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드카와 함께 읽는 안나 카레니나

-행복한 가정과 불행한 가정

by 하늬바람


(내 맘대로 문학기행)

- 보드카와 함께 읽는 안나 카레니나


요즘 같은 날에는 야외로 나가기 전에 일기예보를 찾아보게 됩니다. 옷두께를 결정하기 애매한 날씨때문입니다. 밤낮으로 온도차도 커서 시간대별로도 살펴봐야 합니다. 조금 두툼하면서도 무겁지 않은 옷으로 갈아입고 늦가을 분위기를 느끼러 나가봅니다.


이렇게 날씨가 추워져가는 저녁에는 따뜻하게 데운 청주를 한잔 하며 예전에 봤던 영화나 음악을 들으면 몸도 마음도 훈훈해집니다.

좀 더 센 걸 원한다면 식도를 타고 넘어가 가슴까지 뜨거워지게 하는 러시아 보드카나 중국 고량주를 따뜻한 안주와 함께 마신다면 제격인 요즘 날씨입니다.

금주생활 중이라 술은 못 마시고 이런 분위기에 맞는 러시아 음악이나 예술을 찾아보게 됩니다.


영화 '백야' 에 나왔던 블라디미르 비소츠키의 노래인 '야생마’ 는 거칠고 황량한 대자연을 떠올리게 합니다. 러시아 특유의 거칠고 탁한 남성의 음성에 담긴 비장함과 망명한 무용수의 운명을 담은 발레연기는 가슴을 뭉클하게 합니다.

냉전시대 이념과 진영의 문제가 의도적이긴 하지만 예술성과 대중성 모두 뛰어난 작품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러시아산 보드카 한잔. 쭈욱~ 생각만으로 마셔봅니다.


그리고 드라마 모래시계의 주제곡이었던 ‘백학’ 을 듣고 있으면 역시 고요하고 광활한 동토의 자연 풍경이 저절로 그려집니다.

거대한 자연의 힘 앞에 놓인 인간의 무력함이 비장한 느낌의 음률에 실려 저에게 전달되어 옵니다.


여기서 두 번째 술잔을 머릿속으로 들이킵니다.


백학은 날아가고 백색의 보드카는 내 영혼의 혈액 속에 서서히 스며들어갑니다.

더 취하기 전에 본론으로 들어가야겠습니다.



추워지는 날씨에 러시안산 보드카를 기분으로라도 마셨으니 러시아 문학으로 넘어가 봅니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 다른 이유로 불행하다."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는 이 유명한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고전을 내 나름대로 정의해 보자면 단순히 오래된 옛날의 것이 아니라, 시대를 넘어 통용되고 읽히는 책입니다. 시대를 넘어 읽히려면 어떤 내용과 가치를 담아야 될까? 그건 동시대의 가치나 삶만이 아닌 인류의 보편타당한 가치나 철학적 고뇌가 담겨있어야 되는 게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우리가 춘향전이나 홍길동전에서 단순히 조선시대의 삶만을 보는 게 아니라 신분을 넘어선 인간이 가지는 보편적인 사랑의 감정이나 평등정신을 느끼는 것처럼 감히 고전이라 불릴 수 있는 건 그 시대에만 국한된 게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 빛을 발하는 가치를 가진 것들입니다.


웃긴 이야기로 어떤 책에서는 고전은 "오래전에 읽어서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라고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책이라고 합니다. 그건 읽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차마 못하고 기억이 안 난다고 이야기하거나, 실제 그 내용이나 주제에 대해 논할 만큼 자신이 없는 책이라는 뜻일 겁니다.


그만큼 고전이 중요하다는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 꼭 고전이라고 해서 남이 느낀 만큼 나에게 중요한 의미를 가져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아는 만큼 읽어내는 만큼 그 책이 의미가 있는 거지, 세상 어떤 책이나 고전도 모두에게 100% 동일한 감동과 영향을 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어떤 이는 고전이란 한 문장으로 압축될 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즉 고전은 한 줄의 명문장으로 기억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햄릿은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로 기억되고, 카프카의 변신은 "어느 날 아침 나의 모습이 한 마리 벌레로 변해있는 것을 발견했다."라는 첫 문장으로 기억됩니다. 그리고 헤르만 헷세의 데미안은 "새은 알에서 깨어 나온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는 문장으로 기억됩니다. 고전에는 핵심 문장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겠지만, 압축된 한 문장 속에는 시대를 넘어선 인간들의 고뇌와 가치가 서려있다는 생각이 들어 일견 그럴싸한 주장이구나 동감하게 됩니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 다른 이유로 불행하다."

