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와 바람과 시

나무가 잠잠하면..

by 하늬바람

(내맘대로 문학기행)

나무와 바람과 시


우선 제가 좋아하는 시 한 편 소개하겠습니다.



나무

- 윤동주


나무가 춤을 추면

바람이 불고

나무가 잠잠하면

바람도 자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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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패드로 그려본 나무와 바람 )


그냥 읽으면 그런가 보다 싶은데 생각하며 읽어보면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끼게 됩니다.

바람이 불어야 나무가 흔들리거나 춤을 추게 되는 것인데, 윤동주 시인은 거꾸로 이야기합니다.

바람이 나무를 흔드는 게 아니라 나무가 바람을 불게 한다고 주장합니다.


여기에 이 시를 읽는 묘미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식민지 시절 제국주의 바람에 흔들리던 조국과 민족이 주체가 되어 살아났으면 하는 마음이었을까요..

아니면 나약한 지식인으로 시를 읊조리던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싶었던 걸까요?


그러나 저는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내가 세상을 느끼는 건 내 피부에 닿는 감각,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와 느낌 이런 것들을 통해 알게 됩니다.

즉, 내가 직접 경험한 구체적 실상과, 간접적으로 느끼게 되는 것들을 통해 세상의 변화를 알게 됩니다.

내가 벽으로 둘러싸인 집안에 있을 때 바람을 느낄 수 있는 건 창밖에 흔들리는 나무와 풀잎, 창문을 두르리는 소리 이런 것들을 통해 알게 되는 것처럼 말이죠.

그래서 왜 나무가 춤을 추는지 이해하려는 마음은 남의 아픔에 대한 공감능력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그보다는 내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많은 감정과 생각들에 대한 조그마한 성찰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어찌 되었든 오늘도 갑작스레 비가 꽤 내렸고, 바람이 불었고, 하루해가 저물었지만 그 과정에서 나는 어떤 생각을 하고 무엇을 했는가 생각해 보게 됩니다.

내가 바람에 흔들린 건지, 바람이 나로 인해 생겨난 건 아닌지?


바람을 과학적으로 표현하면 "기압차에 의한 공기의 이동"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공기가 이동하고 흐름이 생기는 건 차이를 없애고 안정을 찾고자 균형을 잡는 겁니다. 그런데 이 바람이 우리를 스쳐 지나가면 감정이 생겨납니다. 그래서 감성적이거나 문학적인 표현도 나오고, 시(詩)도 만들어집니다.

서정주 시인은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었다."라고 까지 이야기했을 정도였으니까요..

물론 서정주 시인은 공과 과가 많이 엇갈리지만 시어(詩語)의 아름다움만큼은 자연바람 탓이 맞을 듯합니다.

미당 서정주 시선집이 몇 해 전 출간돼서 소개해드립니다.

아 그러고 보니 서정주 시인의 고향이 전북 고창인데, 지금 고창에 갑작스러운 비바람이 쏟아져 기상특보가 내린 상황인 게 우연일까요? 시인의 몸과 마음에 담겼을 고창의 하늘에 바람이 불고, 시인이 마음을 주었던 국화꽃을 피어나게 하려고 비가 시원스레 내립니다. 이 비바람은 공기의 이동이기도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생각과 감성을 키워주었을 거고 지금도 누군가의 마음을 스쳐 지나가고 있을지도요...

비와 바람을 느끼다 보니 윤동주 시인이며, 서정주 시인이며, 그들이 겪고 살았던 시절에 시로 담았던 하늘과 나무와 꽃과 잎새들이 저를 흔듭니다.

이런저런 생각 끝에 예전에 그린 ‘비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올려봅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를 아이패드에 어떻게 그렸는지 그 과정까지 함께 올립니다.



이렇게 보니 사실 중간과정이 더 멋지기도 합니다.

특별한 방법은 없고 조잡해도 나만의 표현 방법으로 대충 그려보았는데, 아이패드에서는 그 과정을 이렇게 저장할 수 있어 재미있고 좋습니다.


이 글을 다 쓰고 나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비와 바람이 싹 그쳤습니다. 그리고 어두운 적막이 남아있네요.


나무가 잠잠하니 비바람도 자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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