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겐 아주 평범한 일일지도 모르지만 네가 교복을 입고 교문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아빠는 매일 아침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너는 키도 쑥쑥 자랐고 학교생활에도 적응을 잘했다. 언제나 베풀기만 잘하는 너를 우습게 여기고 이용하려는 친구들이 있어 네가 속상해한 적은 있었지만 그래도 넌 그들을 원망하지 않았다. 글짓기 대회에서도 상을 받기도 하고 선생님들께는 사랑을 듬뿍 받았다. 특히나 너는 체육수업을 기다리고 그 시간을 좋아했다.
너는 다시 골프채를 집어 들었다
새로 이사 간 집부근에는 골프연습장이 있었다. 너는 다시 골프채를 챙겨 들었다. 체력이 많이 떨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다시 골프를 하다 보면 다시 건강을 찾고 마음에 평안을 얻을 것이란 기대가 컸다.
네가 골프를 시작한 것은 아마도 일곱 살 즈음이었을게다. 우연히 시작한 골프였지만 너는 골프를 참으로 사랑했다. 그리고 아빠가 보기에는 너는 골프에 타고났고 그 무엇보다도 골프에 열정이 있었다. 골프를 시작한 후로 너는 한 번도 골프에 게으름을 피운 적이 없었다. 엄마의 고향인 모스크바에 살때에는 너는 국립 모스크바 골프학교를 다녔다. 골프가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편입되면서 러시아는 국가스포츠정책으로 예쁜 나인홀을 갖춘 골프학교를 열었다. 그 학교에서 너는 가장 열심히 연습을 많이 하는 학생이었다. 한 달에 한 번 그 학교에서 열리는 골프시합에서 매번 너는 트로피를 가슴에 안았다.
이제 중학생이 된 너는 매일 방과후에 연습장으로 가서 연습을 하고 선수 등록과 함께 학교수업은 오전에만 참석하기로 했다. 골프 때문이었다.
밀물처럼 밀려드는 시간들
너를 완전히 떠나갔을 거라고 여겼던 병은 봄날의 아지랑이처럼 우리 주위를 맴돌았다.
잠을 이루지 못하고 우울한 시간이 찾아와 한두 주간이 힘든 때도 있었지만 우리는 마음을 모아 함께 잘 견뎌내었다. 그리고 마음과 생각이 요동쳐 올 때에도 감정을 다스리고 생각을 붙잡았다. 그 무렵 우리는 숲길을 자주 걸었다.
연예인 S도 그 병을 앓고 있다고
너무나도 예쁘고 인기절정의 그 여성도 양극성 장애를 앓고 있다고 얼마전 커밍아웃을 했다. 계절이 돌고 돌듯이 그녀는 울증이 오면 쉬었다가 조증이 돌아오면 영화 촬영을 한다고 했다.
얼마 전 결혼을 해서 행복한 가정을 꾸렸다는 소식을 듣고 아빠도 진심으로 기뻤고 마음으로 축하를 했다.
그녀뿐이 아니다. 우리가 알만한 적지 않은 유명인들도 그 병과 함께 싸우며 인생을 살아갔다고 한다. 그 병이 너무나도 잔인하게 인류에게 다가오고 있지만 그 병을 적으로 삼기보다는 삶의 동반자로 여기고 누구나 그러하듯이 넘어졌다 일어났다 하는 수레바퀴 속에서 그들도 삶을 살아간 게 분명하다. 햇빛 찬란한 날도 아름답지만 흐리고 비 오는 날도 어찌 아름답지 않겠니.
그런데 어쩌다 너에게 그 병이 찾아왔을까
아빠는 네가 고통하는 모습을 보며 왜 하필이면 그 병이 예쁘고 착하기만 한 너에게 엄습했는지를 자주 생각한다.
우리 가족이 필리핀에 살 때에 너는 선교사 자녀학교의 유치원엘 다녔다. 네가 몇 날 전부터 기다리고 들떠했던 소풍날 너희들은 선생님들과 함께 동물원으로 나들이를 갔다. 그런데 그날 선생님과 동물원 관계자가 피투성이가 된 너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동물원 우리에서 탈출한 원숭이가 너의 머리에서 이마까지를 깊게 할퀴어 너에게 깊은 상처를 안겼다. 어쩔 줄 몰라하며 죄인처럼 아빠 앞에선 선생님을 아빠는 도리어 위로했다.
그런데 그 일이 그것으로 끝난 게 아니었다. 그날부터 너는 매일 열흘동안 같은 병원엘 가서 주사를 맞아야 했다. 매 번 그 주사 앞에서 두려워하며 떨던 너를 감싸는 일은 아빠에게는 지옥 같은 시간들이었다. 분노가 일었지만 화 풀이할 대상이 없었다.
네가 살아오면서 당한 고통이 어찌 그뿐이었겠니
아직은 길지 않았던 네가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면서 무엇이 너로 하여금 그 병에 접근했는지를 아빠는 자꾸 돌아보게 된다. 이제는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지만 말이다.
얼마 전 아빠는 이 병을 앓아온 사람들의 평균 수명이 이 병을 앓지 않은 사람들보다도 현저히 짧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이런저런 사고에 노출되기가 쉽기 때문이라했다. 그리고 생각하기도 싫지만 감정의 기복으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네 곁엔 아빠가 있다
너의 그 힘든 일상으로 인해 아빠의 삶도 많이 달라졌다. 아빠는 항상 너와 같은 방에서 잠을 자고 함께 깨어난다. 아빠의 삶의 반경도 많이 좁아졌다. 아빠의 시계는 항상 너에게 맞추어져 있다. 너의 그림자 속에 아빠의 실체가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장애가 있는 아이를 둔 부모를 이해하게 되었고 그들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성스러운 삶을 살고 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