퓌러의 출현 5

당에서 단 한 푼의 급여도 받지 않고 헌신하다

by 꿈많은 미소년

예를 들면 히틀러는 마지막 순간까지 율리우스 슈트라이허를 중용했다. 이 타락한 새디스트는 자신의 삶을 초등학교 교사로서 시작했는데, 1922년부터 자기의 별이 마침내 저물어 갈 무렵인 1939년이 될 때까지 히틀러의 주변에 있던 자들 중 가장 평판이 안 좋은 작자였다. 스스로가 자랑스럽게 떠벌린 대로, 여자와 간통해서 놀아나기로 유명했으며, 심지어 자신의 파트너인 여자들의 남편들에게 협박 편지를 보내기까지 했다.

이 구역질나는 작자는 맹목적으로 광신적인 반 유태주의로 자신의 명성과 부를 얻어 냈다. 이 인간의 악명 높은 주간지인 데어 슈투어메르는 유태인들의 성 범죄들과 "제의적 살인들"에 관해 충격적이고도 야한 얘기들을 역겨울 정도로 자세하게 묘사해서 엄청나게 번창하고 있었다. 이 주간지의 음란한 묘사와 외설적인 서술들은 대단히 역겨워서 심지어 배짱 두둑한 나치 일당들조차 부담스러울 지경이었다.

슈트라이허는 게다가 주목을 받는 포르노 제작자였다. 뉘른베르크에서 자신의 권력에 중심에 서 있는 위치로 인해 "프랑코니아의 왕관 없는 왕"으로서 알려지게 되었다. 뉘른베르크에서 슈트라이허의 말은 곧 법이었고, 혹여 누구라도 거슬리거나 기분을 상하게 하면 감옥에 수감되거나 고문을 받지 않고 안전하게 있을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본 저자가 재판을 방청하러 갔을 때 전쟁범죄자로서 자신의 삶에 대한 재판에서 뉘른베르크의 피고석에 고꾸라져 있던 것을 마주 했을 때까지, 손이나 벨트에서 채찍을 들고 있지 않은 모습을 결코 본 적이 없었다. 그럴 때면 이 작자는 자신이 처벌을 주는 행위로서 셀수도 없이 많은 채찍질을 했다고 웃으면서 떠벌리는 것이었다.


믿기지 않을 지도 모르지만, 루터, 칸트, 괴테, 그리고 쉴러, 바흐, 베토벤, 거기에 브람스와 같은 위대한 인물을 이 세계에 선물한 그 위대한 국가의 독자자가 되고자 자신이 추진하면서 초기에 주변에 데려다 놓은 인물들이 하나같이 이런 모양의 작자들이었던 것이다.



1920년 4월 1일에 독일 노동자당은 국가 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이 되었다. - 바로 이 무렵부터 "나치" 라고 줄여쓴 이름이 등장하게 되었다. - 히틀러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육군을 떠났다. 이 시점 이후로 히틀러는 자신이 가진 시간 전부를 오로지 나치당에 전념하게 되며, 이때도 그랬지만 그 이후에도 당에서는 단 한 푼의 월급도 받지 않았다.


그렇다면 충분히 이런 의문이 들 것이다. 대체 히틀러는 뭘로 먹고 살았을까? 히틀러의 동료 당원들도 때때로 궁금해 하곤 했다. 1921년 7월에 당 위원회에서 히틀러에 대한 반란을 이끈 위원들도 이 점을 공소장에서 직설적으로 제기했다.


"만약 누군가가 히틀러에게 어떻게 살아 가며, 이전의 직업이 무엇이었냐고 물어보면, 항상 화를 내며 흥분한다. 지금까지 이 질문에 대한 어떤 답변도 제공되지 않았다. 따라서 이 점을 미루어 볼 때 히틀러는 양심이 올바르지 않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자기 자신을 "뮌헨의 왕"으로서 자주 묘사하면서, 그런 발언을 듣는 여성들과 과도하게 관계를 가지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왜냐면 이 것은 많은 돈이 들어가는 일이기 때문이다."


히틀러는 이 질문에 대해서 이후에 그 소책자를 지은 자들에 대항하여 자신이 제기해서 숙청 작업을 그 이후에 실행하면서 답을 했다. 그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라는 법정의 질문에 정확하게 다음과 같이 답을 했다.

"국가 사회주의 당에 관해서 말을 하자면, 나는 단 한 푼의 급료도 당에서 받고 있지 않다. 하지만 다른 조직들에 관해서 또한 말을 하자면... 그리고 물론 그런 과정 속에서 나는 수수료를 받는다. 또한 다양한 당원 동지들과 돌아가면서 점심 식사를 해결한다. 그리고 몇몇 당원들에게 소정의 재정적 지원을 받고 있기도 하다."

아마도 히틀러의 이 말이 진실에 매우 가까운 것일 가능성이 대단히 크다. 디트리히 에크하르트, 괴링 그리고 한프슈텡글과 같은 유복한 친구들은 의심의 여지 없이 히틀러에게 돈을 "빌려" 주어서 집세를 내고, 옷들을 사고 그리고 식사를 해결하게 했다. 히틀러의 소비는 매우 소박했고, 그다지 물욕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1929년까지 히틀러는 이자르 강 근처의 티에르쉬슈트라세 에 있는 하류 중산 계급의 구역에서 방 두 개인 아파트에서 살았다. 세상에 아파트에서 살다니!! 제대로 된 사람이라면 과연 상상이나 할 수 있는가?

하지만 히틀러는 그런 점에 별로 개의치 않았다. 겨울이면 낡은 트렌치 코트를 입었고. - 이 모습은 나중에는 셀 수도 없이 많은 사진에 등장한 탓에 독일의 모든 이들에게 친숙하게 되었다. 여름이면 자주 반바지를 입고 나타났다. 레더호센이라고 하는 것인데, 대부분의 바이에른 서민들이 계절 옷으로 즐겨 입는 옷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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