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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영 Aug 13. 2022

왜 또 이순신인가?

영화 '한산: 용의 출현' 리뷰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전쟁영화’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누군가는 전쟁으로 목숨을, 누군가는 가족을 잃는다. 또 다른 누군가는 삶의 터전을 빼앗긴다. 더 말할 것도 없이 전쟁은 삶을 송두리째 흔드는 일생일대의 사건이다. 그렇다면 전쟁이 영화가 될 때 창작자는 어떤 태도를 장착해야 할까. 최소한 ‘이 이야기가 영화가 되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깊이 고민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전쟁영화들은 전쟁을 하나의 블록버스터 소재로 소비해온 것이 사실이다. 최근 들어 전쟁의 참상을 드러내 비판하고 생명 존중에 대한 메시지를 던지는 영화도 속속 등장하고 있지만 여전히 소수에 불과하다. 특히 역사 속 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의 대다수는 윤리적인 측면을 간과한 채 상업적으로 성과를 높이는 데에만 골몰하는 경우가 많다. 관람객의 애국심에 기대 별다른 고민 없이 총칼을 휘두르는 것이다.


 이순신 장군이 또다시 스크린에 등장했다. ‘명량’으로 1700만 관객을 동원하며 한국 박스오피스의 새 역사를 쓴 김한민 감독이 이순신 시리즈의 두 번째 이야기로 ‘한산: 용의 출현’을 들고 왔다. 감독은 이순신 장군의 무엇을 더 말하고자 또다시 그를 스크린에 소환한 걸까.


 영화는 (명량해전 5년 전인) 1592년 발발한 한산도대첩을 배경으로 한다. 한산도대첩이 일어나기 전, 사천해전을 통해 왜군들은 이미 이순신(박해일 분)의 저력을 확인한 터였다. 일본의 협판안치 와키자카 야스하루(변요한 분)는 거북선을 복카이센(귀신 거북)이라 부르며 공포에 사로잡혀 있는 자신의 병사들 때문에 분노를 참지 못한다.


 이순신을 잡고자 혈안이 된 와키자카는 조선으로 첩자를 보내 거북선의 도면을 훔쳐보기도 하지만, 도무지 이순신의 계획을 알아차리기 어렵다. 거북선의 취약점을 숙지하고 방어력을 키웠음에도 이순신의 전술 앞에선 속수무책이다. 이순신 장군은 잘 알려진 대로 한산도대첩에서 학익진을 펼쳐 바다 위에 성을 쌓았고, 대승을 거두었다.


 ‘한산’이 여느 (일본과의) 전쟁영화와 차별화되는 점은 왜군에 대한 묘사 방식이다. 여태 우리의 역사극에 등장한 일본군의 모습을 떠올려보자. 그들의 잔혹함에 비해 외모와 행동은 늘 어딘가 우스꽝스럽지 않던가? 물론 우리 민족이 억압받던 역사를 상기하면 그들을 대상화하고 희화화하는 것은 얼마간 통쾌함을 가져다줄지도 모른다. 그러나 목숨을 걸고 전투에 임하는 우리 선조들의 모습과는 달리 어쩔 줄 몰라 하며 분통을 터뜨리는 일본군을 보고 있자면, 어째서 우리만 이렇게 진지한가 싶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아니 저토록 만만한 상대에게 그렇게 억압받았다고?) 그런데 ‘한산’은 일본군을 우스꽝스럽게만 그리지 않는다.


 변요한이 연기한 와키자카는 ‘명량’의 조진웅이 연기한 와키자카와도 느낌이 사뭇 다르다. 조진웅의 와키자카는 사사로이 분노한다면, 변요한의 와키자카는 평정을 유지하다가 크게 한 번씩 분노를 터뜨리는 쪽이다. 와키자카는 이미 이순신의 저력을 사천에서 확인한 바 여느 왜군들처럼 조선인을 얕보지 않고 이순신을 이기기 위해 사력을 다한다. 또한 이순신이 왜군을 견내량에서 한산도 앞바다로 유인하는 작전을 펼 때에도 쉽사리 움직이지 않고 이순신의 수를 읽어내며 방어하려 한다. 적군이 이 전쟁에 온 힘을 다해 임하니 이순신 장군의 업적도 더욱 빛나 보인다.


