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앙드레 말로
(내맘대로 문학기행)
혁명가의 삶을 담은 이야기는 언제나 가슴을 뜨겁게 하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가슴이 저려옵니다.
그 삶에서 느껴지는 열정과 역경의 극복에 대한 존경과 동경의 마음이 일어나는 건지,
현실이 주는 피곤함과 나의 안위가 적절히 섞여있는 현재의 모습에 대한 불만과 좌절을 떨쳐내게 하는 요소로 작용하는지,
이도 저도 아니면 그 둘이 교묘히 내 마음을 움직이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어떤 시기에 골라 들게 되는 책들은 그때의 내 마음 상태를 반영하기 마련입니다.
마음에 봄바람이 하늘하늘 불어올 때는 따뜻한 수필집이나 로맨스 가득한 소설을 잡아 들게 되고,
세상에 대한 내 시각이 부족하다 싶을 때는 다른 사람들의 시각은 어찌한 지 궁금한 마음으로 철학책이나 역사책, 세계관을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을 잡게 됩니다.
그리고 소설 중에서도 서사를 담고 있는 책은 그 시대의 비장함과 그 시대를 살던 사람들의 모습에서 내 모습을 비추어 보게 됩니다.
현실에 대한 궁금증을 반복된다는 역사 속에서 한 시대를 살아가던 좀 더 생생한 인물들을 통해 찾아본다고나 할까요.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시대를 돌이켜보고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합니다.
앙드레 말로의 ‘인간의 조건’인데, 홍신문화사에서 나온 책으로 읽었습니다.
며칠 전 저의 브런치 매거진 ‘슬기로운 금주생활’에 썼던 APEC 회의와 관련된 중국, 일본 술 이야기와 프랑스 빵, 혁명 이런 이야기를 쓰다 보니 생각의 꼬리가 여기로까지 이어졌습니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쓴 ‘한나 아렌트’의 같은 제목의 책도 있는데, 최근 아이히만을 읽다 앙드레 말로 책이 생각난 점도 이 글을 쓴 요인으로 작동했습니다.
(한나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 - 소설 아님)
앙드레 말로의 책은 1930년대 초반에 쓰인 오래된 책이다 보니 요즘에는 단행본으로는 안 나오고 세계 문학전집에 포함돼서 나오는 책입니다.
하지만 세계문학전집에 늘 포함될 만큼 고전으로 인정받고 꾸준히 읽히는 작품입니다.
예전에 소싯적에 세계문학전집을 차례대로 읽어보던 시절에 기억이라 책 내용이 가물가물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이 책은 가물가물한 기억을 애써 배제하고 처음 보는 느낌으로 읽었습니다.
변혁기 지식인의 전형으로도 불리는 '앙드레 말로'. 이 책의 저자입니다.
위대한 인물이다 보니 전기적인 평전도 나와 있습니다.
(앙드레 말로 평전)
그의 인생자체가 드라마틱하고 행동하는 양심의 대표적 인물이라고 할만합니다.
중국의 국공합작 때의 현장에서 바라본 경험과 직접 스페인 내전에 참여하고 나치침략에 반대한 레지스탕스로도 활약하는 등 불의의 시기에 올바른 지식인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그의 삶은 이 책 속에서 주인공들로 대변됩니다.
먼저 이 책의 배경이 되는 일명 '상하이 쿠데타'에 대해서 인터넷 두산백과에 나온 글을 옮겨봅니다.
상하이 쿠데타 : (요약) 중국의 장제스[蔣介石]가 주도한 반공(反共) 쿠데타.
국민당은 1926년 7월부터 장제스를 총사령관으로 한 국민혁명군을 조직하고 제국주의와 봉건군벌의 타도를 위해 북벌을 개시하여 남방지역의 군벌을 차례로 타도하였다. 공산당도 제1차 국공합작하에서 북벌을 혁명전쟁으로 발전시키는 정책으로 채택하여 노동자·농민 사이에 급속히 당세를 확대시켜 각지의 해방투쟁을 지도하였다.
1927년 3월 공산군이 난징[南京]을 점령하자 영국·미국·프랑스·이탈리아 및 일본의 함대에서 난징을 향해 일제히 무차별 포격을 가해 공산군 중심의 혁명전쟁 발전을 무력으로 저지하고 거액의 자금을 대주어 국민당 우파의 반공활동을 지원하였다. 그러한 가운데 우파의 실력자 장제스는 같은 해 4월 12일 상하이의 노동자 무장대와 상하이 총공회(總工會)를 해산시켰다. 이 사건은 국공합작을 결렬시키고, 공산당 세력을 약화시키고, 장제스 정권을 수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바로 이 시기에 혁명가이자 코뮤니스트로 활동하던 첸, 기요, 카토프 등과 주변인물인 지조르, 메이 등을 통해 그 시대를 보여줍니다.
하지만 서사라고 하기에는 짧은 '상하이 쿠데타 사건이 일어난 시대적 순간을 배경으로 역사적 정당성 이런 것에 집착하기보다는 그들이 고뇌하고 행동하는 것들을 통해 인간의 정신과 신념에 대해 초점을 맞춰 이야기합니다.
