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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멜리에최 Apr 22. 2024

암스테르담 견학기

1. 아이와 단둘이 떠나기로 했다, 또다른 삶을 엿보기 위해.

반차를 내고 집에 돌아와 목록을 확인하며 마지막으로 짐을 챙겼다. 확인된 물건을 목록에서 쭉 쭉 지워가면서. 필요한 물품이야 현지에서 조달하면 되고, 교통편과 숙소만 있다면 여행 준비는 끝났다고 생각하는 대문자 P인 사람에게도 아이와 함께 하는 장거리 여행에서는 꼼꼼한 준비와 대비만이 살 길임을 경험적으로 체득했기 때문이다.


체온계와 비상약, 반팔부터 패딩점퍼까지 사계절을 망라한 옷가지들이 자리잡고 있는 캐리어에 우비와 장화, 그리고 썬글라스(나와 아이의 것)를 우겨 넣었다. 구성만 보면 이민이라도 하는 모양새지만 고작 6박 7일의 짐이다. 찾아본 정보에 따르면 4월 초순의 그곳에는 비가 예고 없이 내리고 날씨와 시간대에 따라 여름부터 초겨울의 기온을 오르내린다고 하니 짐을 가볍게 할 꼼수를 부릴 방도가 없다. 아이가 여행지에서 감기에 걸려 열이라도 나면 무척 곤란하니 말이다. 여차하면 장갑에 목도리, 털모자로 무장할 수 있도록 만발의 준비를 한다. 이건 체온계와 해열제, 즉 겁없이 떠났던 지난 날의 교훈이다. 아이와 함께할 땐 차라리 넘치는 게 낫다는 것.


기내나 식당에서 아이가 지루할 때를 대비하여 색연필과 레고 등의 장난감과 순간을 벌어줄 지도 모르는 사탕, 젤리 따위는 크로스백에 따로 챙겼다. 유사시에 당장 대령할 수 있도록 몸에 딱 붙이고, 가장 중요한 짐(!)의 손을 꼭 잡고 택시 타러 출발.


택시기사님이 대뜸 외국인이에요? 라고 묻는다. 무거운 짐을 들고 아이와 단둘이 공항을 가는 여자라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한국에서 난생 처음 듣는 질문이 신선하기 그지없다. 킥킥나는 웃음을 참으며 "한국인인데요
?"라고 대꾸를 한다. 이제 막 시작하는 여행 앞에서 여행자의 콩깍지는 귀에도 씌이는 법이지요.


무사히 공항에 도착해 한 손으로 23kg의 케리어를, 다른 한 손으로는 15kg이 올라탄 유아차를 끌면서 한산한 밤의 시간을 누리고 있자니 여행의 본격적인 시작 전부터 자기효능감이 몰려왔다. (해냈어, 해냈다구!) 몇 시간 후면 아이와 단둘이 암스테르담행 비행기에 오를 참이었다. 하늘 위에서 14시간을 여차저차 견디고 나면 우리는 스키폴 공항에 도착할 것이다.


네덜란드.

유럽의 교통허브 스키폴 공항 보유국

튤립과 풍차, 나막신의 나라

해수면 보다 낮은 나라, 말그대로 Nederland, Netherlands, Pay-bas

성매매와 대마초를 법적으로 허용한 곳

하이네켄 생산국

17세기 항해무역으로 세계경제의 헤게모니를 장악했던 나라

주식회사가 발명된 곳

더치페이로 상징되는 실용주의의 상징

막부시절의 일본이 유일하게 교류한 서방국가

.

.


사람들은 왜 암스테르담이냐고 물었다. 프랑스나 이탈리아, 영국이나 스페인을 간다고 했으면 듣지 않았을 질문일지도 모르겠다.     

 

글쎄요, 아이친화도시에 가보고 싶어서요.      


대답을 들은 사람들은 아직 완전히 이해되지 않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여행을 계획하기 전까지 나에게도 네덜란드는 다른 유럽 국가를 가기 위해 거쳐 가는 경유지에 불과했으니 그들의 의문도 넉넉히 이해가 된다.   

  

조금 더 부연설명을 하자면 내막은 이러했다. 몇 달 전 또래 아이를 가진 친구와 대화를 하다가 행복지수에 대한 말이 나왔고, 각자 아이들을 데리고 행복지수가 높다는 북유럽국가들을 여행해보면 어떻겠냐는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지금까지 여행지를 선택할 때 '추위보다는 차라리 더위'가 대전제처럼 작동해왔기에 북쪽 나라들을 방문할 생각은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아이와 함께라면? 그들의 행복을, 그 행복의 이유를 엿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친구와 함께 하는 여행을 당장 실행할 수는 없었으나 그 대화를 나눈 이후부터 지금껏 따뜻한 남쪽 나라들에 밀려 여행지 후보군에도 들지 못했던 북쪽 나라들이 나의 레이더망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 중에서도 왜 네덜란드였는지, 묻는다면 "너무 북쪽은 아니니까."