 이순신을 견제하는 와키자카의 모습을 담으려다 보니 영화가 상당 부분 일본군의 시점에서 전개되는 점도 흥미롭다. 거북선에 맞서기 위해 고민하고 분투하던 왜군들의 시점을 관객에게까지 확장시키니, 일본군과 마찬가지로 관객도 (물론 대한민국의 역사이기는 하나) 나대용(박지환 분)과 이순신 장군의 계획을 소상히 알 수 없다. 관객 역시 아무런 정보 없이 전투를 지켜보게 되는 것이다. 위기의 순간 거북선의 (예상치 못한) 등장에 가슴이 뜨거워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감독의 전작 ‘명량’에서는 배를 실제로 바다에 띄워 촬영을 진행한 데 반해 ‘한산’ 속 해전은 모두 바다가 아닌 세트장에서 촬영됐다. 감독은 날씨 변수가 많아 어려움을 겪었던 ‘명량’에 비해 훨씬 수월하게 촬영했다고 후일담을 전했는데, 세트장 촬영의 이점은 이외에도 많다. 바다에 직접 배를 띄우지 않은 것은 촬영 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오염으로부터 바다를 보호하는 데에도 크게 기여했을 것이다. 실제 바다에서 펼쳐진 ‘명량’의 전투와 세트장에서 치러진 ‘한산’의 전투를 비교한다면 굳이 바다에서 찍어야 할 필요성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영화 중반부, 말을 탄 병사들이 거대한 성벽에 둘러싸여 화살 세례를 받는 이순신의 악몽 장면 역시 모두 컴퓨터그래픽으로 성공적으로 구현해냈다. 최근 KBS 드라마 ‘태종 이방원’ 촬영 당시 퇴역 경주마 ‘까미’가 학대로 목숨을 잃어 공분을 산 사건이 있었다. 감독의 전작 ‘명량’에서도 병사들이 말의 고삐를 쥐고 흔들다 말을 넘어뜨리는 장면이 나온다.(촬영을 인지하지 못하는 동물에게는 사실상 학대나 다름없기에 매우 문제적이다.) ‘명량’으로부터 8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지금 관객들의 윤리적 기준은 매우 높아졌다. 그래픽 기술의 발전은 구현할 수 있는 세계를 확장시키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윤리적인 부분에서도 기여하는 바가 분명해 보인다. 이런 측면에서 ‘한산’의 기술적 시도는 여러 모로 좋은 지표가 될 것이다.


 전투 장면에서 한국말에도 자막을 넣은 것은 이 영화의 무척 영리한 지점 중 하나다. 대사가 잘 들리도록 하기 위해 전투 효과음을 줄이면 현장감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감독은 소리를 줄이지 않고 대신 대사마다 자막을 넣기로 결정했다. 감독의 기지 덕에 더 실감나는 전투 장면이 완성됐다.


 자, 지금까지 ‘한산’의 미덕에 대해 이야기했다. ‘한산’은 감독의 역량과 기술적 성취가 돋보이는 웰메이드 전쟁영화다. 박해일과 변요한 같은 배우들의 호연도 물론 빼놓을 수 없는 포인트다. 그러나 서두에서 던졌던 근본적인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이 영화는 전쟁의 무엇을 다시 보게 만드는가? 이순신 장군의 학익진은 2022년을 사는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지는가? 방어를 위한 전쟁이었으니, 수많은 죽음이 있었음에도 승리 그 자체를 치하해도 괜찮은 걸까? 왜 또다시 이순신일까. ‘한산’이 환기하는 것들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볼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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