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다윗 Dec 19. 2023

짐을 지고서라도 인생을 살아야지

     

        우리가 마다가스카르로 떠날 무렵 너는 막 우울한 시간들이 끝나갈 즈음이었다. 겨울이 깊어가는 한국을 떠난 것은 따뜻한 곳으로 가서 네가 좋아하는 골프를 연습하고자였다. 병이 나을 때까지 기다리느니 무언가를 열심히 하면서 병을 이겨내고자 쉽지 않은 여행을 우린 떠났다.


아프리카로 떠난 여행


삼 개월간의 골프연습을 위한 여행은 먼 길이었다. 같이 골프를 하는 네 둘째 언니 마리아랑 우리 셋이서 인천공항을 떠난 길은 두바이에서 17시간을 체류하고 모리셔스에서 아홉 시간 반을 기다린 끝에 2박 3일 만에 인도양에 솟아있는 섬나라 마다가스카르에 도착했다.


이제 우리는 이 낯 선 곳에서 삼 개월을 보내야 한다. 골프를 하기 위해 병과 싸워야 하는지, 병을 이겨내기 위해 골프를 하는지는 모르지만 둘 다 틀린 말은 아니다.


여름이 한창인 이곳


     겨울을 피해 온 마다가스카르는 한  여름이었다. 생전 처음 보는 키가 크고 웅장한 자카란다 나무는 진한 보랏빛 꽃을 잔뜩 피우고 있었다. 낮에는 따끈한 햇빛이 내리비치지만 습기가 없어 그늘에만 들어가면 시원했고 밤에는 서늘하기까지 해서 잠잘 때에는 가벼운 이불이 필요했다.


아기 머리만 한 잘 익은 망고는 1킬로에 우리 돈으로 이 천 원이 채 되지 않았고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달콤한 과즙을 가득 품은 환상적인 맛을 지닌 리치(Lychee)는 500원에 1킬로를 살 수 있었다. 망고만 많이 먹고 가도 비행기삯을 건질 수 있다고 사람들은 말했다.


우리가 빌려서 사는 집엔 우물물을 길어서 밥을 짓고 그 우물물을 끓여서 식수로 사용해야 했다. 물이 너무 차가워서 샤워는 할 수가 없었다. 대신 골프장의 간이 샤워장에서 매일 샤워를 했다.


골프연습에 이만한 곳이 있을까


     하지만 이곳에서 살아가는 것이 마냥 쉬운 일은 아니다. 매일 밥을 해서 먹고 도시락을 싸고 걸어서 오르막 길을 삼십 분 가량을 가서 골프장에 도착하면 입은 옷은 땀으로 젖어 있었다. 그보다 힘든 건 집을 나서자마자 온몸으로 느끼는 현지인들이 주는 호기심 가득한 눈길은 너무 부담이 되었다. 그 마을에서 사는 최초의 외국인이 우리였을 게다.


하지만 가족과 집을 떠난 우리는 목적이 있다. 골프가 인생의 목적은 아니지만 인생을 의미 있게 살 목적으로 우리는 골프를 수단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빠는 너를 간혹 괴롭히는 병을 지고 인생길을 가는 네게 골프는 너의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거란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골프를 하는 비용이 저렴해서 좋았다. 그러다 보니 매일 골프장에서 라운딩을 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클럽하우스에서 점심을 해결하기에는 부담이 되어서 큰 나무 아래에서 도시락을 먹었다.


두 달의 시간이 흘렀지만 너는 아무 일없이 건강하게 골프연습에 매진했다. 그간 네 골프 실력도 좋아졌지만 무엇보다도 네 건강이 좋아진 것이 기뻤다.


병에만 생각을 매여놓지 않고 이렇게 네가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이야말로 너를 힘들게 하는 질병을 이기는 일이고 그 핸디캡을 극복하는 것이 아니겠니.


골프에 핸디캡이 있다는 것이 마치 인생과도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구나. 골프에서 정해놓은 타수(par)를 오버하게 되면 그것을 핸디캡이라 하는데, 골프를 열심히 하다 보면 그 핸디캡을 줄이게 되는 것이 골프의 매력이지 않겠니.


네가 골프를 하며 심신을 단련시키다 보면 네가 가진 핸디캡을 서서히 줄여가는 것 또한 같은 이치가 아니겠니.


그러고 보니 골프는 네게 참 좋은 친구라는 생각이 들고 이렇게 열심히 골프를 할 수 있는 기회와 환경이 너무나도 고맙게 여겨지는구나.

그러고 보니 골프를 하며 네 키도 훌쩍 자랐구나.


그래 우리 여기서 행복한 골프를 하자구나.

인생의 짐은 마치 수레에 담긴 짐이 달리는데 무게만 주는 것이 아니라 균형을 잘 잡아 짐을 실으면 도리어 달리는 데에 도움이 되듯이 짐을 지고서라도 그 짐을 잘 활용하면 네가 인생을 살아가는 일에 또 다른 에너지가 되지 않겠니.


인류에 커다란 기여와 영감을 더했던 수많은 위인들이 그러했듯이 너도 꼭 그렇게 될 것을 아빠는 믿는다.

아빠도 너와 꼭 함께 할 거고.

이전 05화 이 병을 지고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