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는 것도, 판단하는 것도 그들의 몫이라는 걸 그날 깨달았다.
어떤 일을 하냐는 질문 앞에서 나는 늘 얼어붙는다. 어김없이. 중학교 1학년 때, 같은 학교 3학년 언니들이 무서워 동네를 빙 둘러 집으로 돌아가던 때처럼, 나는 그 질문이 등장할 만한 골목을 요리조리 피해다녔다. 하지만 재수없는 날은 그 언니들이 우리집 대문 앞에 모여앉아 있었다. 피할 방법이 없네.
무슨 일을 하세요?
-저는, 영화 관련된 일을 해요.
오! 관련이면 어떤?
-단편영화를 만들고, 스탭으로도 종종 참여하고요.
아 단편… 근데 그게 돈이 안 되잖아.
-네, 맞아요. 돈이 안 되죠.
나도 예전에 단편 같은 거 찍어본 적 있는데, 나도 감독이었어!
-아아 그러셨구나…!
이런 식의 대화를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은 이유는 상대방의 반응 때문이 아니다. 그 이후에 나누게 될 모든 대화에서 내내 얼어붙어 있을 나 때문이다. 나의 무언가가 언 채로 관계는 설정된다. 얼어버린 것이 상대에 대한 존중이면 좋으련만, 대체론 주눅 든 내 마음이다.
몇 년 전, 마지막 회차의 촬영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가편집을 하던 날 밤. 자꾸만 눈물이 고여 모니터가 어른거렸다. 미안해서. 당당하게 드러내지도 못할 거면서 세상에 소환한 나의 이야기에게, 나의 영화에게 너무 미안해서.
나는 다짐했다. 오늘 이후로 누가 나에게 무슨 일을 하냐고 묻는다면 절대로 얼어붙지 않으리!
'네, 저는 단편영화를 만들고, 친구들 영화에 스탭으로 참여하기도 합니다. 물론 좋은 돈벌이 수단은 아니에요. 그렇다고 직업이 아닌 것도 아니죠!'까지는 아니더라도… 당당하게 대답해 보자!
구조한 개 '로스코'의 중성화 수술을 위해, 수의사계의 허준으로 불리는 (병원은 몹시 작지만 수술비에 거품이 없고, 보호소 아이들의 안위를 걱정해 수천 마리 개들의 중성화 수술을 홀로 시켜 낸 영웅 같은 분!) 선생님의 동물병원에 찾아간 날이었다. 이전에도 몇 번 진료차 방문한 적은 있지만, 늘 붐비는 병원에서 선생님과 마주하는 순간은 접수할 때와 결제할 때뿐이었다. (여긴 간호사도 없다.) 발 디딜 틈이 없던 병원이 텅 비어버린 날, 하필 제일 한가한 날 로스코가 수술을 하게 된 거다. 언니는 잠시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자리를 떴고, 회복 중인 로스코 옆을 지키며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데, 선생님이 다가왔다. (아니겠지…)
대형견 구조가 보통 힘든 게 아닌데, 두 분(언니와 나)은 무슨 일을 하세요?
-(네? 이렇게 갑자기요?) 음… 언니는 기자 일을 하고, 저는 단.편.영.화.를 만들고 있어요.
보통 내 대답이 이러면 100명 중 100명은 언니의 직업 앞에 멈춰선다. '오, 기자! 어느 매체?' 등등
그런데,
단편영화…라…! 무슨 이야기가 하고 싶어서요?
-……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니까 영화를 만드는 거잖아요.
나는 얼어붙었다. 늘 기다린 질문이지만 아무도 해주지 않았던 질문이었다. 꿈에 그리던 질문을 현실에서 받게 될 줄 몰랐던 나는 마취가 덜 깬 로스코보다 혼미한 상태가 되고 말았다.
"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요. 제가 보는 세상이 동물들을 만나고 좀 명확해졌거든요."라고 말하고 있는데 언니가 돌아왔다. (후 살았다! 도와줘…)
허준 선생님의 질문을 마지막으로, 아직까지 무슨 이야기가 하고 싶어 그 일을 하느냐고 물어 온 사람은 없다. 그런데 나는 그날 이후로 직업을 물어오는 사람들 앞에서 얼지 않는다. 묻는 것도, 판단하는 것도 그들의 몫이라는 걸, 그들의 판단으로 나와 내 영화의 본질이 바뀌는 게 아니라는 걸 그날 깨달았으니까.
인간 동물은 허약한 마음을 치료받고 다음 영화를 구상하기 시작한다. 그날 더 명확해진 어떤 세상에 대해.
무슨 일을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