이런 역사적 주제를 담는 책이 주는 무거움과 전쟁과 혁명의 기운이 주는 핏빛이 이 책의 전반에 깔려있는 데다가, 그 시대를 대변하는 캐릭터가 분명한 주인공들의 내면이 잘 형상화돼 있어 주인공들이 느끼는 갈등에 나도 모르게 동참하게 됩니다.
잠시 여기서 그 시절을 논픽션으로 또는 이 책처럼 픽션으로 기록한 책들이 있습니다.
앙드레 말로처럼 서양인들의 눈으로 직접 보고 기록한 책들이 나와 충격을 주었는데 가장 유명한 책이 에드가 스노의 ‘중국의 붉은 별’입니다.
에드가 스노우가 직접 대장정을 함께하며 기록한 내용입니다. 이 책은 세계 3대 르포 문학 고전 중 하나로도 꼽히는 명저입니다.
에드가 스노우의 부인 ‘님 웨일즈’도 저널리스트였는데 중국혁명 시기 조국을 잃고 중국에서 독립과 혁명운동을 하던 조선 혁명가 김산에대한 기록을 우리에게 소중한 책으로 남겨주었습니다. 그 책이 김산의 ‘아리랑’ 입니다.
시대가 바랜 느낌이 있지만 두고두고 읽어야 될 책임에는 분명합니다. 저는 이 책들을 읽을 때는 소설보다도 더 소설 같은 이야기들이 주는 감흥에 흠뻑 빠져있었습니다.
물론 시대도 많이 흘렀고 그 시대의 이념이나 시대정신과는 다른 현실이지만,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의지와 신념에 대한 문제의식만큼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큰 변화가 없을듯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신념이라는 것은 자기가 믿는 사상과 이념에 대한 것일 수 있지만, 이념이라고만 말하기에는 뭔가 부족한, 그래서 더 큰 숭고한 정신이 그 바탕에 깔려있다는 생각입니다. 인간에 대한 존엄이라고나 할까요.
최근에 빵때문에도 그렇고 프랑스를 소재로 글을 쓰다보니 중국과 프랑스 두 역사에 대해 묘하게 비교되는 것들이 떠오릅니다. 프랑스 사람인 앙드레 말로가 중국혁명을 주제로 책을 쓴것도 무관할수는 없겠네요.
프랑스의 근대가 프랑스 혁명 - 로베스피에르의 극단적 공포정치 - 반동정부 - 나폴례옹 쿠데타 - 공화정수립. .이렇게 이어진다면,
중국은 쑨원의 신해혁명 - 5.4운동과 공산당 창당 - 국공내전 - 일본침략에따른 국공합작 - 공산당 승리 - 문화혁명의 극단정치등장 - 개방정치 . . 크게보면 이런 흐름입니다.
이렇게 격동시기의 역사의 흐름은 작용과 반작용을 거듭하게됩니다. 그리고 그 시기를 거쳐가는 많은 혁명가들, 기록자들, 소설가들을 만나게 되는건 당연할겁니다.또 얼마나 많은 이름없는 민초들이 쓰러져갔을지 감히 짐작도 안됩니다.
역사에서 수많은 혁명가와 사상가들을 만나지만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 없이 사회만을 변혁시키려는 혁명이 어찌 흘러갔는지는 낯선 모습이 아닙니다.
그래서 소설의 마지막 장면이 인상적입니다.
자살용으로 보유하고 있던 청산가리를 다른 동지들에게 나눠주고 고통 없이 죽을 수 있도록 해주고 자신은 불에 타 죽는 고통을 선택하는 모습은 잔인하리만치 리얼합니다.
이 책에서 주인공들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어 했고, 제목도 '인간의 조건'이라고 붙인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앙드레 말로는 혁명의 시기에 수반되는 폭력적 방법에 대한 고민, 인간 존재에 대한 철학적 고뇌, 윤리적인 문제, 실존주의적 관점 등을 소설 속에 풀어놓고서는 인간의 조건이라는 제목으로 압축시켜 놓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조건이라고 할 때, 논리학에서 필요충분조건 이렇게 이야기하듯이 형체만이 인간이 아닌 사유와 행동을 통해 인간의 조건을 충족시켰을 때 우리는 진정한 인간이라 합니다.
앙드레 말로는 지식인의 길, 혁명가의 길, 작가의 길, 예술가의 길, 정치인의 길 등 여러 갈래의 길을 걸어가면서 어느 지점에서나 시대적 문제를 피해 가지 않고 때론 맞서고 때론 삶 자체로서 대변하면서 진정한 인간답게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책을 덮으며 소설 속 주인공들의 삶을 통해 인간은 무엇인가 생각해 봅니다.
저의 평범한 일상이 주는 안전함에 안주하고 살면서 거대한 담론까지는 아니더라도 인간의 조건에 대한 고민을 스스로에게 던져보게 해주는 시간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