   

암스테르담의 전형적인 풍경


생각해보면 급작스러운 전환은 아니었다. 아이가 태어난 이래로 ’삶의 질‘은 여러 측면에서 삶의 화두였으니까 말이다. 육아를 하며 가장 힘든 것은 그간 나를 나로 만들어주었던 시간을 확보하는 일이었다. 책과 영화를 보고, 정처 없이 걷고, 친구와 급작스러운 만남을 가지고, 훌쩍 떠나는 일이 어려워진 것이다. 누군가를 돌보고 책임지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어깨는 올라갔지만 동시에 어깨결림은 만성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영화관은커녕 일주일에 한번 요가수업에 가는 일도 녹록치 않은 것이 육아의 현실이었다. 삶의 질을 사수하기 위해서는 이전에는 필요하지 않았던 계획과 단호함이 필요했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한 일도 많았다.    

 

육아휴직을 마치고 직장에 복귀하면서부터는 내 삶의 질에 더해 아이의 삶의 질에 대해서도 생각이 많아졌다. 아이는 늘 피곤해하면서도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아쉬운 듯 일찍 잠에 들기를 거부한다. 주말을 빼고는 집 밖에서 10시간도 넘게 생활하니 당연한 일이다. 안 잔다고 우는 아이를 반쯤 달래고 반쯤 협박하며 재우는 밤이 이어졌다.      


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는 어떠할까. 일찍 하교하는 초등학교 저학년들의 보육공백을 막기 위해 소위 ’학원뺑뺑이‘를 돌린다는 충격적인 이야기가 더 이상 남의 일 같이 느껴지지 않게 되었다. 게다가 요즘에는 몇 년을 앞서나가는 선행학습이 당연한 일로 여겨진다니 깊은 회의가 들지 않을 수 없다. 대한민국의 입시 시스템 하에서는 나름대로 성공했다고도 말할 수 있는 진학이력을 가지고 있는 당사자로서, 그러나 직장생활 10년차에도 여전히 ’나의 길‘을 찾지 못해 괴로운 K-직장인으로서 아이만큼은 다른 환경에서 교육을 받았으면 하는 마음이 절실하다.     


언젠가부터는 이게 최선일까, 스스로에게 계속 묻게 되었다. 조금만 더 일찍 퇴근한다면 어떨까. 휴일이 좀 더 많으면 어떨까. 아이에게 자기 자신을 천천히 알아가도록 돕는 교육과 여유를 제공할 수 있다면..? 다른 방법은 없을까, 다른 삶은 어떻게 가능할까. 더 많은 상상력과 가능성을 보고 싶었다. 레퍼런스들이 필요했다.       

뜬금없어 보이는 암스테르담행은 이런 고민들의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OECD 가입 서구 국가들 중 아동·청소년 행복지수 1위. 이 사실만으로 아이와 함께 네덜란드에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고작 일주일이지만 또 다른 삶, 또 다른 사회의 분위기를 여행객의 시선에서라도 느낄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말이다.   

  

시작은 단순했으나 네덜란드에 대해 찾아보면 찾아볼수록 네덜란드에 빠져들었다. 일단 버스, 지하철, 트램, 페리, 기차까지 대중교통이 잘 갖추어져 있으니 유아차를 끌고 다녀야 하는 여행자로서 이동의 부담이 덜 수 있겠다. 20-30분이면 암스테르담을 벗어나 하를렘이나 레이든, 헤이그 같은 근교 도시에 가볼 수도 있으니 여행이 지루해진다면 한번쯤 생각해볼 옵션이다.       


램브란트의 그림이 걸려 있다는 국립미술관과 근현대 미술을 엿볼 수 있는 시립미술관. 평일에도 줄을 선다는 반 고흐 미술관이 있으니 나의 취향에 부합할 뿐더러 각종 체험을 할 수 있는 과학박물관과 공룡뼈가 전시되어 있는 자연사박물관은 아이의 관심을 끌기에도 충분해 보였다. 도심 구석구석 운하가 흐르고 있으니 보트 위에서 시간을 보내도 좋을 터.     


여기에 1800년대에 만들어진 유서 깊은 왕립동물원이 도심 한가운데에 있으니 올레!를 외쳐본다. 모두 다 마음에 쏙 들었지만 특히 인상 깊게 본 것은 지도 상에 녹색으로 표시되어 있는 공간, 도심 곳곳에 있는 공원의 존재였다. 서울의 3분의 1 크기라는 암스테르담을 동서남북으로 나누면 각각의 구역마다 작지 않은 크기의 공원이 꼭 하나씩은 보였으니 면적 대비 공원&녹지비율이 높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아이를 키워본 사람들이라면 아이와 함께 하는 여행에서 이런 공간의 소중함을 체감적으로 알 것이다.      

곳곳에 보이는 녹색부분은 녹지와 공원이다.

온라인에서 찾은 정보로 매일의 일정을 대략적으로 잡아 본다. 넘쳤으면 넘쳤지 결코 부족하지는 않다. 그러나 아이가 있으니 최대한 욕심을 덜고 빈 시간을 확보한다. 다른 보호자 없이 아이와 단둘이 떠나는 여행이니 평소와 다른 긴장감이 들었다. 최대한 헤매지 않기 위해 구글맵을 열심히 들여다보고 길찾기를 하며 다른 이들의 여행기를 속독한다. 마음은 이미 암스테르담의 뒷골목 어느 즈음이다.

그렇게 6박 7일이 네덜란드행이 준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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