퓌러의 출현 6

풍전등화의 위기가 커져 가는 바이마르 공화국

by 꿈많은 미소년

1923년에 에크하르트와 에세는 히틀러와 그 친구들이 여름 휴가를 보낼 수 있는 베르히테스가덴 근처의 여관인 플라터호프를 우연하게 발견했다. 히틀러는 이 아름다운 산촌과 사랑에 빠졌다. 나중에 자신의 집이 되고 전쟁 기간때까지 상당한 시간을 보낼 장소로 공간이 아주 넉넉한 빌라인 베르그호프를 건축하게 되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그러나 1921년과 1923년 사이에는 폭풍우가 몰아치던 이 시기에는 휴식과 레크리에이션을 위해 시간을 낼 기회가 거의 없었다. 히틀러 자기 자신과 마찬가지로 질투심 많은 라이벌에 직면해서 세우고 계속 통제해서 키워나가야 하는 당이 있었다. N.S.D.A.P는 바이에른에서 대중적인 관심과 지원을 얻으려고 투쟁하는 여러 우익 정치 운동들 중 하나였고, 그 너머에 독일의 나머지 지역들에는 이런 정파들이 아주 많이 있었던 것이었다.



한 정치가가 지켜보고, 평가하고, 그리고 그것을 활용하기에는 눈이 돌아갈 만큼 어지러운 사건들이 연달아 일어났고 상황들은 계속해서 변하기만 했다. 1921년 4월 연합국들은 독일에게 전쟁 배상금의 청구서를 들이밀었다. 엄청나게 큰 금액으로 1320억 금 마르크였다 - 330억 미국 달러에 상당했다. - 이것은 독일인들이 지불이 가능하지 않다고 울부짖는 금액이었다. 독일 마르크는 정상적으로는 1달러당 4마르크의 가치를 지니고 있었지만, 바로 이때부터 그 가치가 급히 추락하기 시작했다. 1921년 여름이 될 무렵이면 1달러에 75마르크로 떨어졌고, 일 년 후에는 1달러에 사백 마르크가 되었다.



에르츠베르거는 1921년 8월에 암살당했다. 1922년 6월에는 필립 슈나이더만을 암살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필립 수나이더만이 누구인가. 바로 바이마르 공화국의 성립을 선언했던 사회주의자가 아니던가. 같은 달, 즉 6월 24일에는 외무상 라테나우가 거리에서 총을 맞아 숨졌다. 이 모든 경우에서 암살자들은 극우파에 속한 남자들이었다. 갈피를 잡지 목하고 흔들리고 있던 베를린의 중앙정부는 결국 공화국 수호를 위한 특별법이라는 도전에 응답했다. 이 특별법은 정치적 테러리즘에 대한 무거운 처벌을 부과했다. 베를린 정부는 셀 수도 없을만큼 많이 만들어져 난립하던 무장 단체들의 해체와 정치 깡패 집단들의 종식을 요구했다.


바이에른 정부는 비록 보다 온건한 레르헨펠트 백작의 지도 아래 있었지만 - 레르헨펠트 백작은 1921년에 극단주의자였던 카르를 대신해서 정권을 잡았다. - 베를린 중앙 정부의 정책에 동조하는 것은 어렵다고 파악했다. 바이에른 정부가 테러리즘에 반하여 해당 특별법을 실행하면, 이제는 젊은 지도자로서 명성을 가지고 바이에른 전역에서 알려져 있는 히틀러와 같은 자들인 바이에른 우익 세력들이 레르헨펠트의 정부를 전복시킬 음모를 조직하고 기세를 타서 베를린까지 진군해서 공화국 전체를 멸망시킬 수도 있었다.



이제 막 날기 시작한 어린 새와 같은 초보 민주주의 국가인 바이마르 공화국은 이제 깊은 문제 속에 빠져 버렸고, 공화국의 존재 자체가 극우파에게서뿐만 아니라 또한 극좌파에게서도 지속적으로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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