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 순수성을 지키지 않고 잡종을 만들어 댔기 때문에 비참해진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아리아인이 그렇게나 많이 성취하고 최고의 존재가 되었다는 것인가? 히틀러의 답은 다음과 같았다.
다른 인종을 밟아 뭉개는 것을 통해서였다. 19세기의 다른 많은 독일 사상가들 처럼, 히틀러는 독일 정신을 배우려는 외국 학생들이 이해하기에 항상 너무 어렵다고 알게 되는 새디즘 (그리고 그것의 반대인 매저키즘) 속에서 천진난만하게 매우 기뻐하며 즐겼다.
그래서 더 높은 문화들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우리보다 열등한 인간 족속들의 존재는 가장 필수불가결한 전제조건들 가운데 하나였다. 인류의 첫 번째 문화는 가축화된 동물들에게는 덜 의존했고 열등한 인간 족속들을 사용하는 것에 기반했다는 것은 확실하다. 피지배자 인종들에 대한 노예화가 끝나고 나서야 같은 숙명이 야수들을 덮쳤다.
처음으로 정복당한 전사가 쟁기를 끌었다. - 그 노예의 노동 다음에 말을 사용해서 쟁기를 끌게 한 것이다. 그래서 아리아 인이 열등 인간 족속들과 맞닥뜨리고 나서, 그 족속들을 지배하에 집어 넣어 예속시키고 자신의 의지에 따르도록 무릎을 꿇게 한 곳에서 최초의 문화가 일어났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아리아 인이 무자비하게 지배자의 태도를 유지하고 있는 한, 자신이 지배자로서 남아 있을 뿐만 아니라 문화를 보존하고 그것을 증진시키는 주인공으로서도 남아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히틀러가 독일인들에게 경고로서 제기하는 무엇인가가 나타났다.
예속된 민족들이 들고 일어나서 자신의 정복자와 같은 수준에 도달하게 되는 즉시, 즉 아마도 자신의 언어를 사용하는 국면이 되는 시점에는, 지배자와 노비의 경계들은 무너지게 되었다.
그러나 지배자의 언어를 공유하는 것보다 다른 어떤 것이 훨씬 더 나빴다.
아리아 인종은 자신의 피의 순수성을 포기했고, 그래서 낙원에서 체류할 수 없게 되었다. 바로 이전에 자신을 위해서 그 천국을 만들었는데 말이다. 아리아 인종은 인종의 혼합물 속에 가라앉아 침몰했고 점차적으로 자신의 문화적 창조성을 잃어버렸다.
젊은 나치 지도자에게 이것은 가장 기본적인 오류였다.
피의 혼합과 그 결과로서 생긴 인종적인 수준의 저하는 옛 문화들이 자취를 감추게 되는 유일한 원인이다. 민족은 전쟁에서 패배한 결과로 사멸하는 것이 아니다. 순수한 피를 유지하고 있을 때에만 계속될 수 있는 저항의 힘을 상실했을 때 사멸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좋은 인종이 아닌 모든 자들은 하찮은 쓰레기이다.
하찮은 쓰레기라는 것은 유태인과 슬라브족들이었다. 그리고 히틀러가 독재자이자 정복자가 되는 시기가 도래하자, 이 종족에 속한 어떤 이와 독일인과의 결혼은 금지시켰다. 비록 4학년을 담당하는 한 여교사가 히틀러에게 독일인들의 속에는 많은 슬라브족의 피가 섞여 있으며, 특히 동부 지역들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고 말할 수 있었지만 말이다.
자신의 인종적인 생각들을 정책으로서 수행하는 데 있어서, 모두들 이 생각을 인정해야만 했으며, 히틀러는 자신의 말을 철저하게 지켰다. 전쟁동안 동부의 슬라브족에게 히틀러가 부과하기 시작한 신 질서 속에서, 체코인, 폴란드인, 러시아인들은 - 그리고 만약 그 그로테스크한 신 질서가 유지되어졌다면 남아 있을 예정이었다. - 자신들의 독일인 상전을 위해서 장작 패고 물 긷는 사람으로 천한 일을 하는 노비로서 살아가야 했다.
히틀러 만큼이나 역사와 인류학에 대해 무지한 자라면 독일인들을 현대의 아리아인 - 그리고 그래서 지배자 인종이라고 - 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쉬운 단계가 될 수 었다. 히틀러에게 독일인들은 "이 지구상의 인종 가운데서 가장 위대한 종족" 이었고 만약 "자기 자신들을 단순히 개, 말 그리고 고양이들을 키우는 것에 빠져 있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의 피의 순수성을 돌보는 것에 전념한다면" 그렇게 남을 것이었다.
인종에 관해 그렇게나 히틀러가 집착한 것은 자신이 이른바 "민족" 국가를 열렬히 변호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정확히 어떤 종류의 국가였는지 - 아니면 어떤 것을 의도했던 것인지 - 저자는 결코 명확히 이해하지 못했다.
셀 수도 없을 만큼 반복해서 나의 투쟁을 읽고 또 읽고 했으며 그 주제에 관해 퓌러 본인이 했던 연설을 수십 번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