앞에서 언급한 안나 카레니나를 압축하는 이 첫 문장은 이 소설의 처음이자 끝이고 이 소설 전체를 관통합니다. 저에게 이 문장은 불행은 개개인 스스로 만드는 것이고, 행복이란 공통의 가치를 추구한다는 의미로 생각됩니다.

안나 카레니나의 정식 이름은 발음하기도 힘든 "안나 아르까지예브나 까레니나" .. 그 남편 이름은 "알렉세이 엘렉산드로비치 까레닌"

책 읽으면서 러시아 이름들 얼마나 힘들던지 앞에 주요 인물 소개를 몇 번이나 떠들어봐야 합니다.


크게는 네 명의 주요 인물이 등장하는데 안나와 그 남편집안, 그리고 안나의 애인인 브론스끼, 그리고 브론스끼에게 버림받은 끼치를 사랑한 레빈이라는 사람이 그들입니다.

처음엔 진정한 사랑을 찾아가는 안나가 주인공이긴 한데, 다 읽고보면 사랑하는 사람에게 버림받고 불행했지만 자연과 노동을 중시하는 레빈이라는 인물이 톨스토이가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인간상이었을거라 생각이듭니다.

아름답고 사랑스러우며 정렬적인 사랑을 찾아가나 불륜이라는 멍에를 짊어지게 된 안나 카레니나. 자신의 사랑이 뭔지 확인하고 싶어 하는 불행의 굴레 속에 결국은 막다른 길로 뛰어드는 안나의 삶이 의미하는 건 무엇일까? 번역자는 후기에 당시 상류사회의 허위와 위선이 아닌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라고 평합니다.


1800년대 즉 19세기 러시아 시대에 쓰인 이 소설을 동시대에 살았던 도스토예프스키는 완벽한 예술작품이라고 칭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시대가 달라서인지, 나라와 민족감정이 달라서인지 그 정도 감흥은 오지 않습니다. 다만 주인공들의 생각과 삶을 통해 사랑과 삶, 죽음의 의미에 대해 더 깊이 느껴보기는 합니다. 특히 안나와 레빈이라는 상반되는 주인공으로 인한 삶의 과정과 결과를 비교하며 보게 됩니다.

사실 요즘엔 문학전집 책을 읽고 보면 고전감동보다는 레트로감성이 먼저 다가옵니다. 순수함을 잃은 세월 탓인가 봅니다.

그런 의미로다 보드카 세 잔 째를 깊이 들이마십니다. 상상취기로 인해 흰 눈이 가득한 시베리아 벌판과 러시아 문학예술의 여러 장면이 눈앞에 펼져집니다.


마차를 타고 떠나는 연인을 바라보는 닥터 지바고의 모습, 부활의 카츄샤는 기차를 타고 시베리아 유형길을 떠나고 있고,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은 선과악의 심판대에 서있습니다.

막심 고리키의 어머니는 아들을 따라 고난의 길을 따라나서고, 백조의 호수의 블랙스완 발레장면 위로 차이코프스키의 아름다운 음악이 흐릅니다.



톨스토이는 당시 부유한 백작가문에 태어났지만 사유재산을 부정하고 농민학교를 세우는 등 농민계몽운동에 헌신하였습니다. 농민들의 벗을 자처하고 그로 인해 탄압을 받고 여러 차례 판매금지도 당하기도 했지만 예술과 노동자, 도덕, 종교 등에 대한 성찰과 글들을 죽을 때까지 끊임없이 쓰고 활동해 온 대문호.. 그래서 그의 사상과 실천이 담긴 그의 글들은 이 시대에도 다시 읽게 되고, 우리를 계속 되돌아보게 하는 힘으로 작용하는 건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그래서 고전이라는 명칭이 붙는 거겠죠.

마지막으로 보드카 네 진째를 깊이 마십니다. 이제 러시아의 천재작가 안톤체호프의 작품 ‘입맞춤’ 이 저의 술잔과 입술을 적셔줍니다.

그리고 안나 카레니나가 모든 것을 뒤로하고 기찻길로 뛰어드는 모습이 흑백영화 필름처럼 눈앞에 흘러갑니다. 기차역에서 쓸쓸히 삶을 마감하는 톨스토이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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