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다윗 Nov 21. 2023

네 이름 아도니아

네 위로 오빠가 셋, 언니가 셋 


      그러니까 너는 우리 집의 일곱째 아이자 네 번째 딸로 태어났다. 우리는 보통 가족들처럼 한 곳에서 머물지 못하고 여러 나라를 돌며 살았다. 네가 태어나기 전 우리 가족은 흰 눈이 아름답게 내려 쌓이는 닥터 지바고의 도시 모스크바에서 살았고, 동물들의 낙원이자 하쿠나마타타의 노래와 Circle of Life의 멜로디로 가슴 가득 감동을 주었던 Lion King의 배경이기도 했던 케냐의 나이로비에서도 살았다. 그곳에서 너의 세 번째 오빠인 다윗이 태어났다.


그러다 우리 가족은 남한 크기의 바이칼호수가 있고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달리는 열차가 달리기를 멈추고 숨을 잠시 고르는 이르쿠츠크에서 긴 겨울과 짧은 여름을 살았다. 오후 세 시만 되면 어둠이 내리 깔리는 모진 겨울엔 눈이 오지 않는 날이 거의 없었고 여름이면 밤 열 시가 넘어서도 거리에서 신문을 읽을 수 있는 백야가 있었다.


아빠의 유학으로 적도 바로 아래의 도시국가인 싱가포르에서도 살았다. 우거진 밀림이 집에서 멀지 않았던 터라 우린 그 숲이 빽빽한 오솔길을 천천히 기어가는 이구아나와 함께 산책도 하고 개구쟁이처럼 나무 위를 날아다니던 원숭이들을 친구 삼아 자주 산책을 했다. 우리는 그곳에서 두리안을 처음 맛보았다.


지금도 잊지 못할 한낮에 쏟아지는 스콜은 장엄했다. 그 아름다운 나라에서 네 둘째 언니 마리아가 태어났다. 그리고 또 우리는 이곳저곳 기회가 생길 때마다 사양치 않고 이 나라 저 나라를 다니며 나그네의 삶을 잘도 살았다.


네가 태어난 곳, 마닐라


      아빠의 어린 시절처럼 거리마다 사람들로 가득한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에서 네가 태어났다. 늘 그랬지만 우리 가족에게 또 하나의 생명이 보태진 너의 탄생에 우리 모두는 기쁘고 행복했다. 네 언니들도 그랬지만 너는 참으로 예뻤다.


유감스럽고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네가 태어난 그 주간에 아빠는 약속된 강의를 해야 하는 일로 호주의 골드코스트라는 아름다운 바다가 있는 도시로 너의 언니오빠 넷을 데리고 출타를 했었다. 그곳에 머무는 내내 아빠는 네 이름을 뭘로 지을까 고심에 고민을 더했다.


'여호와는 나의 주님이시다.'는 의미가 좋아 네 이름을 '아도니아'라고 하자고 멀리서 네 엄마에게 소식을 전했다. 언제라도 반대가 없는 네 엄마는 아빠가 없는 동안에 네 작은 귀에 대고 네 이름을 쉴 새 없이 불렀을 것이다.


너는 예쁘고 착한 딸이었다


      너는 속이 깊고 남을 잘 배려하고 야무지고 공부도 잘했고 선생님의 사랑도 듬뿍 받는 아이였다. 우리 집 아이들이 다 그랬지만 특별히 속을 썩이거나 고집을 부리는 일이 없었다. 우리 가족은 아이가 많다고 힘들거나 걱정되는 일이 없었다. 그저 우리는 웃고 즐겁고 행복한 가족이었다.


 아빠가 일이 있어서 다른 도시로 출타를 해야 할 때면 우리는 항상 같이 다녔다. 그리고 에버랜드를 너무나도 사랑했던 너희들로 인해 아빠는 세상 아빠들 중에서 에버랜드를 가장 많이 출입했을 것이다. 우리 가족 모두는 에버랜드의 연간회원을 4년 내리 가입했을 정도였다. 아빠는 너희들의 학교가 에버랜드라고 생각했다.


양극성 장애, 조울증


      대학병원에서 너의 병명을 확인하고 아빠는 놀라지 않았다. 어느 날 갑자기 라진 너의 모습을 보고서 아빠는 책 두 권을 사서 읽었다. 이미 아빠는 네가 그  몹쓸 병에 걸렸다는 것을 알았다.


너무나도 행복했던 우리 가족 모두는 너의 그 이해하기도, 받아들이기도 힘든 행동에 당황하고 어찌할 바를 몰라 우왕좌왕했다. 무엇보다도 너무나도 슬프고 고통스러웠다.


 너는 평소에 얌전하고 속이 깊은 아이였지만 달라진 너에게서 지난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소리치고 날뛰고 걷잡을 수가 없는 너의 돌발적인 행동에 아빠는 절망했다.


어느 비 오던 날 아침


     밤새 잠을 자지 않는 너로 인해 아빠도 잠을 이루지 못하던 그날 새벽 잠시 잠에 들었다 깨어보니 네가 없었다. 너무나도 놀라서 이리저리 다니며 찾아보니 너는 언니 방에서 비 오는 창문을 열고 아래층으로 언니의 물건들을 다 던지고 있었다.


아빠는 놀라기보다 네가 무서웠다.

그날 네 언니는 내리는 비보다 은 눈물을 흘리며 비를 맞고 앉아 울고 있었다.

      

이전 01화 "완치가 될 수 없습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