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작고 오래된 집에 산다.
50이 넘은 나이쯤 되면 넓고 잘 꾸며진 아파트에 살아야 하겠지만 나의 집은 점점 더 낡고 작아지고 있다. 이젠 그 낡음이 너무 익숙하고 편해서 새로운 것에 대한 부러움이나 갈망이 따위는 사라졌다. 아주 솔직히 말하자면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없다 보니 그 오만가지 좋은 말들 중에 부러우면 지는 거다 고딴말만 가슴에 새기며 유일하게 실천하고 있다. 집만 오래된 것이 아니라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이 낡았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닌데 살다 보니 이렇게 세월이 지났고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되었다. 그 작고 낡은 집 안에서도 나의 방은 23년 전 혼수로 장만한 가구들과 돌아가신 시어머님이 남기신 사소한 물건들로 꽉 차여 있다. 미닫이문 장롱부터 지금도 튼튼한 침대. 그리고 서랍 손잡이만 교체된 화장대와 아주 큰 거울까지.처음 그 거울앞에 선 청춘은 늙었고 거울도 늙었다
어디 안방뿐 이겠나. 거실이며 주방이며 어디든 툭툭 나오는 오래된 기억들을 차마 버릴 수 없어 여기저기 넣어두고 사니 집은 더욱 작아지고 있다. 나중에 근사한 새집에서 내취향껏 꾸며서 이낡음도 느낌있는 빈티지로 변신 시키리라 상상을 하며 혼자 좋아라 바보 같이 웃는다. 하지만 우주에 떠다니는 행성만큼 저 멀리 높게 느껴지는 서울 아파트값에 상상이 망상이라걸 일초 만에 깨닫는다.
가끔씩 이 오래된 낡음이 미치도록 지겨워서 화가 날 때가 있다. 햇살 좋은 날이 특히 그렇다. 그 이쁜 햇살들은 구석구석 숨겨둔 누추함을 적나라하게 비추어 주는 미운 짓을 한다. 그럴 때마다 욕심 일도 없는 나의 오래된 남편에게 잔뜩 짜증 난 문자를 보내면서 화를 달랜다. 그런 카톡을 보내도 아무런 반응도 안 하겠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하겠지만, 또 발작할 시간이 되었나 하겠지만...그 눈부신 햇살 때문에 나는 미운 짓을 한다.
나는 작고 오래된 집에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