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언 May 18. 2022

노이바이공항에서 노숙한 사연

#5. 하노이-사파 4박 5일 여행

무언가 잘 못되어 가고 있었다. 노이바이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늘 하던 대로 내가 탈 비행기를 안내판에서 확인했다. 티켓팅을 할 데스크 위치도 확인하고, 연착되지는 않았는지 확인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여행사 안내문에 적혀 있던 항공편 번호가 안내판에서 보이지 않았다. 불길한 느낌에 호치민에 있는 남편에게 연락해 항공편 좀 해달라고 했다. 어플로 항공편을 확인하던 남편은 이상하다고 했다.  


"호치민행 VN XXX편이 맞아? 이미 이륙했다는데?"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호치민에서부터 함께 투어 가이드에게 우리가 타고 갈 항공편 번호가 몇 번인지, 지금 가면 탈 수 있는 게 맞는지 확인해 달라고 했다. 자기를 못 믿는다고 생각했는지 자기를 가르치려 든다며 불쾌한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썬월드 판시판 레전드(Sun World Fansipan Legent)로 가는 케이블카에서 내려다본 사파 다랭이논


겨울 방학을 맞아 베트남 현지 친구들과 함께 4박 5일 동안 하노이-사파 지역으로 여행을 가기로 했다. 하노이는 가본 적이 있지만, 사파는 가보고 싶었던 곳이라 선뜻 현지인들과의 단체 여행에 동행하기로 했다. 친구들이 여행사에 예약을 했고, 내가 한 일이라곤 여행 경비를 입금하고, 여행 가방을 꾸리는 게 전부였다. 베트남 북부에 위치한 사파는 운이 좋으면 겨울에 눈을 볼 수 있다고 하여 베트남 사람들이 선호하는 여행지다. 판시판, 소수민족, 에코투어, 트레킹 등 외국인들이 선호하는 이색적인 테마가 가득했다. 우리는 관광버스를 타고 이 모든 볼거리들을 4박 5일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하노이-사파-닌빈 유명 관광지를 중심으로 훑었다. 우리 가족끼리 왔었다면 트레킹으로 사파 지역만 충분한 시간을 두고 여행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단체여행이다 보니 정해진 시간에 많은 곳을 보는 데 의의를 가지는 듯했다.  


판시판 정상에서 기념 촬영하는 사람들


마지막 일정까지 무. 사. 히. 마치고 공항에서 저녁 식사를 하기로 했다. 식사와 함께 맥주가 곁들여졌고, 일행 중 어르신이 수고 많았다고 고급술까지 대접한 터라 여행 가이드는 한껏 들떠 있었다. 긴장이 풀렸는지, 들뜬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았는지 나와는 더 이상 이야기를 하려 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호치민행 항공편을 다시 검색해보니, 여행사에서 준 안내문과는 내용이 달랐다. 안내문의 항공편은 이미 출발했고, 비슷한 항공편 번호는 출발 대기 중이었다. 그 번호가 맞는지도 확실치 않았다. 


