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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다윗 Nov 14. 2023

"완치가 될 수 없습니다."

    친절했던 젊은 의사는 말했다. "이 병은 완치는 될 수가 없습니다. 평생을 약을 먹으며 지켜보며 관리를 해야 합니다."  죄인처럼 앉아있는 우리 두 부녀(父녀) 앞에 전혀 친절하지 않게 그는 툭 던지듯 말했다.


그 무렵 나는 양극성 장애를 가진 가족들이 올리는 유튜브의 영상을 자주 찾아보았다. 지푸라기라도 잡아볼 요량으로 시청을 시작했지만 그들은 영상 서두에 자신들을 18년째, 23년째 조울증을 앓으며 관리 중인 조울러라고 소개를 했다.


빈 들에 마른 풀같이


    나는 네가 열두 살이 되던 해에 네게서 그 병의 증상을 보았다. 처음에는 갑자기 변한 너를 보며 아빠는 화를 내고 너를 혼내주었다. 오천 원을 달래서 가지고 간 다이소 앞에서 아무리 기다려도 네가 나오지 않길래 찾으려 들어간 아빠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계산대에 산더미처럼 물건들을 쌓아놓고 또 다른 제품을 고르고 있는 너를 발견했다.


너를 태우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빠는 눈물이 흘러서 그날 운전이 힘들었다. 걷잡을 수 없는 너를 보며 아빠는 그 병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알고자 수많은 밤들을 새워가며 관련 서적들을 읽었다. 너는 점점 거칠어졌고 아빠의 영혼은 빈들의 마른풀처럼 시들어갔다. 벌판의 풀들은 이듬해 봄엔 다시 얼었던 땅을 뚫고 푸르게 솟아오르겠지만 우리에겐 이 추운 겨울이 언제나 끝이 날지 막막하고 두려웠다.


이제 행복은 저 멀리 날아간 것일까


     밤이 두려웠다. 밤이면 너는 자지 못하고 더 활동적이 되었다. 가족들은 긴 밤을 지새워야만 했다. 잠시라도 눈을 붙일라치면 너는 크게 TV를 켜서 노래를 따라 불렀고 깜박 잠에 빠지다 놀라 깨어보면 너는 이미 먹지도 못할 요리를 식탁에 산더미처럼 저질러 놓았다.


아이가 많은 아빠는 네 언니오빠 동생에게 미안하고 또 그들과 눈이 마주칠 때면 눈물이 앞을 가렸다. 단지 네가 아파서 그런 것뿐이라고, 곧 예전처럼 갑자기 괜찮아질 거라고 우리는 애써 서로를 격려했지만 그럴수록 절망의 골짜기는 깊어만 갔다.


너의 슬픈 졸업식


     네가 다니던 초등학교의 졸업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네게는 학교를 빠지는 날들이 쌓여만 갔다. 바닷가의 작은 학교에선 밀려드는 파도처럼 너에 관한 소문이 무성했고 교장선생님과 담임선생님의 걱정 어린 격려에 아빠의 슬픔은 도리어 깊어만 갔다.


세상엔 이런 일도 있구나


   예쁘고 착한 너의 소중한 최초의 졸업식은 없었다. 졸업식이 열리던 날, 너는 전날 밤을 하얕게 지새우고 창으로 보이는 바다 너머에 떠오르는 태양을 보면서도 그날이 너의 졸업식인 것에 관심이 없었다. 너의 그 모습을 보며 아빠는 화장실에서 꺼이꺼이 울었다.


며칠이 지나 받은 너의 '겨우 졸업장'과 졸업 앨범을 보며 아빠는 이토록 기가 막힌 현실이 너무나도 잔인해 또다시 흐르는 눈물을 막을 수가 없었다. 졸업앨범을 넘기다 겨우 찾은 너의 졸업사진에서 나는 너의 힘겨웠던 어린 학창 시절을 보았다. 네가 보냈던 그 시간들 속에서 너는 얼마나 힘이 들었니.


그리고 다니지도 못할 '겨우 중학생'이 되었다


    너는 점점 그 병을 향해 깊숙이 달려가고 있었다. 너의 담당 의사 선생님은 평생 동안 네가 그 병에서 자유롭지 못할 거라고 말했지만 나는 그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아니 믿어서는 안 되었다. 너는 분명 그 병을 이기고 예전의 웃음소리를 찾게 될 것이고 너무 늦지 않게 그 병에서 놓임 받아 빛나는 십 대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애써 흩어진 믿음을 긁어모았다.


아빠는 그 믿을 수 없는 사실을 꼭 믿어야만 했다. 믿고 또 믿고 또 믿어야만 했다. 그래야 아빠도 남은 삶을 살아갈 수가 있고 너도 살아갈 수가 있을 거니까 말이야.


네가 골프를 얼마나 잘했는데, 네가 골프대회에서 받은 상장과 메달과 트로피는 아직도 서랍 속에서 반짝이고 있는데 너는 날마다 지쳐가고 시들어 가고 있다니......


이게 말이 되는 거니,

아빠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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