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를 통해서 분석하고 잘못을 다시 하지 않도록 계획하다
히틀러에게 흠씬 비난 받던 세 명의 남자들은 거의 이것을 부인할 수가 없었다.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카르와 자이서는 히틀러가 내뱉은 가시 돋힌 말들에 상대가 되지 못했다. 단지 폰 로소브 장군만이 이것에 감연히 맞서 자기 자신을 변호했다.
"나는 어딘가에 고용되지 못한 코미타지 (발칸 반도의 게릴라 비정규 병사 - 역주) 가 아니오."
장군은 법정에 상기시켰다.
"나는 국가에서 고위직에 있는 자입니다."
그리고 나서 장군은 자신의 이전 하사에 대해서 구 육군 장교로서 가진 모든 경멸을 퍼부어댔다. 이 건방진 실업자 놈, 이 자의 압도적으로 아주 강한 야망 탓에 자기 자신을 육군과 국가를 가지고 독재를 하려고 노력하도록 나서게 되었다고 했다.
이 무책임한 악선전이 얼마나 멀리까지 가게 되었는지, 장군은 소리 높여 외쳤다. 바로 이러한 것이 그리 멀지 않은 예전에, 이 히틀러라는 작자가 애국적인 운동에서 단지 "북 치는 고수"가 되기로 열망해오던 바로 그 때부터 시작되었던 것이다.
단순히 북 치는 고수? 히틀러는 이것에 어떻게 대답할 지를 알았다.
이 작은 남자들의 생각이 얼마나 가련하고 보잘 것 없는지! 믿어 달라, 나는 단순히 잘먹고 잘살기 위한 목적으로 전쟁부를 습득하고자 고려한 것이 아니다. 나는 위대한 남자로서 정치 각료가 됨으로써 역사에서 내려가 다시 원래로 돌아가는 그런 자가 가치 있다고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다. 어떤 자는 다른 장관들의 옆에서 매장되어지는 위험 속에 있을 수 있다.
최고가 되려는 나의 목표는 장관이 되는 것보다 천 배는 더 높은 것이다. 나는 마르크스주의의 파괴자가 되기를 원한다. 나는 이 과업을 받아들일 것이며,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장관이라는 직위는 내가 걱정하는 딱 그 만큼의 부조리에 불과할 것이다.
히틀러는 바그너의 사례를 근거로 들며 자신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들먹였다.
리하르트 바그너의 무덤에 처음으로 섰을 때 내 가슴은 한 남자의 속에 있는 자부심으로 흘러 넘쳤다. 바로 "여기 추밀원 고문, 음악 감독관인 리하르트 폰 바그너 남작 각하"와 같은 비석의 명문을 이 남자는 금지했었던 것이다. 나는 이 남자와 독일 역사의 매우 많은 자들이 자신들의 작위나 명성 등이 없이 자신의 이름을 역사 속으로 기꺼이 바쳤다는 것에 대단한 자부심을 느낀다. 그 나날들에 내가 북 치는 고수가 되기를 원했던 것은 단순한 겸손함이 아이었다. 그것은 바로 최고의 염원이었다 - 그 외의 나머지는 아무 것도 없었다.
히틀러는 북 치는 고수에서 독재자가 되기를 원했다는 명목으로 비난당했고 고발되었다. 여기에 대해 부인하지 않았다. 숙명이 그것을 명한 것이었다.
독재자가 될 운명으로 태어난 남자는 강요되어지지 않는다. 그 자신이 자신의 의지로 그것을 원할 것이다. 앞으로 끌려가지 않으며, 자기 자신을 이끈다. 이것에 관해서는 자만하거나 건방진 것이 없다. 생각해 보라. 한 노동자가 자지 자신을 중노동을 하도록 이끌어 가는 것이 건방진 것인가? 한 사색가가 세상이 가지지 못한 발명을 할 때까지 여러 밤들을 심사숙고하는 것이, 그리하여 높은 이마를 가진 남자가 주제 넘은 짓을 하는 자인가? 자신의 민족을 다스리도록 요청되어진 것을 느낀 남자는 이렇게 말할 권리가 없다.
"나를 원하거나 소환한다면, 나는 협력할 것이다."
아니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그 남자의 의무인 것이다.
비록 히틀러가 자신의 나라에 대항한 중대 반역죄로 오랜 기간 동안 감옥에 수감되도록 하는 선고를 피고석에서 맞이할 지도 모르지만, 자기 자신에 대한 자신감은 "민족을 다스리는 것"이라는 부름 속에서 줄어 들지를 않았다.
감옥 안에서 재판을 기다리는 동안 히틀러는 이미 폭동의 실패에 관한 원인을 분석했고, 자신이 미래에는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을 것을 맹세했다. 자신의 목표를 성취하고서 십 삼년이 흐른 후에 그 생각들을 회상하고는 오래된 추종자들에게 말했다. 폭동의 기념일을 축하하기 위해서 부에르거브로이켈러에서 모임을 가졌을 때였다.
"나는 그게 내 인생에서 가장 경솔한 결정이었다고 조용하게 말할 수 있다. 오늘 다시금 돌아가서 생각해 보면, 아찔하다. 만약 오늘날 1923년에 행진하고 있는 우리 부대 중 하나를 보게 된다면 이렇게 말할 지도 모른다.
'대체 저들은 어떤 구빈원에서 탈출해 나온 무리들인 거지?'
하지만 운명은 우리의 편이었던 것을 증명했다. 행동이 성공할 것을 허락하지 않았던 것이다. 만약에 성공했더라면, 종국에는 그 운동의 내적인 미성숙의 결과로 인해서 필연적으로 붕괴되었을 것이었다.
당시에는 스스로도 성숙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조직적이고 지적인 기반이 부족했었다. 우리는 그래서 기존 국가를 전복시키는 데 충분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새 국가는 이전에 누군가의 손에 건설되고 준비되어져야만 했었음에 틀림없었다. 1933년에는 더 이상 폭력 행위를 통해서 국가를 전복시키는 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는 동안에 새로운 국가는 건설되고 해야 하도록 남아 있는 모든 것은 오래된 국가의 마지막 잔재를 파괴하는 것이었다. 그러는 데는 단지 몇 시간만이 걸릴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