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 소설> 화전(火田)

by 이작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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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전(火田)>



*이야기의 모든 내용은 허구도 진실도 아니다. 어느 누군가의 속삭임일 뿐이다.



어느 시골의 이야기다.


성인이 되어 취업하기 전까지 난 시골에 살았다. 굳이 지명을 밝히진 않겠지만 충청남도의 한 외딴곳으로, 지금도 개발이 되지 않아 산과 들이 무성한 곳이다.

우리 마을은 깊은 산골에 있었고, 작은 밭들 여러 개를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경작해 자급자족했다. 지금 어린 친구들은 거의 보지 못했겠지만, 당시엔 밭을 일구기 위해 불을 지르곤 했다. 이를 ‘화전’이라 부른다.

매년 화전을 하진 않았다. 시기와 장소를 정한 뒤, 3년에 한 번꼴로 화전을 했는데, 그때마다 마을에선 잔치 비슷한 걸 열었다. 어른들은 불구경하며 막걸리를 드셨고, 어린 우리는 고기를 얻어먹으며 흙장난을 쳤다. 골목대장 봉수가 불타는 밭에 돌멩이를 던지는 장난을 쳐 혼났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내가 국민학교에 입학할 즈음, 제법 큰 화전을 일군 적이 있었다. 역시나 마을 어른들은 막걸리를 드셨고 나와 친구들은 고기를 먹으며 흙장난을 쳤다. 불길이 한창 높아질 때, 멀리서 큰 소리가 들렸다.


“으악!”


찢어질 듯한 비명에 마을 사람들 모두 깜짝 놀라 주변을 살폈다. 설마 밭에 누가 있던 것일까? 아버지를 비롯한 마을 남자들이 서둘러 불을 끄려 했지만,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불은 밭 전부를 태우고 나서야 잠잠해졌고, 너도나도 할 것 없이 까맣게 타버린 흙을 뒤적거리며 혹시 모를 시신을 찾았다.


“안 돼!”


벼락같은 외침을 향해 사람들이 몰려갔다. 그곳엔 까맣게 그을린, 크기가 매우 작은 시신이 있었다. 아버지는 곧바로 내 눈을 가렸지만, 난 그 시신이 누구인지 단번에 알아챘다. 별 모양이 그려진 신발……. 그것은 얼마 전, 부모님이 읍내에서 사줬다고 떠벌리던 봉수의 신발이었다.


“말도 안 돼! 오늘 봉수는 아파서 집에 박혀 있었어! 왜 애가 여기서 죽어 있는 건데!”


봉수네 아버지가 잿더미 시체를 붙들고 흔들었다. 그럴 때마다 그 아이의 타버린 살점이 나무껍질처럼 떨어져 나갔다.

장사를 치르고 얼마 뒤, 봉수네 부모님은 이사를 가버렸다. 제 자식을 삼켜버린 마을이라며, 도무지 이곳에서 버틸 수 없다며.


시간이 흘렀다. 다시 화전을 일구어야 할 날이 다가왔다. 마을 어른들은 지난번과 같은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불을 지르기 전 밭을 꼼꼼히 살폈다. 특히 나뭇가지로 땅을 이리저리 파보기도 했는데, 당시만 해도 집 없는 사람들이 땅을 파고 몰래 숨어드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마을 사람들이 화전을 시작했다. 이번엔 술상은 나오지 않았다. 무사히 화전이 끝난 후 먹자는, 이장님 의견에 따른 것이다. 아이들은 한 집에 모이게 한 뒤, 화전이 끝날 때까지 아무 데도 나가지 못하게 했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호재 형이 나를 비롯한 아이들을 지키며 함께 있었다.

큰 불길이 멀리 산에서 보였다. 우리는 옹기종기 마당에 둘러앉아 커지는 불길을 바라보았다. 근처에서 보지 못해 아쉽긴 했으나, 어른들의 말을 어길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때, 호재 형이 우리 머리 위로 손가락질을 몇 번 했다.


“일곱, 여덟……. 어? 뭐야? 한 명 어디 갔어?”


호재 형은 당황한 듯 몇 번 더 손가락을 놀리더니 기겁을 하며 나에게 말했다.


“동철이 어디 갔어?!”


동철은 우리 가운데 가장 어린, 네 살짜리 꼬마애였다. 일그러진 호재 형의 표정을 보고 덜컥 겁이 난 나는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 동철이를 찾았다. 그러나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모, 모르겠어. 방금까지 있었는데?”


호재 형은 아이들을 부탁한다며, 절대 누구도 나가지 못하게 막으라며 신신당부 하고는 서둘러 산으로 향했다. 휘청거리며 뛰어가는 호재 형 머리 위로, 불이 붉게 타올랐다.


그날 새벽, 마을 사람 누구도 잠들지 못했다. 자지러지게 우는 동철이의 어머니 목소리 너머로 마을 전체가 무서운 저주에 걸렸다는 걱정으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이상하지 않은가? 아이들이 뜨거운 불길 속으로 들어갈 이유가 없었다. 또한, 누군가 아이를 납치했다면…… 특히 계속 함께 있었던 동철이를 납치했다면…… 나와 호재 형이 보지 못할 리가 없었다.

동철이네 부모님도 마을을 떠났다. 경찰은 봉수 때와 마찬가지로 별다른 원인을 찾지 못하고 수사를 종결했다. 단지 화전을 자제해 달라 말할 뿐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회의했다. 아이들을 살리는 것이 마땅했지만 그렇다고 화전을 하지 않는다면 다 굶어 죽고 말 것이었다. 반나절 간의 회의 끝에 무당을 부르자고 결론이 났다.

이장님은 먼 읍내에서 용하다는 남자 무당을 데려왔다. 마을 어른들 몇이 무당을 맞이하러 나갔고, 궁금증이 일었던 난 그 속에 끼게 되었다.

화전이 벌어졌던 곳에 간 무당이 이장에게 말했다.


“별 이상이 없어 뵈는데?”

“자세히 좀 봐봐. 애가 둘이나 죽어 나갔어.”


남자 무당은 한동안 멍하니 주변을 둘러보더니, 한곳을 가리켰다.


“저긴 뭐 하는 곳입니까?”

“아, 저기는 지금 안 쓰는 밭인데…….”


이장님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을 이었다.


“예전에 화전을 하다가 사고가 있었어. 거지 하나가 마을로 흘러들어왔거든. 추위를 못 견디고 밭 가장자리에 있는 나무 아래 땅을 파고 들어간 거야. 우린 그것도 모르고 밭에 불을 질렀고…….”

“허허, 그럼 원인이 나왔네요.”

“우리가 장사까지 치러주고 제까지 올려줬는데……. 그래도 한이 남았으려나.”

“그거야 가보면 알겠지요.”


무당은 사고가 났던 밭으로 휘적휘적 걸어갔다. 그곳에서 이상한 방울을 흔들며 휘파람을 불었다. 이내 어떤 곳에 서더니 마구 땅을 헤집었다. 난 그 모습이 자못 우스꽝스러워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러나 어른들의 표정은 심상치 않았다. 무당은 정확히 거지가 죽어있던 땅을 파고 있던 것이다. 그리고 잠시 후, 무당이 땅속에서 자그마한 보자기 하나를 꺼내 들었다.


“둘이 죽었는데, 하나만 장사를 치렀으니 한이 맺힐 수밖에.”


무당이 보자기를 풀었다. 그곳엔 많이 쳐줘야 두 살 정도 되는 아이가 불에 그을리지도, 썩지도 않은 채 눈을 부릅뜨고 죽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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