 싫다를 절대 먼저 말하지 않았다.


항상 내가 먼저 “나는 이걸 좋아해.”라고 하면 그는 “우와, 나도 그거 좋아해!”라고 대답했고,

“너는 여행 가는 거 좋아해?”라는 그의 질문에 내가 “응! 나 여행 너무 좋아해!” 하면 본인도 “나도 여행 좋아해!”라고 대답하거나,

또는 같은 질문에 내가 “음...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아. “라고 대답하면 본인은 ”아~ 그래? 그럼 이거는?“ 하고 본인의 호불호는 밝히지 않은 채 그냥 다른 주제로 넘어가는 식이었다.

한마디로 본인과 나의 의견이 동일하면 신나서는 본인도 같다며 자기의 의사를 표현했지만, 본인과 내 의견이 조금이라도 다르면 그는 본인의 의견은 숨긴 채 그냥 우린 다르네...라고 마음속으로만 혼자 생각하며 쌓아가고 있었던 것이었다.


나는 이 사실을 헤어진 후에야 깨달았다.

돌이켜보니 나는 항상 나에 대한 모든 것들을 그 사람에게 알려주었지만, 정작 나는 그 사람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랬기 때문에 나는 그와 만나면 만날수록 우린 정말 잘 맞다고 생각했고,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동안 그 사람은 나와 본인의 다른 부분들을 하나하나 적립해 가며 점차 나와 멀어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그게 어떤 부분들인지는 나에게 하나도 말해주지 않은 채로 말이다.


처음 그 사람의 시선에서 나라는 사람은 ‘단점도 없고 본인과 너무나도 잘 맞는 완벽한 이상형’이었는데, 우리가 가까워질수록 그 사람의 환상 속 내 모습과 다른 ‘실제 현실의 나’에 대해 하나씩 보여주게 될 때마다 내 점수는 정말 가차 없이 깎여가고 있었다.


내 사랑은 0으로 시작해서 점점 100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동안, 그 사람에게 나는 애초에 완벽한 100으로 시작해서 끝도 없이 깎여가고만 있었던 것이다.



슬프게도 나는 그의 입에서 헤어지자는 말이 나올 때까지도 그 사실을 몰랐다.

아니, 사귀는 내내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어떠한 말도 말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모르는 게 당연했다.



그와 헤어진 후 한참 힘들어하다가 애착유형을 공부하며 나는 그를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공포회피형 연인의 특징 1 : 이상화와 평가절하

- 연애 초반에는 상대를 ‘본인이 상상하는 완벽한 이상형’이며 ‘본인과 완벽하게 잘 맞는 사람’이라고 이상화하지만, 연애를 지속하면서 본인과 다른 점들, 그리고 본인이 상상했던 모습이 아닌 ‘본인 기준의’ 단점들 상대에게서 보일 때마다 점점 상대를 평가절하하며 본인의 마음속에서 상대의 가치를 점점 깎아내린다.


그렇게 한 번 깎인 점수는 절대 회복될 수 없다.

공포회피형에게는 ‘본인과 잘 맞는 사람(본인이 이상화한 환상 속 존재)’ 그리고 ‘안 맞는 사람’ 이렇게 딱 두 가지 선택지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딘가에 자신과 완벽하게 잘 맞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 안 맞는 부분이 보이는 순간, 그에게 상대는 순식간에 ‘안 맞는 사람’이 되어버리므로 이별을 고민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본인과 완전히 딱 맞는 사람이 존재할 리가 없으니 그들의 연애는 매번 짧게 끝나버리는 것이다.



그들은 상대의 단점을 수용하고 사랑하는 법을 알지 못한다.

아니, 단점이 있는 연인에게는, 여전히 본인이 반했던 장점도 그대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 단점이 지극히 본인 개인의 시각에서 만의 단점이라고 할지라도.


왜냐하면 그들은 어린 시절부터 부모의 일관되지 못한 양육태도에 눈치를 보며, ‘장점이 있어야만’, ‘잘하는 것이 있어야만’ 칭찬받고 사랑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며 자라왔기 때문이다.



처음 부장님이 그를 나에게 소개할 때 했던 말이 문득 생각났다.


‘바르고 착해서 직장 동료들에게 평판이 굉장히 좋았던 것’, 그리고 ‘뭘 하든 전부 그가 1등이었던 것’도 전부, 타인들의 눈에 본인은 완벽하고 단점이 없어야지만 괜찮은 사람이라고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왔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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