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에른에서의 반란 4

중앙 정부, 바이에른 분리주의 그리고 히틀러

by 꿈많은 미소년

바이에른은 여전히 베를린에게 반항적인 상태로 남아 있었다. 지금 바이에른은 삼두정치가의 독재적인 통제 아래 놓여 있었던 것이다. 그 세 명은 국가 감찰관인 카르, 바이에른의 라이흐스베어 사령관인 오토 폰 로소브 장군, 그리고 주 경찰청장인 한스 폰 자이서 대령이었던 것이다.


카르는 에베르트 대통령이 선포한 독일 국가가 비상 사태에 놓여 있다는 내용이 바이에른에서 적용된다는 것을 인정하기를 거부했다. 그리고는 베를린에서 보내는 어떠한 명령도 수행하는 것을 거절했다.

히틀러의 나치당 기관지인 포엘키셔 베오바흐터가 전반적으로 공화국에 대해서, 그리고 특히 제크트와 슈트레제만 그리고 게슬러에 관해서 독설에 가득찬 비방과 중상모략을 계속하자, 그것을 이유로 신문의 출판을 금지시키라고 베를린의 중앙 정부가 요구했지만, 카르는 그 명령을 경멸하면서 모욕적으로 거부했다.


베를린에서 두 번째 명령을 바이에른에 보냈는데, 바이에른에서 무장 집단을 이끌고 있는 세 명의 악명 높은 수괴들을 제포하라는 내용이었다. 이들은 하이스 대위, 에르하르트 대위 (카프 폭동의 "영웅"이었다.) 그리고 로스바흐 중위 (룀의 친구이다.) 였는데, 카르는 또한 이 명령도 수행하기를 거부했다.


인내심이 바닥난 제크트는 폰 로소브 장군에게 나치 기관지를 발행 금지시키고, 세 명의 자유 군단원들을 체포하라고 명령했다. 명령을 받은 장군은, 본인 스스로도 바이에른의 인간이며 히틀러의 감정에 호소하는 웅변과 제크트 장군의 설득력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며 마음이 약해져 있어서, 명령에 복종하기를 주저했다. 10월 24일에 제크트는 폰 로소브 장군을 파면하고 크레스 폰 크레센슈타인 장군을 그 직위에 임명했다.

그러나 카르는 베를린에서 취한 이런 종류의 독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카르는 로소프 장군이 바이에른에서의 라이흐스베어 사령관 직을 유지하고 있다고 선언했다. 이것은 제크트에게 반항하는 것 뿐만 아니라 독일 헌법에 대해서도 따르기를 거부하는 것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나서 바이에른에 있는 장교들과 주민들에게 바이에른 정부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특별한 선서를 하도록 강요했다.


베를린에게 이것은 정치적일 뿐만 아니라 군사적인 반란에 해당되었고, 폰 제크트 장군은 이제 그 양쪽을 모두 진압하기로 결심했다.

폰 제크트 장군은 바이에른의 삼두 와 히틀러, 그리고 무장 집단들에게 국가에 반하는 측에 있는 모든 반역은 무력으로 진압될 것이라고 분명한 경고문을 공표했다.


하지만 나치의 지도자에세는 뒤로 물러서기에는 너무 늦은 시점이었다. 히틀러의 과격한 추종자들은 행동을 요구하고 있던 중이었다. S.A.의 지휘관들 중 하나였던 빌헬름 부루에크너 중위는 히틀러에게 즉시 공격할 것을 촉구했다. 중위는 경고했다.

"그 날이 오고 있다. 내가 여기 모여 있는 남자들을 다시 물릴 수는 없다. 만약 지금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이 자들은 우리에게서 떠나가 버릴 것이다."


히틀러도 마찬가지로 깨달았다. 만약 슈트레제만이 월씬 더 많은 시간을 가지게 되고, 이 나라에서 안정을 회복시키려는 자신의 노력이 성공을 거두기 시작하게 되면, 히틀러의 기회는 사라질 것이었다. 히틀러는 카르와 로소브에게 베를린이 뮌헨으로 진격해 오기 전에 베를린으로 진군하자고 간곡하게 애원했다. 그리고 미적대고 있는 그들을 보며 히틀러의 마음 속에서는 의심이 자라났다.


즉, 이 삼두는 이번 반란에 대한 초심을 이미 잃어버렸거나 아니면 독일 국가로부터 바이에른을 분리시킬 목적으로 히틀러 없이 분리주의 쿠데타를 계획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이런 점에 대해 히틀러는 강한 민족주의자라이자 통일된 국가를 열말하는 자신의 광신적인 생각은 어떠한 경우에도 바뀔 수 없는 것이었고 반대가 있다면 분쇄해 나가야 할 것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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