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의 부품이자 정복의 군사이자 지배 인종이다
엘베 강 너머 동쪽에 프로이센이 위치해 있었다. 19세기가 차츰 끝에 가까워지게 되면서 1848년과 1849년 사이에 어느 정도 민주적이고 통합된 독일을 만들고자 했던 혼란스럽고 소심하며 용기가 없던 자유주의자들이 유감스럽게도 실패하자 프로이센이 독일의 운명을 짊어지게 되었다.
수 세기 동안 이 독일 국가는 독일 역사 발전과 문화의 주류 밖에 위치해 있었다. 마치 역사가 일시적 기분으로 아주 변덕을 심하게 부려서 뜬금없이 운명을 넘겨준 것처럼 거의 그렇게 보였다.
프로이센은 엘베 강 동쪽의 모래투성이의 쓸모 없는 땅에 세워진 브란덴부르크 변경백국으로 그 역사를 시작했다. 천천히 슬라브 족들이 정복해 오던 바로 그 지역에 제국의 방위를 위해서 11세기 초반에 건국되었던 변경 영국이었던 것이다.
브란덴부르크를 통치하는 공들은 호엔촐레른 가 사람들이었고 군사 모험가에 지나지 않았다. 중앙의 정치에 참가하거나 섬세한 예술을 즐길 여유가 없었고 오로지 군 사령관으로서 자신의 재능을 발휘해야만 살아 남을 수 있었다. 대부분이 폴란드 인이었던 슬라브 족을 점차적으로 발트해 연안을 따라 밀어 붙였다. 그 군사적 원정에 저항하는 자들은 몰살되거나 땅을 빼앗기고 농노로 떨어뜨리거나 둘 중의 한 가지를 운명으로 주었다. 독일 제국의 황살 법은 공들이 왕의 작위를 보유하는 것을 금지했지만 1701년 황제는 선제후 프레데리히 3세가 쾨니히스베르크에서 프로이센의 왕으로 왕위에 오르는 것을 묵인했다.
바로 이 시기에 프로이센은 온전히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유럽의 손꼽히는 군사 강국의 지위에 올랐던 것이었다. 그 외 나머지의 자원은 없었다. 프로이센의 토양은 척박했으며 대개 황무지였다. 땅에는 존재하는 광물질이 전무했다. 인구는 적었다. 프로이센 국내에는 큰 도시도, 산업 시설도 없었으며 문화도 거의 없었다. 심지어 귀족들도 가난했으며, 땅을 소유하고 있지 않은 농부들은 짐승들과도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최고 의지와 그것의 집행, 조직력의 천재에 의해서 호엔촐레른 왕실은 가까스로 스파르타 식의 군사 국가를 만들어 내었다. 이 군대 이외에는 아무 것도 가지지 않는 국가는 잘 훈련된 군대가 한 번의 승리 후에 또 다른 승리를 얻는 식으로 계속해서 승리의 행진을 이어 나갔고, 이 나라의 마키아벨리즘 적인 외교는 단지 그게 누가 되었든지 그 시점에서 가장 강하게 보이는 강국과 일시적인 동맹만을 맺었다. 그리고 이런 외교를 통해서 지속적으로 영토를 추가해 나갔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정복을 제외하면 어떠한 대중적인 동인도 가지지 않고 인공적으로 태어난 나라가 일어 섰다. 그리고 통치자의 절대적인 권력에 의해서 함께 뭉쳐 단결했다. 통치 기구는 매우 편헙한 사고를 가진 관료제로 통치자의 요구만을 수행했고, 이는 무자비하게 조련된 육군에 의해 강요되었다.
국가의 연간 수입 중 삼분의 이, 때대로 육분의 오까지가 육군의 비용을 대는데 지출되었다. 그리고 육군은 왕의 아래에서 국가 그 자체가 되었다.
미라보가 주목했다.
"프로이센은 육군을 가진 나라가 아니라 나라를 가진 육군이다."
그리고 그 나라는 공장의 효율성과 영혼이 없이 삭막함으로 운용되었고, 그것이 나라의 전부가 되었다. 프로이센의 국민들은 기계류의 톱니보다 하등 더 나을 것이 없는 존재였다. 왕들과 훈련 부사관들뿐만 아니라 철학자들조차도 국민들에게 인생에서의 역할은 복종, 일, 희생과 의무라고 가르쳤다. 심지어 칸트도 의무는 인간의 감정을 억압하도록 요구한다고 설교했으며, 프로이센의 시인인 빌리발트 알렉시스는 호엔촐레른 왕실 아래에서 국민들이 노예화되는 것을 영광스럽게 노래했다.
이러한 것을 좋아하지 않았던 레싱은 이렇게 말했다.
"프로이센은 유럽에서 가장 노예적인 국가였다."
근대 프로이센에서 극히 중요하고 필수적인 역할을 수행하기로 되어 있는 융커들은 또한 프로이센의 독특한 산물이었다. 자신들이 말한 바에 따르면 융커들은 지배자 인종이었다. 슬라브 족들에게서 정복한 땅을 점유하고, 그 슬라브 족들에게 일을 하도록 시키고 있는 큰 규모의 부동산에 농사를 경영하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이 융커들이었다. 한편 씨뿌리고 쟁기를 끌고 수확하는 이 슬라브 족 농부들은 서방 세계에서 그 역활을 하는 이들과는 사뭇 다른 땅 없는 농노들이 되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