가이드와 직접 이야기를 할 수 없으니, 일행 중 영어가 가능한 학생에게 남편에게 도착시간을 알려줘야 하니 항공편 번호를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 안내문에 있는 항공편이 아니라 실제 항공편은 VN XXY라고 했다. 다시 검색해보니, 그 비행기는 이미 2시간 전에 하노이를 떠났다. 다시 가이드에게 가서 비행기가 출발했다고 하니,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거라고 했다. 친구들은 괜찮을 거라고, 콤싸오(Khong sao, No problem)라며 나를 진정시키려 했다. 출발 시간이 가까워지자 가이드는 발권을 하러 항공사 데스크로 향했고, 곧이어 가이드가 사색이 되어서 돌아왔다. 우리가 탔어야 할 비행기는 이미 출발했다는 것이었다. 비행기를 놓쳐 버리는 불상사가 벌어진 것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가이드는 왜 항공편을 더블 체크하지 않았을까. 항공사도 이상했다. 30명이 되는 단체 예약 손님이 노쇼인데도 그냥 가버렸다. 가이드의 말만 듣고, 내가 불안증이 있다고 생각했던 일행들도 그제야 사라(내 영어 이름) 말이 맞았다고, 사라가 이야기했었는데 라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당황한 가이드가 여행사에 전화를 했더니 너의 잘못이니, 네가 알아서 해결하라고 했단다. 일행이 회사에 여행사에 전화를 해 우리는 회사를 보고 여행 상품을 계약한 것이니, 회사에서 해결해야 한다고 따졌다. 회사에서 먼저 해결하고, 추후 책임은 가이드에게 물으라고 했다. 시간은 밤 11시를 향하고 있었고 여행사도 당장 손 쓸 방법이 없었다. 결국 가이드는 가지고 있는 사비를 털어서 차례로 발권을 시작했다. 그나마도 내 앞에서 가이드 아저씨 돈이 떨어졌다. 당장 내일 일정이 있거나, 어린아이가 있는 집은 자비로 발권을 하고, 나중에 보상받기로 했다. 사정이 있는 사람들은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먼저 비행기에 올랐다. 결국 나머지 사람들도 먼저 발권을 하고 회사에서 돈을 돌려받기로 했다.


공항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된 우리, 그 와중에 사진을 찍어서 보내줌


우리는 다음 날 가장 이른 시간인 6시 항공편을 예약했다. 공항 밖으로 나가서 자고 오기에는 불안했다. 또다시 비행기를 놓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공항에서 밤을 보내기로 했다. 공항에서 노숙이라니. 영화 터미널의 톰 행크스가 된 기분이다. 졸려서 눈이 가물거리는 아이들은 공항 의자에 누워서 잠을 청했다. 다행히 D가 4층인가에 잠깐 잘 수 있는 곳을 찾았다고 했다. 무인 슬립 팟(SleepPod). 몇 시간이라도 누울 수 있는 공간이 반가웠다. 복층으로 된 2인용 슬립 팟에 어른 둘과 아이 셋이 꾸깃꾸깃 들어갔다. 아이들은 금세 잠이 들고, 어른들은 뜬 눈으로 밤을 새우다시피 하고 꾀죄죄한 몰골로 티켓팅을 했다. 이번에는 다행히 무사히 비행기에 올랐다. 안도와 함께 눈을 감았다 뜨니 호치민에 도착했다.


2인용 슬립 팟(SleepPod)


호치민으로 돌아와서도 끝나지 않았다. 나에게 당당했던 가이드는 우리 일행을 통해 계속해서 사과의 말을 전해 왔다. 회사에서 시켰는지 나를 직접 만나서 사과하고 싶다고 했다. 일행은 사과를 받지 않으면, 가이드가 해고될지도 모른다며 만나 달라고 부탁했다. 불쾌했던 기억이 떠올라 따로 만나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사과를 받지 않으면 계속 연락이 올 것 같아서 사과는 받겠지만 따로 만날 필요는 없을 것 같다고 말을 전했다. 다음에는 이런 일이 없도록 주의하시길 바란다는 말도 함께.


전해 듣기로 가이드는 해고되지는 않았지만, 회사에 끼친 손해를 갚아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이 일을 이야기하지 말아 달라고도 부탁했다. 결국 나도 웃고 말았다. 어디 가서 내가 이런 경험을 해보겠냐고. 한국 사람 중에 아이들까지 데리고 하노이 노이바이 공항에서 노숙한 사람은 최초이지 않을까?

3년이나 지난 지금은 웃고 넘어갈 해프닝이 되었다.




*여행사는 베트남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큰 여행사였다. 그런 규모의 여행사가 사고 대처를 그런 식으로 한다는데 놀랐다.  


*모든 여행사 가이드가 이렇지는 않다. 하노이에서 만났던 통역 가이드는 성실하고 친절할 뿐만 아니라 우리 아이들에게도 잘해 주었다. 다음에 하노이를 가면 그분께 또 가이드를 부탁하고 싶을 정도다. 베트남 가이드는 다 이래가 아니라 결국 사바사 케바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