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국을 전복시키려는 반란 세력들이 그 세를 키워가다
뉘른베르크 집회에서 시위 참가자들이 가두행진을 하는 동안 히틀러는 사열대에서 루덴도르프 장군 옆에 서 있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어느 정도인가 이 젊은 나치 두목은 전쟁 영웅이자 베를린에서 카프 폭동을 만든 자들에게 자신의 유명한 이름을 빌려주었던 장군과 관계를 구축해 오고 있었던 것이다.
우익 진영에서 반혁명을 계속 장려해 온 이래로 히틀러의 마음 속에서 싹트기 시작하고 있었던 행동으로 돌아가도록 유혹 받았을 지도 모른다. 이 늙은 장군은 사실 정치적 감각은 전혀 없었다. 이제 뮌헨의 밖에 살고 있으면서 바이에른 사람들, 황태자 루프레흐트, 바이에른의 권리를 주장하는 자들, 그리고 독일의 모든 주들 가운데서 가장 가톨릭적인 이곳에서의 가톨릭 교회 등에 대한 자신의 경멸감을 위장하려 하지도 않았다.
이 모든 것을 히틀러는 알고 있었지만 히틀러 자신의 목적에 딱 부합하는 것이었다. 히틀러는 루덴도르프가 민족주의 반 혁명 진영의 정치적인 지도자로서 떠오르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았다. 히틀러가 원하는 루덴도르프의 역할은 추정하기에 야심차다고 전쟁 영웅이 알려지는 것 뿐이었다.
정치 지도자로서의 그 역할은 히틀러 자신이 맡아야 한다고 히틀러는 주장했다. 하지만 루덴도르프의 이름은, 장교단과 독일 전역의 보수주의자들 사이에서 명망 있는 그 이름은 바이에른 밖에서는 아무도 알지 못하는 지역 정치가에 불과한 히틀러에게는 여전히 크나큰 자산이 될 것이었다. 히틀러는 루덴도르프를 자신의 계획들 속에 포함시키기 시작했다.
1923년 가을에 독일 공화국과 바이에른 주에는 위기의 순간이 찾아왔다. 9월 26일 국가 재상인 구스타프 슈트레제만은 루르 지역에서의 소극적 저항을 마친다는 것과 독일의 전쟁배상금 지불을 재개한다는 것을 발표했다. 이 힌덴부르크와 루덴도르프의 전 대변자는 뼛속 깊숙이 보수주의자였으며, 마음 속으로 진정한 군주제 지지자였는데, 이런 결론에 도달했던 것이다.
즉 만약 독일이 구원받을 것이라면, 반드시 통합되고 다시금 강력하게 될 것이라면, 최소한 어느 정도의 시간동안은 공화국을 수용하고, 연합국과의 조약을 맺고 안정제를 투여 받는 기간을 확보하는 것이다. 바로 그 속에서 강한 경제력을 다시 회복할 것이다. 이 이상 더 무작정 나아가는 것은 결국 내전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고 아마도 국가의 최종적인 파괴만을 불러올 것이었다.
루르 지역에서 프랑스 군에 대한 저항의 방기와 국민들에게 부담이 되는 전쟁 배상금의 지불을 재개하는 것은 독일 민족주의자들 사이에서 분노와 히스테리의 폭발을 불러 일으켰다.
그리고 이는 공산주의자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또한 계속해서 그 힘을 키워오고 있던 중이었는데, 공화국에게 쓰고 맹렬한 비난을 가한다는 측면에서 우익 세력과 한 목소리를 내며 그 움직임에 합류하였다. 슈트레제만은 극우파와 극좌파 양쪽 모두에서 심각한 반항에 직면했다.
슈트레제만은 에베르트 대통령이 자신이 루르 지역과 전쟁 배상금에 관해서 정책을 변경한다고 발표하는 바로 그 날에 비상사태를 선언하도록 함으로써 상황을 풀어나가기를 기대했다.
1923년 9월 26일부터 1924년 2월이 될 때까지 비상 계엄 하의 독일의 행정력은 국방상인 오토 게슬러와 육군 총사령관인 폰 제크트 장군의 손에 주어졌다. 실제적으로 이 조치는 장군과 자신의 육군이 독일 공화국을 다스리는 사실상의 독재자가 되도록 한 것이다.
바이에른은 그러한 해결책을 받아들이는 분위기 속에 있지는 않았다. 바이에른의 오이겐 폰 닐링 내각은 자체적인 비상 계엄을 9월 26일에 선언하고 우익 군주제 지지자이자 전 수상인 구스타프 폰 카르를 독재권력을 가진 주 감찰관으로 임명했다.
베를린에서는 바이에른이 독일 공화국으로부터 분리 독립할 수도 있다고 공포에 사로잡혔다. 베를린의 공포는 근거 없는 것은 아니었는데, 왕당파라고 해도 베를린과 바이에른은 결이 달랐다. 즉 베를린이 의심한 것은 바이에른의 이번 조치가 비텔스바흐 군주제를 복원시키고 오스트리아와 남독일 연맹을 형성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었다.
에베르트 대통령은 시급하게 내각을 소집했고, 폰 제크트 장군도 국무회의에 참석하도록 초대되었다. 에베르트는 육군이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 알기를 원했다.
제크트는 퉁명스러운 어조로 직설적으로 대통령에게 답했다.
"대통령 각하, 육군은 제 뒤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