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에른에서의 반란 1

히틀러 서서히 일어나기 시작하다

by 꿈많은 미소년

"정부는 조용하게 이 종이 쓰레기를 계속 인쇄하고 있다. 왜냐하면 계속 인쇄하지 않는다면 이 정부의 종말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히틀러는 울부짖었다.


"왜냐하면 일단 인쇄기들이 멈추게 되면 - 그리고 그것은 마르크 화의 안정화의 전제이다. - 이 사기 행각은 즉시 빛을 보고 올바르게 될 것이다... 나를 믿어 달라, 우리의 비참함은 더욱 심해질 것이다. 저 악당은 용케 잘 빠져 나갈 것이다.

이유는 이러하다. 이 공화국 그 자체가 가장 큰 협잡꾼이자 사기꾼이 되었기 때문이다. 강도들의 나라! ... 만약 몸서리치고 있는 민중이 자신들이 수십 억 마르크를 가지고 있는데도 굶주릴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한다면, 이런 결론에 도달할 것임에 틀림없다.

우리는 다수의 사기적인 생각 위헤 건설된 나라에 더 이상은 복종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독재를 원한다..."



의심의 여지 없이 타당하지 않고 고의적인 인플레이션의 고난과 불확실성에 수 백만의 독일인들은 그러한 결론을 내리도록 몰렸고 히틀러는 민중을 이끌어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 사실 히틀러는 1923년의 혼돈스런 상황이 다시는 일어서지 못할 공화국을 전복시킬 기회를 만들어 주리라 믿기 시작했다. 하지만 히틀러 자기 자신이 반혁명을 이끌 인물이라면 그 길에 특정한 문제들이 놓여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히틀러는 만약 자신이 아니라면 딱히 그런 문제에 별 흥미가 있지도 않았다.



첫 번째 문제로 나치당은 비록 매일 같이 그 당원의 숫자가 늘어나고 있기는 했지만, 바이에른에서 가장 중요한 정치적 운동이기에는 한참 멀 정도로 규모가 작았다. 그리고 바이에른을 벗어나면 나치당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없었다. 이렇게나 작은 정당이 어떻게 공화국을 전복시킬 수 있다는 말인가?

히틀러는 자신의 앞에 놓여진 역경에 쉽게 낙담하는 인간은 아니었고,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 내었다. 아마 히틀러는 자신의 지도력 아래에 바이에른의 모든 반공화주의자, 민족주의자 세력들을 결집시켜 연합을 형성할 수 있을 지도 몰랐다. 그렇게 되면 바이에른 정부의 지지를 얻어서 여러 군사조직들과 바이에른에 배치된 라이흐스베어 병력들의 지원과 참여로 베를린으로의 행진을 이끌 수 있었다. - 마치 한 해 전에 무솔리니가 로마로 행진했던 것 처럼 - 그리고 바이마르 공화국에게 멸망을 가져다 줄 것이었다.



명백하게도 무솔리니의 쉬운 성공이 히틀러가 가진 이 생각에 자양분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루르 지방에 대해 프랑스가 점령하고 있는 것은, 비록 전통적인 군대에 대한 독일인들의 증오를 다시 새롭게 했고 민족주의 정신을 되살아나도록 했지만, 히틀러의 과업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즉 프랑스에게 반항하기로 선택한 베를린의 공화 정부의 뒤에서 독일 국민들이 단합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히틀러가 가장 원하지 않는 상황이었다. 히틀러의 목표는 공화국을 타파하는 것이었다. 프랑스는 우선 독일에서 민족주의 혁명을 일으키고 독재 권력을 수립하고 나서 손을 봐줄 수 있는 문제였다.

당시 일반 대중들의 가진 대체적인 기류에 반해서 히틀러는 국민들에게 인기 없는 내용을 감히 택했던 것이다.



"아니다 - 프랑스를 거꾸러뜨리는 게 아니다. 우선 조국의 배신자들을 무너뜨려야 한다, 11월의 범죄자들을 무너뜨려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슬로건이다!"


1923년의 초기 몇 달을 통틀어서 히틀러는 슬로건을 효과적으로 만드는데 스스로 모든 것을 바쳐서 전념했다. 2월에 대체로는 룀의 조직력 때문에, 바이에른의 무장 "애국 단체들" 네 곳이 소위 아르바이츠게마인샤프트 데어 파테르랜디셴 캄프페어밴데 (조국을 위해 싸우는 단체들의 노동 연합) 이라는 것을 형성하기 위해서 히틀러의 정치적 지도력 아래 나치와 합류했다. 9월에는 훨씬 더 강력한 집단이 도이쳬 캄프분트 (독일의 싸우는 연합) 이라는 이름 아래 결성되었다. 히틀러는 그것의 삼두 지도자들 중 하나였다.



이 조직은 1870년에 세당에서 독일이 프랑스를 패배시킨 것을 축하하기 위한 기념일로 9월 2일에 뉘른베르크에서 개최된 거대한 군중 집회에서 생겨났다.

남부 독일에서 파시스트의 생각을 가진 단체들의 대부분은 출석했고, 히틀러는 공화국 정부에 대항하는 격렬한 연설 후에 큰 박수를 받았다. 새로운 캄프분트의 목적들은 공개적으로 천명되었다. 공화국을 전복하고 베르사유 조약의 협정문을 찢어버리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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