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과 부재

- 평온하고 고요하길

by 하늬바람


(내맘대로 문학기행)

- 상실과 부재



최근에 부쩍 참석하는 장례식이 많아진 느낌입니다. 그건 제가 살아온 인생만큼 인간관계가 늘어났을 테고, 그 과정에서 고마운 분들이 많아진 때문일 겁니다.

국화꽃이 피기는 아직 이른데, 여름이 다 가기도 전에 장례식장에서 존재와 부재의 관계로 이 꽃을 만나게 됩니다. ‘부재’가 된 떠난 사람과 ‘존재’하는 남은 사람이 영혼 같은 하얀 빛깔의 국화로 연결되는 것일까요.

마치 아직 피지 않은 국화꽃은 여기 존재하는데, 막상 존재했던 이는 상실되고 없는 것처럼 모든 장례식장은 낯설기만 하고 익숙해지지 않는 존재와 부재가 교차하는 공간입니다.


그런 의미로 브런치에 연재 중인 ‘나의 금주 일기’에 썼던 국화꽃 이야기에 이어 여기에서는 상실과 부재에 대한 문학예술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고흐의 그림입니다. 그림 왼쪽 아래에 보면 ‘모브를 추억하며’라는 글귀와 사인이 적혀 있습니다. 따사로운 어느 봄날 고흐가 아를에서 그림 그리던 시절에 처음으로 그림을 배웠던 스승 모브의 부고를 듣고 그린 작품입니다.

고흐는 첫 스승의 죽음 앞에서 어둠과 슬픔이 아니라 복숭아나무의 화려함과 생명의 기운, 그리고 희망을 표현하였습니다.


고흐는 이 복숭아나무에 핀 꽃 그림을 ‘내가 그린 풍경화 가운데 가장 훌륭한 작품이 될 것 같다’ 고 동생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에 적었습니다. 그리고 또 이렇게 적었습니다.

‘사람들이 있는 한 죽은 자는 죽은 것이 아니다. 죽은 자는 산자와 더불어 살 것이다.’

(고흐와 동생 테오가 주고받은 편지를 중심으로 고흐의 일생을 그린 책 )


그러나 이런 희망에 넘친 이야기를 했던 고흐도 얼마 못가 생을 달리합니다. 그러나 그의 죽음으로 인해 그의 그림과 삶은 영원히 우리 가슴에 각인되었습니다. 그의 부재와 상실은 또 다른 존재로 남게 된 셈입니다.

...


문학예술 분야에 추리나 공상과학, 로맨스, 판타지처럼 하나의 장르로 묶이지는 않지만 장례, 죽음을 주제로 하거나 바탕 배경으로 하는 작품들은 간혹 있습니다.


제일 먼저 떠오른 건 가장 최근이라 할 수 있는 정지아 작가님의 장편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 입니다. 빨치산이었던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문상을 오는 사람들을 통해 몰랐던 아버지의 과거 이야기와 어렸을 적 자신의 기억을 되새김질해서 그 시절을 되살려냅니다.


장례식장에서 정감 있는 사투리로 말하고 듣는 그 이야기들이 우리나라 현대사와 그 시절을 살던 개인의 굴곡에 대한 것들인데, 실제 자신의 이야기를 1인칭 시점으로 풀다 보니 자서전이란 생각이 들 정도로 몰입이 강하게 되는 작품입니다.


이런 사투리는 토지, 태백산맥, 혼불 같은 대하소설에도 문장 전체에 걸쳐 깔려있어서 토속적이고 정감 있게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사투리 단어 하나하나 알지 못해도 그 분위기 만으로도 내용을 알 수 있고 우리나라 언어가 이렇게 풍부하고 찰지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사투리로 인해 소설도 투박하고 소박해지지만 읽는 저로서는 더욱 사실적으로 느껴지고 그 안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실제 삶의 모습을 보게된다랄까요. 그것도 시골 장례식장이고 빨치산이었던 고인이라면 많은 묘사가 없어도 그 장면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상갓집을 본격적으로 내세운 소설은 이청준 님의 ‘축제’가 가장 유명하고 작가님 명성만큼이나 뛰어난 작품입니다. 저는 소설로는 못 읽고 영화로 접했습니다.

아버지의 해방일지의 모델이 된 작품이라 생각 드는 건 장례식장이라는 장소에서 고인과 남은 자들의 과거 이야기라는 포맷, 플롯이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확연히 다른 건 축제는 한국인 특유의 가족과 장례라는 전통문화에 대한 주제의식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전 세계 베스트셀러인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이 떠오릅니다. 많은 분들이 이 실화바탕 소설을 읽고 영화로도 보셨을 겁니다.

루게릭 병에 걸린 교수와 어느 날 문득 찾아온 제자 간에 화요일마다 나누는 인생대담과 가르침이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었지요.

저는 그 내용보다 살아있는 장례식(Living funeral) 장면이 오래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죽은 후에 장례식장에서 하는 이야기는 들을 수 없으니 살아있을 때 장례를 치르며 미처 말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말하고 듣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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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 누군가의 자식이고, 또 누군가의 부모이거나 형제자매, 친구, 동료이기에 그들의 부재와 상실을 맞이해야 되고, 이 세상에서 나의 부재 또한 남겨야만 합니다.

그 맞이함과 남김이 너무 아프거나 무겁지 않고 평온하고 고요하길 바래봅니다.

(가을을 재촉하는 갈대들이 하늘아래 하늘거립니다.)

- 오고 가는 길에 찍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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