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 멋진 일인실에서 휴식과 정치 구상을 하다
중대 반역죄를 저지른 것에 대한 결과로서는, 그것이 극우파에 의해 저질러진 것이 아니라면, 지나치게 무거운 것이 아니었다. 법이 존재했는데도 불구하고 많은 반 공화주의자들이 그 점을 인식하고 있었다.
히틀러가 일으킨 폭동은 실패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히틀러를 국가적인 주요 인물이 되게 해 주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의 눈에 히틀러는 애국자이자 영웅으로 다가왔다.
나치의 프로파간다는 곧 그 실패한 폭동을 나치 운동의 위대한 전설들 중 하나로 변형시켰다. 매년, 심지어 히틀러가 권자에 오른 이후에도, 제 2차 세게 대전이 발발한 이후에도 히틀러는 11월 8일의 저녁에 뮌헨에 있는 이 맥주홀에 돌아가서 자신의 오랜 동지들 - 알테 캠페르 라고 그들은 불렸다. - 에게 연설을 했다.
이들은 그렇게나 그로테스크한 재난으로 보였던 것으로 자신들의 지도자를 따랐던 것이다. 1935년 국가 재상인 히틀러는 그 짧은 총격전에서 쓰러진 열 여섯 명의 나치 대원들의 시신을 땅 속에서 다시 추스려서 펠트헤른할레의 납골당에 안치햇다. 그리고 펠트헤른할레는 국가적인 성전이 되었다. 히틀러는 추도식에서 봉헌하며 말했다.
"이제 이들은 독일에서 불멸의 존재가 되었다. 여기서 그들은 독일을 위해서 서 있으며 우리 민족을 지키고 있다. 여기서 그들은 우리의 운동에 진정한 목격자로서 누워 있다."
여기에 히틀러는 진실을 담은 말을 덧붙이지 않았고, 어떤 독일인들도 기억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바로 여기 누운 이들은 히틀러가 자기만 포장도로에서 일어나서 도망 갔을 때 죽어가도록 내버려둔 자들이었다는 사실 말이다.
1924년 여름 레흐 강 위로 높은 곳에 있는 란츠베르그의 오래된 요새에서 히틀러는 귀빈으로 대접 받았다. 히틀러에게는 아주 멋진 전망을 제공하는 자신 만의 1인실이 제공되었고, 요새 측은 히틀러에게 존경을 표시하고 선물을 주려는 방문객들이 떼를 지어 모여들자 그들을 정리했다.
그리고 신의성실한 루돌프 헤스를 소환했다. 헤스는 마침내 뮌헨으로 돌아와서 선고를 받고 히틀러의 말을 한 마디 한 마디 받아 써서 책 한 권의 각 장들을 완성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