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 유죄 판결을 받고 감옥에 수감되다
새 나치 국가를 어떻게 건설할지는 히틀러가 재판 기간 동안에 판사와 검사들에게 얼버무리며 말했을 때 이미 자신의 마음 속에 있었다. 한 가지로는, 히틀러는 이 다음에 독일 육군을 절대 적이 아니라 자신의 편으로 삼아야만 할 것이었다. 히틀러의 폐회 연설에서 군대와의 화해라는 생각에 대해서 호소했다.
육군에 관해서라면 비난하는 말은 단 한 마디도 없었다.
나는 그런 시간이 올 것이라는 것을 믿는다. 바로 우리 군중이, 오늘 스와스티카의 배너와 함께 거리에 서 있던 군중이 그들에게 발포했던 자들과 연합할 그 시간이 반드시 올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우리에게 발포했던 자들이 녹색의 제복을 입은 경찰이라는 것을 내가 깨달았을 때, 나는 그것이 라이흐스베어가 아니었다는 것에, 그들이 자신의 기록에 얼룩을 남기지 않았다는 것에 행복했다. 라이흐스베어는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더럽혀지지 않고 순결한 상태로 지금도 서 있다. 어느 날인가 라이흐스베어가, 그 육군의 장교들과 병사들이 우리 편에 서 있을 시간이 올 것이다.
히틀러의 예견은 정확한 것이었지만, 여기서 재판을 주재하는 주심 판사가 끼어들었다.
"히틀러 씨, 당신은 녹색 제복을 입은 경찰은 더럽혀졌다고 말했습니다만, 그 발언은 허락할 수 없습니다."
피고는 재판장의 이 훈계에 가장 가벼운 주의조차 기울이지 않았다. 장황한 연설의 마무리 부분에서 법정 안의 방청객들을 사로잡았다. 이들은 히틀러가 다음과 같은 마지막 말을 할 때 마음을 다 빼앗겨 넋이 나가 있던 상태였다.
우리가 구성한 육군은 하루하루 날이 지나면서 성장하고 있는 중이다. 나는 어느 날인가 이 미숙한 중대들이 대대들로 성장하는 그 시간이 올 것이라고 하는 자랑스러운 희망에 점점 양분을 공급하고 있다. 희망을 더 키워가고 있다는 의미이다. 이후에 대대들은 연대들이, 연대들은 사단들이 될 것이다. 당 소속임을 표시했던 모자들은 진흙 속에서 끄집어 낼 것이며, 오래된 깃발은 다시금 휘날릴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직면할 준비가 되어 있는 마지막이자 위대하고 신성한 판단을 내릴 때 그 답은 화해가 될 것이다.
히틀러는 자신의 불타는 눈으로 판사들을 빤히 쳐다보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신사 여러분, 우리에게 판결을 내리는 것은 당신들이 아니다. 그 판결은 영원한 역사의 법정에서 낭독될 것이다. 당신들이 어떤 판결을 내릴지 나는 알고 있다. 하지만 역사의 법정은 우리에게 질문하지 않을 것이다.
"그대들은 중대 반역죄를 범했는가, 아니면 그렇지 않은가?"
그 법정은 우리를 판결할 것이다. 구 독일 육군의 병참총감 (루덴도르프), 그리고 그 휘하의 장교들과 병사들, 자신의 민족과 조국을 위한 대의만을 원했던 독일인들, 바로 그것을 위해 싸우고 죽기를 원했던 자들을 판결할 것이다. 당신들은 우리가 유죄라고 천 번도 넘게 선고할 수 있다, 그러나 영원한 역사의 법적의 여신은 미소 짓고는 갈갈이 찢어 버릴 것이다. 무엇을? 바로 저 검사의 공소장과 이 법정의 판결문을 말이다. 바로 여신은 우리에게 무죄를 판결하기 때문이다.
배심원단의 평결이 아니었다면, 실제 법조인인 판사의 선고는, 콘라트 하이든이 쓴 대로 역사의 판단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루덴도르프에게는 무죄가 선고되었다. 히틀러와 기소된 다른이들은 유죄로 선고 되었다. 하지만 법적인 면에서 보자면 - 독일 형법 제 81조를 보면 - 이렇게 선언되어 있었다.
"누구든지 힘에 의해서 독일 국가나 혹은 연방에 속한 독일 주의 헌법을 변경하려 시도하는 자는 종신 동안 수감되도록 선고될 것이다."
히틀러는 란츠베르그의 오래된 요새에서 오 년간 수감되도록 선고되었다. 심지어 그렇게 했을 때, 그 선고가 혹독하다고 동료 판사들이 항의를 했는데 주임 판사가 피고인은 육 개월간 복역한 이후 가석방의 기회를 가질 수 있다고 설득해서 해당 선고를 유효한 것으로 확인할 수가 있었다.
히틀러가 외국인이고 따라서 추방해야 한다는 경찰 측의 노력은 - 히틀러는 여전히 오스트리아 국적을 보유하고 있었다. - 아무런 결과를 가지고 오지 못했다. 최종 선고는 1924년 4월 1일에 내려졌다. 아홉 달도 채 되지 않아서, 12월 20일에 히틀러는 감옥에서 석방되었다.
자유의 몸이 되자 히틀러는 민주주의 국가를 전복하려는 자신의 투쟁을 재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