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과 희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

by 하늬바람


(내맘대로 문학기행)


비극과 희극

-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




이번 12.3 사건이 일어난 후 어느 방송에서 아나운서가 헤겔의 말을 인용하여 이런 말을 했습니다.


‘역사는 다시 반복된다.’

정반합을 통한 변증법을 설파한 헤겔의 논리다운 이야기입니다.



후에 칼 마르크스가 여기에 말을 보탭니다.

‘역사는 반복되는데 한 번은 비극이고 또 한 번은 희극이다.’


철학자들이 역사를 문학적으로 표현을 했습니다.




비극, 희극 하면 셰익스피어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세익스피어는 4대 비극, 4대 (또는 5대) 희극을 썼다고 말들 합니다.


하지만 당시 서양의 문학은 희곡(희극 아닙니다) , 즉 연극 공연을 위한 작품들로 기본적으로 비극만 존재합니다.


후대 사람들이 해피엔딩이냐 아니냐로 분류한 셈입니다.


세익스피어의 대표작은 4대 비극이라 불리는 햄릿, 오델로, 맥배드, 리어왕입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왕이거나 장군, 귀족들이 주인공이고 이들의 극적인 삶을 통해 결국은 비극으로 치닫는 이야기들입니다.


나중에 세르반테스에 의해 돈키호테와 같은 평범하거나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사람을 주인공으로 한 진정한 희극이 나오면서 기존 영웅중심 비극적 희곡들이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여기서 움베르토 에코의 희극론과 관련된 책이 떠오릅니다.

이탈리아의 기호학자이자 철학자, 역사학자, 미학자, 소설가인 움베르토 에코.


그분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편에 비극론만 있고 희극론이 없다는 점에 착안하여 쓴 소설이 ‘장미의 이름’ 입니다.


처음 제목은 '수도원의 연쇄살인사건'이었습니다.


그냥 소설이라고 부를 수만은 없는 학술적, 종교적 역사가 집대성된 책이라 할만한데,


지적 추리, 지적유희를 즐기기에는 더없이 좋은 책입니다.


추리소설이라는 구도와 내러티브를 통해 중세시기 교황과 황제의 권력문제와 기독교내 각 교파의 쟁점이 되는 사항들, 이교도와 기독교내 이단의 문제 등등이 전면에 등장합니다.


소설 속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 삼단논법,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 토마스 베이컨의 경험주의, 저자인 에코의 기호학, 성경과 요한묵시록 등이 주인공들의 대화나 소재, 배경으로 치밀하게 배치되어 있습니다.


마치 중세시대 그들의 논쟁과 갈등 속에 내가 참여하게 되는 느낌으로, 살인사건의 퍼즐을 맞춰나가는데 집중하게 됩니다.


그리고 소설 속 갈등의 실제적 중심축을 이루고 있는


웃음과 희극의 문제는 이 대단한 추리소설을 제대로 읽는 핵심 열쇠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희극을 경계하고 엄숙함과 진지함을 성인의 가르침으로만 생각하는 수도사와


희극 속에 진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주인공과의 대결이 가히 하이라이트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희극과 비극의 반복은

니체의 영원회귀 논리와 더불어 밀란 쿤데라의 소설에서도 등장합니다.

“영원한 회귀란 신비로운 사상이고, 니체는 이것으로 많은 철학자들을 곤경에 빠뜨렸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소설의 시작입니다.


조국 체코가 소련의 지배하에 들어가고 독재자와 비밀경찰들에 의한 감시를 받는 역사적 상황 속에서


실제 자신이 겪었던 이야기를 소설로 만들어낸 뛰어난 작품입니다.



서양의 희극, 비극 분류기준으로 보자면 우리나라 고전 문학은 희극입니다.


춘향전, 홍길동, 심청전 등등 전부다 해피엔딩을 추구합니다.


기승전결 구조속에서 주인공은 죽을 고생을 하지만 결국 행복한 결말을 맞이합니다.


아마 그래서 우리 한국 사람들은 긍정적이고 희망이 넘치나 봅니다. 어떠한 역경도 극복해 낼 거라는 걸 우리 역사나 문학이 보여주는 거겠죠.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의 소설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행복한 가정은 같은 이유로 행복하고,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


우리가 추구하는 행복의 이유, 희극적 상황은 다 비슷하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불행은, 비극적 상황은 생각하기 나름이거나 각자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르다는 겁니다.


제 생각으론 불행이나 비극이 생각 따라 존재하기도 하지만 비극이 삶의 본질에 더 가깝다는 느낌을 들게 하는 문장입니다.


안나카레니나는 비극적 운명으로 끝납니다


그리고 성인으로까지 불리는 톨스토이의 실제 인생도 희극과 비극이 많이 교차하지만 비극적 결말을 맞이합니다.


희극, 비극에 대해 찰리 채플린도 한마디 보탭니다.

채플린의 명언입니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


찰리 채플린은 모던 타임스 영화로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히틀러의 나치를 비난하는 독재자라는 영화도 만들었습니다.


희극 배우였지만 비극을 희극으로 만들어내는 천재였습니다.



지금의 우리나라 상황이 비극인지 희극인지,

결국 비극이지만 희극으로 이어질 거란 기대감을 가져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폭압적 상황에 대한 문제제기로 문학작품을 쓰신


한강 작가님이 노벨문학상을 받게 된 이 시기에 다시 그런 일이 발생했다는 겁니다.


마지막 ‘한강’ 작가님의 수상 연설로 이 글을 마감하렵니다.

‘세계는 왜 이토록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가? 동시에 세계는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가?’


‘인간은 어떻게 이토록 폭력적인가,

동시에 인간은 그토록 압도적인 폭력의 반대편에 설 수 있는가?


우리가 인간이라는 종에 속한다는 사실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 ‘

(어제 자전거로 만난 노을과 갈대들)


노을과 갈대는 장엄한 비극일까요? 내일을 향한 희극일까요?



- 하늬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