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여행 그 이후

개와 늑대의 시간

by 하늬바람


(내 맘대로 문학기행)

스페인 여행 그 이후

- 개와 늑대의 시간


스페인 여행 후 돌아와서 아직 그 기운에서 벗어나지 않았을 때 몇 글자 더 끄적거려보고 싶은 마음에 글을 써봅니다.

--스페인에서 다섯째 날 야경 보러 갔던 그라나다의 산니클라스..---


일상은 익숙한 걸 대변하고, 여행은 낯섦을 목표로 한다고 보았을 때,


익숙함의 탈피는 낯섦을 추구하는 거고,

낯 섦의 탈피는 익숙함을 추구하는 겁니다.


그래서 여행은 일상을 벗어나 낯섦을 굳이 찾아 나가는 길입니다.


그리고, 여행이라는 단어의 의미 안에는 결국 돌아오게 돼있다는 게 전제되어 있습니다.

요즘 강의에서 경제적 인간은 안정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하고, 생각만큼 합리적이지 않다는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습니다. 늘 불안한 존재인 건죠. 미래는 불확실하고 과거는 돌이킬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어린 왕자의 저자 생택쥐베리의 말을 떠올려봅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돌아올 것을 지향하면서 떠나는 것이다"


--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일명 가우디 성당)


신영복 선생님도 그의 마지막 책 "담론"에서 여행은 떠나고 만나고 돌아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떠난다는 것은 익숙한 것들로부터 떠난다는 것일 테고,

만난다는 것은 낯선 환경과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지만, 더 중요하게 만나는 것은 같이 여행을 하는 벗들과 바로 자기 자신을 마주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돌아온다는 것은 여행을 통해 변화된 자기로 돌아오는 것. 그게 여행의 참 의미라는 뜻이겠죠.


그런 의미에서 보면 이번 여행은 정말 익숙지 않은, 만난 지 얼마 안 된 벗들과 친해지기도 하고 스스로도 이것저것 많이 배우고 생각해 보는 좋은 시간이 되었습니다.


어찌 보면 인생 자체가 긴 여행 같은 거라는 생각도 듭니다.



제가 교육 와서 맨 처음 한일중 하나가 도서관 등록을 한 일입니다. 그리고 바로 책을 두권 빌렸습니다.

경제원론 교수님이 추천해 주신 "생각에 관한 생각" 하고 박완서 님의 책 "오래된 농담"이라는 소설이었습니다.


도서관 2층에는 전공책 위주로만 있고 지하 1층으로 가야 교수님들을 비롯한 여러분들이 기중 하신 소설분야들이 즐비하게 있습니다 “생각에 관한 생각” 은 행동 경제학.. 경제 심리학. 이런 거에 관련책인데 술 마시다 반납기한이 다돼서 어쩔 수 없이 반납하고 그냥 책을 사서 읽고 있는 중이고, 아주 오래된 농담은 대출연장을 통해 다 읽었습니다.


박완서 님은 박경리 님을 잇는 우리나라의 대표적 여성작가이십니다. 그분 책은 늘 찾아서 읽게 되는데 자신의 삶을 소설로 옮겨놓은 듯한 이야기가 실제인지, 소설인지 혼동이 오는데 그래서 오히려 흡입력이 대단하다고 느끼곤 합니다.


이 책 소제목 중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는 항목이 있습니다. 살다 보면 익숙하던 것이 어느 날 문득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반대로 낯선 것이 분명한데 어디선가 본 듯한, 와본 듯한, 경험해 본 거 같은 기시감이 들 때도 있습니다.


"개와 늑대의 시간"이 바로 그런 것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 스페인 세비아에서 만난 로마교 ---


(어둑해진 시간에 강 건너에서 늑대가 뛰어올 것만 같은 교량이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해가 어둑어둑해지는 시간을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고 부른답니다. 늘 익숙하던 개가 어두워지면서 늑대처럼 보인다는 의미입니다. 그 의미가 좀 더 확장돼서 잘 안다고 생각했던 것들, 편안하게 느끼던 것이 나를 당혹스럽게 만드는 환경변화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인간관계도 그런 경우가 있습니다. 친하다고 잘 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갑자기 이상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그동안 못 봤던 성격 같은 걸 보게 되었을 때의 그 낯섦.


그래서 사르트르는 "타인은 지옥이다"라고 까지 말했습니다. 더 심각한 건 거울을 보았을 때 또는 나를 돌이켜볼 때 나 자신이 낯설게 느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제 생각에 여행이란 게 그런 것 같습니다.

시공간적으로 개와 늑대를 만나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하여튼 이 소설은 안정적인 생활을 유지하는 주인공과, 삶이 꼬이고 어렵기만 한 다른 주인공 두 명을 대비시키며, 삶에서 무엇이 더 소중하다 말할 수 있는지 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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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페인 둘째 날 머물렀던 톨레도 호텔 --


문학에서도 고전문학에선 선악구별을 해서 권선징악을 주제로 하거나 영웅 위주의 소설들입니다.


(바르셀로나에서 만난 세르반테스 집필실)


하지만 돈키호테와 같은 근대문학 이후 현대문학은 과연 선악을 구별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제기로부터, 선이 악이 되고 악이 선이 되는 반전에 집중하거나 선악은 환경선택의 문제일 수 있다는 문제제기가 일어납니다.


과연 어둑어둑한 상황에서 우리가 개인지 늑대인지 구별할 수 있는지?.. 늑대가 나쁘기만 한 건지?

인간에게 내재되어 있는 늑대를 보게 한다든지 등등 그런 여러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선과 악, 그 중간지점의 사람들에게 포커스를 맞추는 경향이 나타납니다.



마지막으로 "모든 요일의 기록"이라는 책을 소개하고 끝내겠습니다.

이 책은 무엇보다 약간 우울한 듯 우중충한 작가의 성격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책 내용 중 일부를 옮겨봅니다.


"문득문득 생각날 때가 있다. 계속했으니까 안거다.

그만두지 않았으니까 안거다. 지치지 않았으니까 그 열매를 맛본 거다... "


"나에게 인생을 잘 살 수밖에 없는 기본기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 기본기를 키우기 위해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사진을 찍고 여행을 다니고, 뭔가 끊임없이 하고 있다. 그렇게 비옥해진 토양이 있어야 무엇보다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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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떠나고 만나고 돌아왔으니 이제 다른 여행을 떠날 준비를 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