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에른에서의 반란 3

공산주의자들과의 내전, 그리고 음모

by 꿈많은 미소년

외눈 안경을 쓰고 항상 포커페이스인 이 프로이센 육군 참모총장의 이 얼음과도 같이 냉랭한 발언은 예상되어지는 바와 같이 독일 공화국의 대통령이나 국가 재상을 경악시키지는 않았다. 두 사람 모두 국가 안의 국가라고 하는 육군의 지위와 자기 자긴에게만 종속된다고 하는 점을 이미 인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3년 전에 우리가 이미 보았듯이 카프 세력들이 베를린을 점령했을 때 제크트 장군은 유사한 호소를 받았고, 육군은 공화국의 뒤가 아니라 장군의 뒤에 서 있었던 것이다. 1923년 현재 유일한 질문은 바로 제크트 장군이 어디에 서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공화국을 위해서 다행스럽게도 장군은 공화국의 뒤에 서기로 택했다. 이것은 장군이 공화주의와 민주주의 이론을 믿어서는 아니었고, 자신이 보기에 잠시 동안은 기존의 정권을 지지하는 것이 육군을 보존하는데 필요하다는 것 때문이었다.

일단 육군 그 자체도 바이에른과 북부에서의 반란으로 위협을 받고 있었고, 재난을 가져올 것이 뻔한 내전으로부터 독일을 구할 필요가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제크트는 뮌헨에 주둔한 육군 사단의 몇몇 지휘관들이 바이에른 분리주의자들의 편을 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또한 전 참모본부의 장교였던 부흐루커 소령의 지도 아래 "검은 라이흐스베어"가 베를린을 점령하고 공화 정부를 쫓아내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것에 관해서도 알고 있었다. 장군은 이제 차가운 정확성과 절대적인 결단력을 가지고 움직였다. 육군을 정돈하고 내전의 위협을 끝내야 했다.



1923년 9월 30일의 밤에 부흐루커 소령의 명령 하에 "검은 라이흐스베어" 부대원들은 베를린 동부의 요새 세 곳을 점거했다. 제크트는 정규군에게 그들과 맞서서 공성전을 하도록 명령을 내렸고, 이틀 간의 전투 후에 부흐루커는 항복했다. 국가 반역죄로 체포된 후 요새에서 10년 간 구금되도록 선고되었다.

"검은 라이흐스베어"는 사실 제크트 본인이 겉으로는 아르바이츠코만도스 (노동자 의용군) 이라는 이름으로 창설하여 100,000 명에 불과한 라이흐스베에에 대한 비밀 보충병을 제공할 목적으로 존재했었지만, 이제 해산되었다.


제크트는 그리고 나서 작센, 튀링겐, 함부르크와 루르 지역에서 급상승하고 있던 공산주의의 위협에 주의를 돌렸다. 좌익 세력을 진압하는 것에 관해서라면 육군의 충성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질 수 있었다.

작센에서 사회주의자와 공산주의자들의 연립 정부는 지역의 라이흐스베어 사령관과 해당지역을 통치하도록 임명된 국가 감찰관에 의해서 체포되었다. 함부르크와 다른 지역들에서 공산주의자들은 빠르고도 가혹하게 분쇄되었다.


이제 베를린에게는 볼셰비키주의자들을 비교적 쉽게 진압함으로써 공산주의로부터 공화국을 구하기위해서 정말로 행동을 하고 있다라고 하는 구실로 음모를 꾸미는 바이에른의 작자들에게서 명분을 박탈해 버린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이제 중앙 정부의 권위를 인정할 것이었다. 하지만 상황은 그런 식으로 흘러가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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